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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복지]'미쓰백'에서 한지민이 그랬듯 작은 관심이 한 아이를 구한다

등록 2020.02.22 09: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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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부모 버림 받아 상처 가득한 미쓰백

부모 학대 받은 아이 모른척하지 않고 구출해

'원영이 사건' 계모 무기징역·친부 징역 30년형

교육부-경찰청 취학 대상 아동 안전 전수조사

【서울=뉴시스】영화 '미쓰백'. 2018.09.28.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서울=뉴시스】영화 '미쓰백'. 2018.09.28.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세종=뉴시스]이연희 기자 = 이지원 감독의 영화 '미쓰백'에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당하고 또 버림받은 두 여성이 나온다. 이름보다 '미쓰백'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해진 백상아(한지민)와 부모의 학대를 피해 수시로 지옥같은 집을 탈출하는 지은(김시아).

백상아는 어린 나이에 알코올 중독이었던 어머니의 방치와 학대 끝에 버림받았다. 이후 삶은 그 스스로의 말마따나 '시궁창'이 됐다. 고등학생 때 성범죄를 피하려 정당방위로 가해자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살인미수로 전과자 딱지를 달았다. 백상아는 부모 없는 고아였고 가해자는 부유한 집안 아들이었다.

백상아는 이후 염세적인 눈빛으로 거친 말을 쏟아내는 '미쓰백'이 된다. 과거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장섭(이희준)이 그 주위를 맴돌지만 미쓰백은 "누군가의 아내 또는 엄마로 살아가지 않겠다"며 밀어낸다.

그랬던 미쓰백이 한겨울 밤 얇은 원피스를 입고 길가에 웅크리고 앉은 아이 지은을 마주친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미쓰백은 그럴 수가 없다.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미쓰백은 아이에게 외투도 벗어주고 음식도 사준다. 아이는 실수로 물을 쏟고는 흠칫 놀라 머리 높이로 두 팔을 들어 방어하는 자세를 취한다. 아이는 학대를, 그것도 너무 자주 당해 익숙해진 것이다. 

지은이에게는 친부가 있지만 게임 중독으로 딸을 방치하고 학대했다. 그의 동거녀 주미경(권소현)은 대신 보험설계사로 일한다. 바깥에서는 사람 좋은 표정을 하지만 집안에 들어오면 아이를 화장실에 가두고 손찌검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듯 하다.

부모의 학대를 견디는 아이는 지은이뿐 아니다. 보건복지부 '보호대상 아동 현황보고'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보호대상 아동 수는 3918명이다. 보호대상 아동이 된 이유는 '학대'가 1415명(36.1%)으로 가장 많고 '한부모' 623명(15.9%) '유기' 320명(8.2%), '부모 사망' 284명(7.2%), '비행가출' 231명(5.9%) '부모빈곤' 198명(5%) '부모질병' 92명(2.3%), 미아 18명(0.4%) 순으로 나타났다.

미쓰백은 며칠 뒤 수중에 돈 1000원을 들고 길거리로 나온 지은이와 마주친다. 미쓰백은 이번엔 아이에게 따뜻한 외투와 햄버거를 사주고 바닷가 놀이공원에도 데려가 모처럼 행복한 하루를 선물한다.

하지만 지은이의 집에서 기다린 것은 친부의 폭력이다. 직접 목격한 미쓰백는 이번에 참지 못하고 뛰어든다. 동거녀는 아동학대 사실을 숨기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끝까지 책임질 거 아니면 어쭙잖게 참견하지 말라. 1억원을 주고 사가라."

이들 부모와 난투극을 벌인 미쓰백은 경찰서에 간다. 미쓰백은 지은 부모의 아동학대를 신고하지만 친권은 남보다 강하다. 학대를 걱정한 지은이도 부모로부터 학대당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경찰이 미쓰백에게 전과가 있다는 사실까지 떠들어대자 미쓰백은 다시 예전의 회의주의자로 돌아간다. 지은이를 향해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려 한다.

