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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촌스럽지만 빠져든다...'우리 노래방 가서···얘기 좀 할까'

등록 2020.02.18 08: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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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대표작

진선규·김민재 등 출연

[서울=뉴시스]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사진 =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2020.02.18.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사진 =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2020.02.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는 왕년의 연극이다. 2008년 초연했고 여러 차례 공연하다, 6년 만에 대학로로 돌아온 작품.

연결고리가 있는 다섯 편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는데 초반에는 자칫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노래방이라는 소재 자체가 이미 낡기는 했다. 일종의 느슨한 해설자 역을 하는 노래방 주인은 관객이 주인공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려는 찰나에 방해한다. 이른바 '낯설게 하기' 기법인데,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도 세련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미스터리처럼 극에 빠져든다. '민재'는 아들 '희준'에게 본인의 재혼을 이야기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지만 둘의 관계는 어색하기만 한다. 말들은 겉돌고 진심은 어긋난다.
 
'민정'(여자친구)과 희준(남자친구)은 서로 다른 성격과 연애 방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민정이 혼자 노래방 가는 것을 이해 못하는 민재의 집착은 갈수록 심해진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민정을 위해 친구들은 그녀와 노래방을 찾는데,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견으로 혼란은 더해진다.

재혼을 결심한 민재와 '보경'은 데이트를 위해 노래방을 찾지만 보경은 죽은 전 남편이 자신에게 프러포즈했을 때 부른 팝송 '나싱스 거나 체인지 마이 러브 포 유(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가 건너방에서 들려오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놀랍게도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앞의 이야기와 갈등이 퍼즐 맞추듯 하나둘씩 정리된다. 재혼의 결심을 번복한 보경을 데리고 노래방을 찾은 중년의 친구들은 삶의 낙관을 보여준다.

"어느 날 그대를 만나서 사랑의 기쁨을 깨닫고 나 같은 여자도 사랑을 알게 했다오." 보경의 친구들을 이모처럼 여기는 민정이 노래방을 찾아 엄마 보경을 위해 김동희의 '썸데이'를 부를 때, 극 중 노래방에 모인 인물들뿐만 아니라 객석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민정은 집안 사정 때문에 가수의 꿈을 잠시 망설였으나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그 꿈을 희미하게나마 이어가고 있었다. 희준의 오해는 그런 사정을 몰라 빚어졌던 것이다. 민정의 꿈을 향한 노래는, 엄마 보경의 새로운 인생을 응원하는 위로가가 된다.
 
[서울=뉴시스]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사진 =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2020.02.18.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사진 =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2020.02.18. [email protected]

대학로의 유사 동인제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를 이끄는 민준호 대표가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얘기'에 방점이 찍혀 있는 공연이다.

극 중 노래방 주인도 언급하지만 사람들은 노래방에 노래만 부르기 위해 오지 않는다. 마음껏 소리 지를 곳이 없어서, 마땅히 울 곳이 없어서 찾는 곳이 노래방이다. 민 연출은 노래방에서 인생의 리듬과 멜로디를 찾았다.

눈에 띄는 것은 노래방에 붙어 있는 화장실의 표현법이다. 화장실은 다름 아닌 놀이터처럼 묘사돼 있다. 노래방 안에서 노래가 아닌, 상대방과 얘기 또는 다툼을 하다 지친 이들은 화장실, 아니 놀이터에서 가서 시소 위를 걷고, 구름다리를 건너며, 그네를 탄다.  

민 연출은 과거 어느 인터뷰에서 이 연극 속 놀이터를 해우소(解憂所)에 비유했다. 절에서 '변소'를 달리 이르는 말로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근심을 푸는데 해질녘 놀이터만한 곳이 없다. 처음에는 이해가 힘들었던 설정은 극이 끝날 때쯤 관객의 마음을 그네에 태운다.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도 공감대 형성에 크게 기여한다. '극한직업'을 통해 1000만 배우로 거듭난 진선규를 비롯 김민재, 차용학이 아버지 '민재' 역에 캐스팅됐고 유지연, 정연, 오의식, 윤석현, 한수림, 정선아, 김하진, 유연, 이지해, 임강성, 오인하 등 간다를 기반으로 삼아 대학로 안팎에서 활동하는 배우들도 총출동한다.

이들 배우들이 빚어내는 앙상블은 본능에 가까워 보이지만 어느덧 치밀하게 설계한 것처럼 관객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삶에는 어두운 단조뿐만 아니라 밝은 장조가 공존하고 있음을 하모니를 통해 보여준다.

극 속에서 인물들이 노래를 부른 뒤 노래방 기계에서 점수를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그래, 우리 인생은 감히 점수로 매길 수 없다. 각자마다 절대치가 있으니까. 

저렴한 코인 노래방을 이용하거나 다른 즐길 거리가 많아지면서 노래방 이용객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데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만들어내는 노래방 얘기는 계속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중장기 창작 지원 사업 선정작이다. 3월8일까지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1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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