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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영웅본색' 연출 왕용범 "유준상,창작뮤지컬계 큰 형님"

등록 2020.01.24 09: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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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삼총사' 시작으로 뮤지컬계 대표 콤비

우위썬 영화 '영웅본색' 1·2편 각색한 창작뮤지컬

해외 공연 논의·화려한 LED 영상 주목

[서울=뉴시스] 왕용범 연출, 유준상. (사진 = 빅픽쳐 프러덕션 제공) 2020.01.2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왕용범 연출, 유준상. (사진 = 빅픽쳐 프러덕션 제공) 2020.01.2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유준상 선배님은 '뮤지컬계 자호'예요. 창작 뮤지컬계를 이끄는 큰 형님 같은 분이시죠."
 
최근 명륜동에서 만난 뮤지컬 연출가 왕용범(46)이 배우 유준상(51)을 믿음직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남성들의 우정과 의리를 다룬 뮤지컬 '영웅본색'에서 다시 의기투합했다.
 
왕 연출과 유준상은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콤비다. 2009년 '삼총사'를 시작으로 '잭더리퍼' '프랑켄슈타인' '벤허' 등 흥행과 완성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대형 뮤지컬로 단단한 시너지를 과시해왔다.

70억원 제작비가 투입된 '영웅본색'은 홍콩누아르 장르의 시발점으로 평가 받는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영화 '영웅본색' 1편(1986)과 2편(1987)을 영리하게 섞었다.

[서울=뉴시스] 왕용범 연출. (사진 = 빅픽쳐 프러덕션 제공) 2020.01.2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왕용범 연출. (사진 = 빅픽쳐 프러덕션 제공) 2020.01.24. [email protected]

영화 '영웅본색' 1편은 조직의 부하인 '아성'에게 배신을 당해 감옥살이를 하는 암흑가의 거물이었던 자호, 자호의 복수를 하다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된 마크, 형과 달리 경찰이 된 자호의 동생 자걸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다룬다.

자호가 동생이자 경찰인 자걸의 수갑을 뺏어 자신의 손목에 채운 뒤 경찰들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 등 영화 속 명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재현된다. 유준상은 룽티(狄龙)가 연기한 자호를 맡았다. 동생과 형제애뿐 아니라 자신이 따르고 따랐던 인물들과 우정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 캐릭터다.  

왕 연출이 이 캐릭터를 유준상에 믿고 맡긴 이유다. '프랑켄슈타인' '벤허' 그리고 '영웅본색'까지 수많은 수고와 노력이 묻어나는 창작뮤지컬 부흥에 기꺼이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왕 연출은 자호는 평소 유준상과 많이 닮은 인물이라고 특기했다. 그러면서 유준상이 대사를 가장 빨리 외우는 건 물론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까지 모두 챙겨주며 화기애애한 프로덕션 분위기 조성에 앞장선다고 귀띔했다.

왕 연출은 "유명 배우일수록 다 차려진 밥상에 올라 자신이 빛나는 작품을 하려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유준상 선배님은 달라요. 창작이 리스크가 크고, 제작 환경이 좋지 않음에도 기꺼이 함께 해주시고 앞장서 주시죠"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유준상. (사진 = 빅픽쳐 프러덕션 제공) 2020.01.2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유준상. (사진 = 빅픽쳐 프러덕션 제공) 2020.01.24. [email protected]

무엇보다 왕 연출은 대중음악계의 '방탄소년단', 영화계의 '기생충' 봉준호 감독처럼 창작뮤지컬도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바랐다. 비디오 문화를 휩쓸었던 '영웅본색'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 라스베이거스 상설공연 논의가 있다고 알린 왕 연출은 대극장 창작 뮤지컬 최초로 일본에 라이선스를 수출했던 자신의 '프랑켄슈타인' 예를 들면서 우리 뮤지컬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높게 봤다.
 
"'프랑켄슈타인' 일본 공연 첫날에 무대 인사를 했어요. '한국에서 온 연출가' 왕용범, '한국에서 온 배우' 유준상 등 '한국에서 온'이라는 수식이 붙으니 국위선양을 했다는 뿌듯함이 들었죠. 토니상에서 한국 연출, 배우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요."

유준상도 '프랑켄슈타인' 일본 공연이 뿌듯했다고 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브로드웨이, 일본에서 공연을 보며 '언제쯤 우리도 저런 공연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웅본색'은 어느 나라에서도 각광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확신이 듭니다"라고 자신했다.

