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인터뷰]"스토브리그, 1등만 박수 받는 세상에 돌직구 던졌죠"

등록 2020.02.23 09:30:18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길픽쳐스 박민엽 대표, 창립작 ‘스토브리그’ 대박

‘어서와’ ‘우리, 사랑했을까’로 시청자 힐링

[서울=뉴시스] '스토브리그' 포스터(사진=SBS 제공) 2020.02.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스토브리그' 포스터(사진=SBS 제공) 2020.02.2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최근 막을 내린 SBS TV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백승수’(남궁민) 단장이 현실에 존재하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창립 작품부터 ‘대박’이 나 어깨에 힘이 실릴 법도 한데,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스토브리그’처럼 따뜻한 울림을 주는 드라마를 만든 비결이 여기에 있다.

제작사 길픽쳐스의 박민엽(46) 대표다.

‘스토브리그’는 야구 꼴찌팀 ‘드림즈’에 새 단장 백승수가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무엇보다 야구선수가 아닌 구단을 운영하는 프런트들에 초점을 맞춰 차별화했다. ‘스포츠 드라마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도 깼다.

“우리나라에는 스포츠 드라마가 잘 된 사례들이 많지 않다. 제작비도 로맨스물에 비해 많이 들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 항상 1등에게만 박수를 쳐 주는데 ‘꼭 최고만 주목 받아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꼴지를 했다고 답이 없는 건 아니니까. ‘1등이 아니어도 열심히 했다면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주제 의식이 좋았다. ‘스토브리그’는 야구단을 소재로 했지만 결국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이나 사회에도 대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스토브리그’는 2016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MBC에서 편성을 논의했지만 계속 미뤄지다가 SBS로 넘어왔다. 공모전 당선 후 3년여 만에 방송됐는데, 이신화 작가가 집필한 기간까지 합치면 5년 여 만에 빛을 보게 된 셈이다.

박 대표는 “당선 직후 이신화 작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나도 ‘당신의 작품이 좋다. 같이 하고 싶다’며 프러포즈했다”며 “이 작가가 발로 뛰며 취재한 노력이 고스란히 작품에 녹았다. 뚝심있고 인간의 양면성을 잘 짚어낸다. 글을 정말 간결하고 담백하게 쓰는데, ‘스토브리그’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개그감도 엄청나다”고 귀띔했다.
[서울=뉴시스] 남궁민(사진=SBS 제공) 2020.02.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남궁민(사진=SBS 제공) 2020.02.23 [email protected]

남궁민(42)이 아닌 백단장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 이 작가만큼이나 남궁민은 ‘은인’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2019) 촬영으로 바빠서 처음에는 캐스팅 제안도 받지 않았지만, 종방 후 다시 한 번 러브콜을 보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워낙 마이너한 소재 아니냐. ‘스포츠 드라마는 망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선뜻 결심하기 싶지 않았을 거다. 극본에 매력을 느껴서 출연을 결정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덕분에 남궁민은 인생작을 경신했다. ‘김과장’(2017) ‘조작’(2017)과 달리 힘을 뺐지만, 디테일한 연기는 살아 있었다. “톤을 잡기 위해 몇 십까지 버전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면서 “극본 리딩 때 이미 백승수 단장이 돼 있었다. 힘을 빼고 연기했지만 눈빛, 동작 하나하나 마력이 있더라. 철저한 캐릭터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며 감탄했다.

직장인들은 백단장의 대사를 ‘자기계발서’로 삼을 정도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조직에 돌직구를 날리며 시청자들을 대리만족시켰다. 박 대표는 백단장의 대사인 ‘소 한번 잃었는데 왜 안 고칩니까. 그거 안 고치는 놈은 다시는 소 못 키웁니다’를 생활신조로 꼽았다. “누구나 다 실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잘못됐다는 걸 알면 반복하지 말아야 하는데 똑같은 실수를 한다.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면 더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하도권(사진=SBS 제공) 2020.02.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하도권(사진=SBS 제공) 2020.02.23 [email protected]

‘드림즈’ 선수들과 직원들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하도권(43·김용구)을 비롯해 홍기준(42), 채종협(27), 김도현(43), 김수진(46), 문원주(40), 박진우(47), 김기무(42·김대원), 윤병희(39) 등의 열연이 빛났다. 극중 노장 투수들이 저력을 보여주듯, 이들은 현실적인 연기와 남다른 열정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정동윤 PD 덕분”이라며 “TV 매체에 많이 노출돼서 익숙한 분들보다 현실적인 연기를 하는 분들을 캐스팅했다. 정말 야구선수처럼 보여야 리얼리티가 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다들 잘했지만, ‘강두기’ 역을 맡은 하도권씨가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했다. 실제 야구선수라고 해도 믿을 만큼 캐릭터에 몰입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토브리그’가 시청률 19%를 넘으며 인기를 끌거 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자신도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며 “‘시청자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해 야구 드라마가 아니라, 직장인들도 즐겨 볼 수 있는 ‘오피스물’로 포지셔닝했다”고 설명했다. “가을 야구가 끝나고 스토브리그 시즌에 방송 돼 야구팬들도 품을 수 있었다”며 “자신이 응원하는 팀 얘기를 대입해 보며 흥미를 느끼더라. 남성 시청자들에게까지 입소문이 난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김명수(사진=KBS 제공) 2020.02.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명수(사진=KBS 제공) 2020.02.23 [email protected]

