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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맑게 씻긴 귀, 신년정화 의식...빈소년합창단 내한공연

등록 2020.01.21 17: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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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단원 박시유, 우리의 소원·아리랑 앙코르

[서울=뉴시스] 빈소년합창단. (사진 = 롯데문화재단 제공) 2020.01.21.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빈소년합창단. (사진 = 롯데문화재단 제공) 2020.01.2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유독 커다랗게 보이는 무대 위를 정화시키는 순수한 노래. 19일 오후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올해 빈소년합창단의 한국 투어 피날레 공연에서 성스러움을 느꼈다.

특히 1부에서 헨리 퍼셀 '오라, 그대 예술의 자녀여' 등 웅장한 롯데콘서트홀의 파이프 오르간의 거룩한 소리 틈에서 배어나오는 소년들의 음성은 아름다웠다. 프란츠 비블 '아베마리아'에서 성모의 응답을 꼭 들은 것 같아 고개가 숙여졌다.

아이들다운 천진난만한 무대도 빠질 수 없다. 아드리아노 반키에리 '사육제 목요일 밤의 향연' 중 '동물들이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대위법'에서 개와 고양이 흉내를 내며 서로 티격태격하는 두 단원을 중간에서 말리는 한국인 단원 박시유의 연기가 능청스러웠다.

박시유의 스틱 치기, 한국계 단원 다니엘 준수의 셰이커 연주를 볼 수 있었던 2부 무대는 좀 더 캐주얼했다.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 번스타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어딘가에' 등이 감미롭게 귀에 감겼다. 겉보기에 클래시컬한 노래만 부를 것 같은 빈소년합창단의 다양한 결을 발견했다.

마지막에는 오스트리아 빈에 다녀온 듯했다. 요제프 슈트라우스 폴카 '뱃사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레몬 꽃이 피는 곳'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 신년을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게 여는 빈 풍의 곡들은 새해의 설레는 마음을 대변했다.

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빈소년합창단은 합창단과 인연을 맺었던 거장들의 이름을 따 4개의 팀으로 나눠 활동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프란츠 슈베르트' '요제프 하이든' '안톤 브루크너'다.

[서울=뉴시스] 스틱 든 박시유 스틱, 셰이커 흔드는 다니엘 준수. (사진 = 롯데문화재단 제공) 2020.01.21.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스틱 든 박시유 스틱, 셰이커 흔드는 다니엘 준수. (사진 = 롯데문화재단 제공) 2020.01.21. [email protected]

20여명으로 구성된 각 팀 중 한 팀은 오스트리아에 남아 빈 궁정 예배당의 주일 미사를 담당한다. 나머지 세 팀은 세계를 투어하며 순회 공연을 펼친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휘자 마놀로 카닌이 이끄는 브루크너 팀이 내한했다. 이 브루크너 팀에는 2017년과 2016년에 각각 입단한 한국인 박시유, 한국계 다니엘 준수가 속해 있다.

박시유와 다니엘 준수는 마이크를 들고 우리말로 한국 청중들에게 안부가 담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노래로 하나가 되는 합창단은 각 지역별 문화를 존중하는 미덕도 갖추고 있었다.

박시유가 앙코르 때 맑은 목소리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아리랑'을 부를 때 여운이 짙어졌다. 특히 홀로 아리랑을 부르던 박시유의 목소리에 단원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일 때, 오래된 이 우리 노래가 눈부시도록 새롭게 들렸다.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영화 '시스터 액트'의 '헤일 홀리 퀸(hail holy queen)'으로 이날 무대는 끝이 났다. 그럼에도 박수는 계속 이어졌는데 변화무쌍한 표정과 위트 있는 동작의 지휘자 마놀로 카닌이 피아노 건반 뚜껑을 닫는 퍼포먼스를 벌인 이후에야 마침표가 찍혔다.
[서울=뉴시스] 박시유. (사진 = 롯데문화재단 제공) 2020.01.21.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시유. (사진 = 롯데문화재단 제공) 2020.01.21. [email protected]


빈소년합창단은 이번에 이달 11일 창원 성산아트홀을 시작으로 12일 광주문화예술회관, 14일 강릉아트센터, 15일 오산문화예술회관, 17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을 거쳐 18~19일 롯데콘서트홀 무대까지 돌았다. 피곤이 쌓였을 법도 한데 단원들은 밝은 표정으로 사인회까지 마쳤다.

빈소년합창단 내한공연은 연례행사처럼 됐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는 신년 정화 의식이다. 맑게 씻긴 귀로 마음과 생각까지 단정하게 다듬는 시간이 된다. 여리고 맑은 음성으로 빈소년합창단이 멜로디를 공중에 뿌리는 동안 거친 가슴은 새로운 기운으로 약동한다. 귓가에 벌써 봄 소리가 들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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