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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안타깝고 안쓰러운 청춘들의 뼈저린 현실…'성혜의 나라'

등록 2020.01.30 10: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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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성혜의 나라' 주인공 성혜는 교통비를 아끼려고 한 겨울에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사진 = 홍보배급사 아이 엠 제공) 2020.01.30.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영화 '성혜의 나라' 주인공 성혜는 교통비를 아끼려고 한 겨울에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사진 = 홍보배급사 아이 엠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안타깝고 안쓰럽다.

영화 '성혜의 나라' 주인공 성혜는 취업준비생이다. 꽃다운 청춘 20대의 마지막 시간. 스물아홉 살을 고군분투로 보낸다.

이 이야기가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들어봤음직한 상황들이 펼쳐졌다. 이러한 상황들이 시대의 한 조각으로 여겨질 만큼 익숙해졌다는 것이 안타까웠고, 안쓰러웠다.

성혜는 낮에는 학원을 다니고,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

새벽 3시5분.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곧장 신문배급소로 향한다. 한 겨울이지만 자전거로 이동한다. 교통비 때문에.

배달을 마치면 배급소 화장실에서 찬물 세수를 한다. 그리곤 보금자리 반지하 월세방으로 향한다. 눈 쌓인 골목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면 나온다.

침대에 몸을 파묻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일어난다. 판매시한이 지나 폐기된 편의점 삼각김밥을 냉장고에 보관한 뒤 겨우 잠든다.

휴대전화 알람이 울린다. 일어날 시간이다. 애써 외면하지만 또 울린다. 엄마의 전화다. 지역에 사는 부모님도 사정이 어렵다.

삼각김밥을 먹고 다시 학원을 향한다. 끝나면 편의점으로.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이다. 판매시한이 지난.

남자친구 승환과는 서로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데이트한다. 승환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성혜는 응원하지만 합격의 기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편의점에서 날을 지새우고 신문배달을 하며 동이 트는 아침과 마주한다. 집에서 쪽잠을 자고 나면 다시 학원, 편의점, 신문배달. 성혜의 하루다.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을 묵묵히 버티며 미래를 향해 살아간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성혜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인턴으로 입사했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반강제 퇴사했다. 이후부터는 서류전형부터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런 일상이 반복됐다. 여기에 견디기 힘든 사건들이 더해지면서 성혜를 옥죈다.

[서울=뉴시스]영화 '성혜의 나라'에서 편의점 삼각김밥은 의식주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주인공 성혜의 식을 책임진다. (사진 = 홍보배급사 아이 엠 제공) 2020.01.30.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영화 '성혜의 나라'에서 편의점 삼각김밥은 의식주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주인공 성혜의 식을 책임진다. (사진 = 홍보배급사 아이 엠 제공) [email protected]


지난해 영화로 제작돼 흥행과 함께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킨 '82년생 김지영'과 비교된다. '82년생 김지영'이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 직장동료인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담고 있다면 '성혜의 나라' 성혜는 취업난에, 어려운 가정환경에 고생하는 20·30대 취업준비생 여성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페미니즘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부분을 꼬집는다.

정형석 감독은 한 청년이 고시원에서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한 뒤 '성혜의 나라'를 기획했다고 한다. 청년이 왜 고시원에서 고독사(孤獨死) 하게 됐는지, 이 시대 청년들의 삶은 어떠한 지를 담고 싶었단다.

안타깝고 안쓰러움이 느껴질 만큼 청년들의 고충을 사실적으로 풀어냈다. 특히 흑백 연출은 성혜의 일상에 현실감을 더해준다. 냉정한 리얼리티를 표현하고 어둡고 불길함을 자아냈다. 단적인 색감은 몰입도까지 높여준다. 보는 이는 그저 묵묵히, 관찰하면 된다.

귀로도 빠져든다. 작위적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내 생활 속에서 늘 들어오던 일상 그대로의 소리들이다. 익숙하다. 이따금씩 발견되는 침묵마저도 먹먹함을 풍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라는 성혜의 대사. 어릴 적 꿈을 이루고 살고 있는 한 친구가 자신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을 향해 "꿈은 꿈일 뿐, 꿈을 좇는 쪽도 쉽지는 않아"라고 말하는 대사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 안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내부 경쟁에 시달리는 교육과정에 이어지는 대입 및 취업 전선 속에서 스스로 원하는 바를 찾기 어려운 현실과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도 행복하기 어려운, 상반된 현실을 비춘다.

청년들의 삶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해야함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서울=뉴시스]영화 '성혜의 나라' 속 성혜와 남자친구 승환. (사진 = 홍보배급사 아이 엠 제공) 2020.01.30.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영화 '성혜의 나라' 속 성혜와 남자친구 승환. (사진 = 홍보배급사 아이 엠 제공) [email protected]


드러낼 만큼 드러낸 뒤 감독은 질문을 하나 던진다. 암울한 현실 속 뜻 밖의 일로 큰돈을 얻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

성혜의 선택 역시 뜻밖이다. 어쩌면 사회 구조 속에서 허우적대는 청년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자 탈출구이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심각한 주제만 던지고 끝내지 않는다. 곳곳에 배치된 소소한 반전들은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내러티브에 따라 흔히 할 수 있는 관객의 예상을 깨부순다. 그렇게 켜켜이 쌓이다 영화 막바지 성혜의 '뜻밖의 선택'에서 정점에 달한다.

성혜의 현실이 투영되는 소재들도 등장한다. 청춘의 뼈저린 현실과 동일시되는 물품들이 있고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전과 후를 대비시키는 요소들을 찾으며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청년은 공감할 것이고 청춘이 지났다고 해도 자기 삶을 돌아보고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선사해줄 영화다.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 제19회 샌디에이고 아시안영화제 디스커버리즈 부문 초청작, 제13회 런던 한국영화제 특별 초청작, 제5회 대만 타오위안 국제영화제 영 바이브(Young Vibes) 부문 초청작. 118분, 12세 관람가, 30일 개봉.
[서울=뉴시스]영화 '성혜의 나라' 포스터. (사진 = 홍보배급사 아이 엠 제공) 2020.01.30.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영화 '성혜의 나라' 포스터. (사진 = 홍보배급사 아이 엠 제공)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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