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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고질병 ‘탁상행정’

등록 2020.02.17 11: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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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박미영 기자 = “메르스 때요? 정부가 외식업 실태 파악을 해보라기에 보고서를 올렸는데 정부가 해준 거라곤 손세정제 뿐이었어요. 정말 갑갑했어요.”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실태조사에 착수했다기에, 메르스 당시 정부의 지원을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는 중앙회의 이번 코로나19 피해 실태 조사 및 연구 결과에 대한 정부의 피드백에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2015년 5월 국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 증후군)발병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중앙회 용역결과를 바탕으로 ▲농수산물 세액 공제 일몰 기한 연장 ▲외식종합자금 지원 기준 완화 ▲외식업체 융자 금리 인하 ▲관공서 구내식당 휴무 등을 담은 외식업 종합대책를 발표했다.

종합대책 발표후 음식점에서 받은 것이라곤 손세정제 뿐이었다고 하니, 당시 대책은 정부부처의 어느 캐비닛에 방치됐다 폐기처분된 게 아닌가 싶다.

‘이전 정부가 그랬지, 우리는 다르다’는 말은 넣어두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대책과 정책은) 과하다 싶을 만큼 빠르고 강력해야한다”고 지시했지만 업계를 대하는 자세 역시 이전 정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유통식품외식산업은 그야말로 초토화 직전이다. 바이러스의 확산은 만나고, 사고, 먹고, 즐기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면서 온라인 채널 외에는 찬바람만 불고 있다. ‘소매업의 종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외식업중앙회의 조사 결과 외식업계 10곳 중 9곳은 코로나19로 고객이 감소했고, 평균 고객 감소율은 30%에 이른다. 대형카드사가 조사한 설 연휴 직후 신용카드 매출만 봐도 백화점은 -43%, 영화관은 -12%, 대형마트는 –5% 등으로 사람이 모이는 곳은 매출이 뚝 떨어졌다. 다만 편의점은 직장과 주택가 근처 매장에 한해 매출이 증가했다.

정부는 그나마 장사가 되는 온라인과 편의점을 ‘봉’으로 여겼던 걸까. 졸업 입학시즌인데 꽃이 안팔려 죽을 판이라고 화훼농가가 아우성을 치니 난데없이 편의점과 온라인을 꽃 판매 채널로 지목하질 않나, 마스크 품절 대란을 빚자 대량판매 채널인 홈쇼핑에 마스크 판매를 지시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급하니 어떻게라도 위기를 모면해보겠다는 심산이겠지만 정부가 업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꽃을 팔라는 정부의 느닷없는 지시에 한 편의점업체는 부랴부랴 전국 점포에 장미꽃 생화를 풀었다. 당장 동네 꽃집들이 들고 일어났고 편의점주들은 인근 동네 꽃집 주인의 눈초리를 견디며 발주 중단과 폐기 일정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3년 전에도 청탁금지법으로 직격탄을 맞은 화훼농가를 위한다며 편의점 꽃 판매를 추진했다 '탁상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아 중단한 적이 있는데도 또다시 편의점 카드를 꺼낸 것이다. 

마스크 대란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는 또 어떤가.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정부는 홈쇼핑업체를 불러 모았다. 판매자들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정하고 상품을 판매하는 오픈마켓과 달리 홈쇼핑은 가격 조정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을 보지 않은 처사다. 홈쇼핑은 대량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당장 물량을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100만장도 안되는 마스크를 팔자고 방송 편성을 하란 얘기니 홈쇼핑업체는 손해보고 장사하란 얘기다. 그것 뿐인가. 어렵게 물량을 구해와 편성을 잡으면 그 즉시 10만명이 몰려 홈쇼핑 서버는 다운돼 버렸고, 마스크 판매 전후 시간 편성 업체는 판매 방송 자체를 날려버린 꼴이 되고 말아 손해가 막심하다.

더 큰 문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마스크 판매 이력을 향후 홈쇼핑 사업자 재승인 및 연간 이행점검 시 가산점에 포함시키기로 했다는 점이다.

재승인에 탈락하면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홈쇼핑업체로서는 서버가 다운되고, ‘다신 홈쇼핑에선 안산다’는 소비자들이 생겨나도, 다른 협력업체가 손해를 봐도 마스크를 팔아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코로나19에 업계가 신음하고 있는데도 이렇듯 정부의 탁상 행정은 변함이 없다. 전 정부의 시행착오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고, 위기 상황에 새롭게 낸 아이디어란 것도 ‘급조’된 것들 뿐이다.

문 대통령이 부처에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축적의 길’이 과연 이런 것인가. ‘과거의 시행착오가 쌓여 현재의 자산이 된다’는 축적의 길은 산업과 서비스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행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과거에 쌓아놓은 착오가 어디 한 둘인가. 축적된 착오와 잘못의 더미들을 헤집어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한다. 잦은 전염병의 엄습 속에서 허둥대던 시행착오가 쌓였다면 이제 ‘디테일이 살아있는 계획’을 설계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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