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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질이 된 주한미군 韓직원들…제도 개선 약속 흐지부지

등록 2020.02.24 19: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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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 "SMA 합의 안 되면 한국인 4월 휴직"

지난해도 주한미군 한국인 직원들에 휴가 엄포

지난해 협상 후 제도 개선 논의됐지만 성과 無

美, 분담금 90% 돌려준다더니 고용 불안 촉발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주한미군은 29일 오전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유엔군 및 주한미군 사령부 청사 개관식 행사를 가졌다. 사진은 캠프 험프리스 내 푸드코트. 이곳에는 스타벅스, 버거킹뿐만 아니라 미국 외식 프랜차이즈 등이 다양하게 입주해있다. 2018.06.29.ksj87@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주한미군은 29일 오전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유엔군 및 주한미군 사령부 청사 개관식 행사를 가졌다. 사진은 캠프 험프리스 내 푸드코트. 이곳에는 스타벅스, 버거킹뿐만 아니라 미국 외식 프랜차이즈 등이 다양하게 입주해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국내 곳곳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에서 일하는 우리 국민들이 또 한 번 인질이 됐다.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로부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미군 기지 내 한국인 노동자를 볼모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협상 당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음에도 올해 또 다시 9000명에 달하는 우리 국민이 고용 불안에 빠졌다는 점에서 한미 양국 정부 모두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미국 국방부는 현지시간으로 23일 "한국 정부가 한국을 방어하는 주한미군에 대한 지원을 상당히 증액하는 합의를 하지 않는 한 3월 31일에 고갈된다"며 "포괄적인 새로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합의에 이를 수 없다면 대부분 한국인 근로자가 4월 1일부터 휴직하고, 많은 공사와 군수지원을 중단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미군 기지 내 한국인 직원 약 9000명의 지난해 1년간 인건비 약 5000억원은 우리 정부 예산 75%, 미국 예산 25%로 충당됐다. 올해 분담금을 둘러싼 협상이 지연되면서 올해분 인건비는 확보가 되지 않고 있다. 그러자 미국은 자국이 부담하는 25% 외에 우리 정부 몫은 조금도 더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그러면서 미국은 한국인 직원들이 불가피하게 무급휴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한미군 사령부가 그간 자체적으로 무급휴직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미 국방부 차원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1조389억원 수준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5배 가까이 올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 국방부가 한국인 직원 강제 무급휴직을 거론한 것은 강력한 압박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10차 방위비 협상 당시에도 미국은 무급휴직을 거론한 바 있지만 지금은 차원이 다르다. 당시에도 주한미군 사령부는 주한미군 노조에 비슷한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올해는 직원 개인에게 개별 통보까지 하며 여차하면 무급 휴직을 보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협상이 계속 늦춰지면 봉급을 받지 못하는 한국인 직원들로선 불안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주한미군 노조 관계자는 24일 뉴시스에 "작년에도 무급휴가를 보낼 수 있다고 6개월 전에 노조에 통보는 했지만, (직원 개개인에게) 개별 통보까지 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군 기지 내 한국인 직원들이 2년째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같은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노력들이 이행되지 않거나 미국 쪽에만 유리하게 활용됐다는 점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2월10일 제10차 방위비 협상을 타결하면서 한국인 직원 권익 보호 규정을 본문에 삽입했다. 본문에는 '한국인 근로자의 복지와 안녕을 증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문구가 최초로 담겼다. 그 일환으로 양국은 우리 정부의 인건비 지원 비율 상한선(75% 이하)을 철폐함으로써 우리 정부의 인건비 분담 확대를 꾀했다.

이는 미군 기지 내 우리 국민 보수를 우리 정부가 더 많이 분담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미국이 더 적은 인건비만 부담하게 된 탓에 우리 정부의 책임만 커지게 된 것이다. 방위비 협상이 지연되면 임금 관련 예산 고갈 압박이 고스란히 우리 정부와 한국인 직원들에게 전가되게 된 셈이다.
 
지난해 협상 당시 주요 제도개선 성과 중 하나로 제시됐던 'SMA의 중장기적인 제도개선 논의를 위한 합동실무단(Working Group) 구성' 역시 공염불에 그쳤다.

한미 양국은 상시 협의체인 제도개선 합동실무단을 통해 현재의 방위비 분담 제도를 중장기적으로 개선하기로 했지만, 성과를 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주한미군 노조는 특히 합동실무단에 실망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제도 개선을 위한 합동 실무단이 구성이 됐지만 회의를 안 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합동 실무단이 만들어졌다면 거기서 여러 제도 개선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인 직원의 고용이 위험에 처했는데 우리 정부의 고용노동부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점 역시 맹점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10월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주한미군 한국인 직원 문제와 관련, "필요할 경우 고용노동부의 참여를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말했지만, 고용부는 여전히 방위비 협상이나 제도개선 실무단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주한미군 노조 관계자는 "제도 개선 합동실무단에서 우리 정부가 원하는 제도가 나와야 하는데 그 실무단에 노동부가 안 들어가 있다"며 "한국인 직원 인건비가 협상 때마다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정작 실무단에는 노동부가 없다"고 전했다.

정부가 고용부를 참여시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 관계자는 "한국인 직원을 담당하는 부서가 고용노동부에 있긴 한데 그 팀은 동남아 공적개발원조(ODA)를 담당하는 부서"라며 정부가 이 사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용부 개발협력지원팀 관계자는 이 같은 비판에 "직접 참여는 안 하지만 노조 측과 면담을 통해 한국인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외교부와 국방부에 전달하고 있다"며 "고용부 입장에서는 노동자 권익 보호가 중요한 부분이라서 (외교부 등에) 충분히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미국 정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의 근거로 '분담금의 90%가 한국에 쓰인다'는 주장을 제시해왔다. 이 같은 주장을 거듭하던 미국이 급여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한국 고용시장에 큰 타격을 주는 대규모 강제 무급휴직을 언급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지적이다.

한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의 금전적 이익을 취하겠다며 우리 정부를 몰아세우는 태도 역시 동맹을 대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코로나19를 대하는 주한미군의 태도도 입방아에 오를만하다. 주한미군은 한국 내 코로나19 관련 현황을 알리면서 한국 정부와 달리 미국 기지들은 방역을 제대로 하고 있음을 연일 홍보해왔다.

주한미군은 23일 홈페이지에서 "한국에서 55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주한미군 인원 중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여전히 0명"이라며 "주한미군 지휘부와 직원들이 강력한 예방책을 강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문에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우리 정부와 국민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말이나 격려의 한마디는 담겨있지 않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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