박 대표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004~2005) 프로듀서로 처음 드라마시장에 뛰어들었다. 로고스필름에서 기획 프로듀서로 일하며 아이템 발굴, 작가 계약, 총 예산 집행 등을 맡았다. ‘스토브리그’ 속 프턴트들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특히 박지은 작가와 인연이 남다르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2009)부터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별에서 온 그대’(2013~2014) ‘푸른 바다의 전설’(2016~2017)까지 네 작품을 함께 했다. 박 작가가 집필한 tvN ‘사랑의 불시착’도 ‘스토브리그’와 비슷한 시기에 방영, 신드롬을 일으켰다. “워낙 다른 장르의 드라마인데 함께 잘 돼 기쁘다”며 “작가님이 바쁠 것 같아서 아직 연락을 못 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바랐다.

‘길픽쳐스’를 설립한지도 어느덧 3년차다. 방송사, 제작사, 스태프 모두 상생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으로 드라마 제작에 에로사항이 많지만, “사람을 잃으면서 제작하고 싶지는 않다”며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져도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풀고 싶다”는 주의다.

“다 같이 잘되는 게 좋은 거 아니냐. 조금씩 양보하면 해결법이 안 나올 거 같지도 않다. 우리나라는 좁아서 내수 시장에서만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수익 창출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프로듀서로 일할 때는 단기 목표만 세우고 그 프로젝트만 위해 달려갔는데, 제작사 대표가 되니 정말 다르다. 재정, 인사 등 모든 걸 관리하고 당장 올해뿐만 아니라 5~10년 라인업과 함께 비전도 제시해야 하니까. 쉬운 길은 아니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다음달 25일 첫 방송되는 KBS 2TV 수목극 ‘어서와’로 또 한 번 시청자들의 평가를 받는다. 올해 JTBC 드라마 ‘우리, 사랑했을까?’ 방영도 앞두고 있다. ‘스토브리그’가 워낙 잘 돼 부담감도 클 터다.

박 대표는 “고아라 작가가 쓴 동명 웹툰은 수채화 같은 감수성과 여백의 미가 있다”며 “드라마 극본을 쓰는 주화미 작가는 ‘연애말고 결혼’ ‘내성적인 보스’ 등에서 강아지 같은 여자와 고양이 같은 남자의 로맨스를 그리는 능력이 탁월했다. 사람에 치이고 사랑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콕 찌를 수 있는 힐링 로맨스”라고 짚었다.

“원작은 대학생 자취방을 배경으로 하지만, 연령층을 올려서 직장인으로 설정했다. 김명수씨와 신예은씨의 캐릭터 싱크로율이 높다. 고양이가 사람으로 바뀌어 강아지 같은 여자와 한 집에서 동거하는데, 힐링 로맨스가 될 것”이라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만큼 시기적으로도 잘 맞아떨어질 것 같다. 반려동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따뜻한 존재인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뉴시스】 위부터 시계방향 송지효, 구자성, 김민준, 송종호, 손호준.(사진=크리에이티브그룹 아이엔지, PLK, 가족이엔티, 블러썸, YG엔터테인먼트 제공) 2020.02.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위부터 시계방향 송지효, 구자성, 김민준, 송종호, 손호준.(사진=크리에이티브그룹 아이엔지, PLK, 가족이엔티, 블러썸, YG엔터테인먼트 제공) 2020.02.23 [email protected]

‘어서와’가 1030을 타깃으로 한다면 ‘우리, 사랑했을까’는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 14년 차 싱글맘 ‘노애정’(송지효)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4명의 남자와 로맨스를 형성한다. 소설가 ‘오대오’(손호준)와 배우 ‘류진’(송종호), 조폭 출신 캐피탈 회사 대표 ‘구파도’(김민준), 체육교사 ‘오연우’(구자성)다. 애정이 딸 ‘하늬’를 통해 아빠 찾기에 나서며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히는 코드”라며 “이승진 작가의 글은 건강하다. 무공해 청정 매력이 있다고 할까. 스트레스 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라며 “시청률 등 부담되는 면도 있지만, 숫자가 다는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의미있는 작품으로 남는다면 충분하다”는 자세다.

‘길픽쳐스’라는 네 글자가 브랜드가 되길 꿈꾼다. 가족, 지인들이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을 뿐 아니라, “5~10년 후에 봐도 새롭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며 “선한 연향력을 끼칠 수 있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 길픽쳐스에서 만드는 드라마는 재미와 감동은 물론 의미까지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스스로 ‘드라마쟁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2019)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르며 새 역사를 쓴 것처럼, 한국 드라마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길픽쳐스 드라마는 만듦새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작품 하나밖에 하지 않아서 최고를 찍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전무후무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을 때 자랑스럽고 짜릿하더라. ‘기생충’처럼 주목 받는 드라마도 나왔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해줬으면 한다. ‘스토브리그’ 마지막 16회에서 백단장이 ‘글쎄요. 해봐야 알겠지만 뭐, 열심히 할 겁니다.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했을 때 많이 와 닿더라. 나를 움직이게 한 말이라고 할까. 초심 잃지 않고, 다시 열심히 하겠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