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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연속 올림픽行④]타짜처럼 통했다…로테이션·족집게 조커

등록 2020.01.23 0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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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 선발 변경 '7명→6명→8명→5명'…믿음의 축구

상대 훤히 보고 펼친 '현미경 축구'

조별리그 이어 토너먼트서도 적중한 조커

[서울=뉴시스]김학범 23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 = 대한축구협회 제공)

[서울=뉴시스]김학범 23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 = 대한축구협회 제공)

[방콕=뉴시스] 박지혁 기자 = "매 경기 긴장감이 피를 말린다. 어떤 경기도 소홀히 준비할 수 없다." (김학범 감독)

한국 축구가 세계 최초로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2일 오후 10시15분(한국시간) 태국 랑싯의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호주와의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준결승에서 김대원(대구), 이동경(울산)의 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3장 걸린 도쿄올림픽 본선 티켓을 거머쥐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9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김 감독은 현미경으로 본 것처럼 상대를 철저히 분석해 맞춤형 전술을 꺼냈고, 조별리그(3경기)부터 8강, 준결승까지 5전 전승을 기록했다.

우선 상대가 선발 라인업을 예상할 수 없게 만든 변화무쌍한 로테이션이 화제였다.

조별리그에서 8강전까지 매 경기 주전 라인업의 절반 이상을 바꾸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7명→6명→8명. 바꾼 인원이다.

9일 중국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후, 이란과의 2차전(12일)에서 무려 7명을 변경했고, 우즈베키스탄과의 3차전(15일)에서 또 6명을 바꿨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19일(현지시간) 태국 랑싯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한국-요르단 8강전 경기, 한국 이동경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AFC) 2020.01.1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19일(현지시간) 태국 랑싯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한국-요르단 8강전 경기, 한국 이동경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AFC) 2020.01.19. [email protected]

한국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필드플레이어 20명을 다 활용했다. 골키퍼는 송범근(전북)이 모두 책임졌다. 세 경기 모두 치열한 한 골차 승부였지만 3전 전승으로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했다. 16개 참가국 중 전승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건 한국이 유일하다.

지면 끝인 토너먼트에서도 팔색조 용병술은 계속됐다. 19일 요르단과의 8강전에서 8명의 선수 변화가 있었다. 22일 호주와 준결승에서도 5명을 바꿨다.

이번 대회처럼 매 경기 큰 폭으로 선수 구성에 변화를 주는 모습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덥고 습한 날씨와 빡빡한 경기 일정을 고려하면 경기감각 유지, 체력 관리 그리고 승리라는 결과까지 모두 얻었다.

상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규성(안양)과 오세훈(상주)이 이란전부터 요르단전까지 번갈아가며 골을 기록한 게 우연은 아니다. 상대의 전술, 수비라인의 높이와 몸싸움 능력, 스피드 등을 현미경처럼 분석했다.

오세훈은 비록 골을 넣지 못했지만 호주전에서 높이를 활용해 상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전반 24분 시도한 왼발 터닝슛은 성공했다면 역대로 손꼽히는 장면이 됐을 것이다.

또 상대 입장에서는 한국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 선수별 작은 특성이라도 파악해 공략해야 하는 큰 대회에서 매우 불리한 입장이 된다. 분석 대상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불편하다.

[서울=뉴시스]선제골을 터뜨린 조규성 (사진 = AFC 제공)

[서울=뉴시스]선제골을 터뜨린 조규성 (사진 = AFC 제공)

김 감독은 "나는 여기(태국)에 올 때부터 미리 경기를 준비했다. 체력 소모도 많고, 더운 날씨에 체력적으로 힘들다"며 "선수들을 소집해서 훈련할 때부터 계속 반복해서 경쟁을 유도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선수가 나가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단계를 만들었다. 준비한 게 잘 맞아떨어졌다. 숫자를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에 따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선수를 먼저 내보낸 것이다"고 했다.

"23명 중 누가 그라운드에 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고 있다"며 강한 믿음을 심어준 것도 선수들에게 큰 자신감이었다.

또 적재적소에 활용한 조커는 마치 상대의 패(牌)를 보고 게임을 하는 '타짜'같았다.

지난 9일 중국과의 대회 첫 경기에서 후반 12분 이동준(부산)을 투입해 답답했던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동준은 0-0으로 끝날 것 같았던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터뜨려 1-0 승리를 이끌었다.

가장 껄끄럽다는 첫 경기에서 기대이하 경기력을 보였다. 자칫 원하지 않은 결과로 끝났다면 계획 전체가 꼬일 수 있었다. 딱 맞아떨어졌다.

감독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나는 토너먼트에서 절정의 족집게 능력을 발휘했다.

19일 요르단과의 8강전에서 후반 시작과 함께 이동경을 투입해 결승골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서울=뉴시스]오세훈 (사진 = 대한축구협회 제공)

[서울=뉴시스]오세훈 (사진 =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은 조규성의 선제골로 주도권을 잡았지만 후반 30분 알 나이맛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분위기를 완전히 넘겨줬다.

1-1로 연장에 돌입할 것으로 보였다. 분위기와 앞서다가 추격을 허용했다는 부담감 등이 한국에 결코 유리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걱정이 커질 무렵에 이동경이 해결했다.

후반 추가시간 자신이 얻은 프리킥을 직접 차 결승골로 연결했다. 극적인 2-1 승리였다.

이동경은 준결승에서도 김 감독을 웃게 했다. 김대원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음에도 후반 19분 이동경을 투입하며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호주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자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의 간격이 벌어지는 것을 포착했다.

이동경은 후반 31분 추가골을 터뜨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후반 시작과 함께 들어간 이동준도 스피드로 호주 수비진을 교란했다.

김 감독은 "(이동준과 이동경을) 교체로 쓴 것은 그 선수들의 역할이 승패를 바꾸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략을 짰다. 뒤에 있는 선수들이 믿음을 줘서 가능했다"며 "도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선수들을 믿었다. 주문한 게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이동경은 '김학범 감독은 몇 점짜리 지도자인가'라는 질문에 고민하지 않고 "바로 100점을 줄 수 있다"며 "선수들에게 대하는 부분이나 경기를 분석하고, 경기장에서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믿고 따라갈 수 있다는 마음을 매번 느낀다. 정말 좋은 능력을 가진 감독님이다"고 했다.

김학범호는 26일 오후 9시30분 방콕의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첫 우승에 도전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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