지은이는 다시 학대를 당해 집안 화장실에 갇히고, 결국 창문 사이로 다시 탈출을 시도한다. 그렇게 지은이를 다시 만난 미쓰백은 이번엔 지은이를 데리고 떠난다. 부모는 미쓰백을 유괴범으로 신고하기까지 한다.

영화 중 장섭은 지은이를 보호할 아동보호시설을 알아보지만 여의치 않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자기 부모한테 맞고 사는 애들은 수십만이라는데 그 애들이 갈 수 있는 시설은 동네 노래방 숫자보다 적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동복지시설 수 및 보호아동현황' 통계상 2018년 전국 아동복지시설 수는 279개, 입소자 수는 3707명이다. 수용자 수는 1만2000여 명이다.

결말은 다행히도 해피엔딩이다. 아이를 학대했던 부모는 중형을 받고, 지은이는 누나와 함꼐 사는 장섭의 집에서 지내며 학교를 다닌다. 다행히도 표정은 밝다.
【서울=뉴시스】영화 '미쓰백'. 2018.09.28.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서울=뉴시스】영화 '미쓰백'. 2018.09.28.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미쓰백' 영화는 이지원 감독이 과거 학대 당한 아이를 지나쳤던 경험 등 실화를 소재로 만들었다. 실제 영화는 익숙한 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지난 2016년 지은이처럼 화장실에 갇혀 있다가 학대로 숨진 7살 '원영이 사건'이다.

사건 당시 아동센터 직원은 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이를 구하는데 실패했다. 친부와 계모는 2014년부터  2년간 화장실에 아이를 가두고 학대했다. 학대 끝에 아이가 사망하자 친부와 계모는 아이를 야산에 암매장했다. 친부와 계모는 원영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거나 초등학교 입학 물품을 구입하는 등 은폐를 시도했다. 결국 수사 결과 범죄가 드러났으며 법원은 계모에게 무기징역, 친부에게 징역 30년형을 선고했다.

보건복지부의 '10년간 아동학대 피해 사망 아동 현황'을 살펴보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총 171명의 어린이가 학대로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가까스로 가스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한 아이의 일화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2012년 9월부터 3년여 동안 서울의 모텔과 인천의 빌라 등지에서 세탁실 등에 아이를 감금한 채 굶기고 상습 폭행했으며, 지난 2015년 맨발로 창문 밖 가스 배관을 타고 탈출해 구조됐다. 아이는 아동복지시설로 인계됐다. 아동학대로 친부는 징역 10년, 동거녀는 4년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뉴시스】영화 '미쓰백'. 2018.09.28.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서울=뉴시스】영화 '미쓰백'. 2018.09.28.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학대 정도가 다를 뿐 고통받는 어린이는 도처에 있다. 친권을 가진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이들이 가정 내 학대를 받는 사건이 반복되면서, 방치되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육부와 경찰청은 지난 2017년 처음으로 학교 갈 나이가 된 어린이의 소재와 안전을 전수조사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모든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참석하도록 하고, 불참한 어린이는 소재와 안전 여부를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어린이는 출입국 기록 조회, 경찰 수사 등을 통해 모든 아이가 확인될 때까지 추적한다.

보건복지부는 미취학 상태인 아동들의 안전을 살피기 위해 올해 처음 만 3세인 2015년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의료인과 교사, 복지시설 관계자 등 아동을 자주 접하는 직업군은 아동학대 정황을 발견하는 즉시 신고해야 하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로 지정돼 있다. 신고를 하지 않고 외면할 경우 150만~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일반인도 아동학대 의심 사례를 쉽게 신고할 수 있는 창구로 삼성전자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대학생과 함께 개발한 '아이지킴콜112'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도 활용할 수 있있다.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 지은이를 구출한 미쓰백은 지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식해서 너한테 가르쳐줄 것도 없고 줄 것도 없어. 대신 지켜줄게."

이렇게 미쓰백이 지은이를 향해 내밀었던 손은 단순히 한 아이를 구렁텅이에서 꺼내는 행위가 아니다. 어린시절 자신을 발목잡았던 과거에서 자신을 구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게 도움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미쓰백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어른이 되어 사각지대에 놓은 또 다른 아이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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