'영웅본색'이 세계적으로 호소할 지점 중 하나는 1000장이 넘는 LED 패널로 구현한, 현실감 같은 영상이다. 패널을 다양한 층으로 나눠 사용하는 등 공간감을 극대화해 홍콩에 와 있는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배경도 영화처럼 순식간에 전환이 된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뮤지컬 '영웅본색'. (사진 = 빅픽쳐프러덕션 제공) 2019.12.2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뮤지컬 '영웅본색'. (사진 = 빅픽쳐프러덕션 제공) 2019.12.24. [email protected]

왕 영출은 LED 영상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에 대해 "'홍콩은 빛의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특기했다. "실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영상 제작에 투입됐어요. 어떤 관객분은 '아이맥스에서 뮤지컬을 봤어'라는 말도 하시더라고요. 실제 4K 이상의 화질입니다."

뮤지컬은 시각적 향수와 함께 청각적 향수도 동시에 불러 일으킨다. 특히 영화 속에서 내내 울려 퍼지는 장궈룽의 노래 '당년정(當年情)', 즉 '러브 오브 더 패스트(Love Of The Past)'가 메인 넘버가 됐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뭉근하게 배어 있는 곡으로, 뮤지컬에서는 한국말 가사가 붙여졌다. 이 밖에 '사수류년(似水流年)' 등 장궈룽이 부른 곡들도 뮤지컬 넘버로 포함됐다. 왕 연출은 "노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하죠. 장궈룽의 곡 9곡을 포함했는데 스무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느낌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귀띔했다.

왕 연출이 창작뮤지컬을 만드는데 높이 살만한 지점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준비를 해온 다는 것이다. '영웅본색' 마니아로 알려진 왕 연출은 이전 자신의 작품에 '영웅본색' 오마주를 녹여냈다.

뮤지컬 '잭더리퍼'에서 잭이 회전무대 위에서 휘파람 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유준사은 "당시 연출님이 그 장면에 대해 '영웅본색'을 오마주한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언젠가 '영웅본색'을 뮤지컬로 만들 거라고 했죠. 이번 '영웅본색'에서도 자전거가 지나가면서 휘파람이 부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실제로 약속을 다 지키시는 거죠"라고 증명했다

[서울=뉴시스] 왕용범 연출, 유준상. (사진 = 빅픽쳐 프러덕션 제공) 2020.01.2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왕용범 연출, 유준상. (사진 = 빅픽쳐 프러덕션 제공) 2020.01.24. [email protected]

준비가 철저하기로 유명한 왕 연출은 공연 중인 작품에서, 배우들에게 다음 작품 러브콜을 보내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벤허' 도중 유준상에게 제안한 건 이탈리아의 정치가 겸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신곡'이었다.

삶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은 '단테'가 어두운 숲속에서 마주친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를 찾기 위한 여정에 오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단테가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하면서 신에게 반항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왕 연출이 재작년에 예고했던 것처럼 '신곡'은 왕용범 '신(神)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신이 되고자 한 남자', '벤허'는 신을 만난 남자의 이야기였다면, '신곡'은 신을 죽여야 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유준상이 '신곡'에 출연하게 되면 왕 연출의 '신 3부작'에 모두 출연하게 된다. 왕 연출은 "'단테의 신곡' 대본을 썼는데 계속 고쳐 쓰고 있어요. 선배님에게 이번에는 '지옥으로 내려가셔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죠"라며 웃었다. 유준상은 벌써 '신곡' 공부를 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왕 연출이 자신의 연출 인생 마지막으로 작품으로 예술의전당에서 올리고 싶어 하는 '노인과 바다' 역시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바다와 싸우는 노인의 이야기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1인 대극장 뮤지컬로 만들고 싶었고, 주인공으로 유준상을 생각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왕 연출은 "'노인과 바다' 이전에도 많은 작품을 하겠죠. 예를 들어 '영웅본색'이 계속 재연을 한다면, 유준상 선배님이 나중에 자호가 아닌 (정비소 사장으로 전과자들의 갱생을 돕는) 견숙을 연기할 수도 있죠. 그렇게 선배님과 함께 나이가 들어갔으면 해요"라고 바랐다. 유준상은 씨익 웃었다.

'영웅본색' 자호 역에는 유준상 외에 임태경·민우혁이 캐스팅됐다. 자걸 역은 한지상·박영수·이장우, 마크 역은 최대철·박민성이 맡았다. 3월22일까지 한전아트센터.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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