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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보고 싶다' 강은일 해금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등록 2020.02.26 17: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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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오래된 미래_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26.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오래된 미래_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엄마'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때 순간은 영원해진다.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 엄마는 모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지난 22~23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진 '강은일 해금플러스'의 '오래된 미래 :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에서 확인했다.

엄마로 발화된 이 공연은 결국 '여성 서사'로 변주됐다. 여성으로 태어나 50년을 살아온 강은일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지난 100년간의 할머니, 어머니, 나, 그리고 내 딸로 이어지는 역사를 톺아봤다.

지켜본 공연의 첫날 연주된 여섯 곡은 저마다 풍경을 하나씩 그리게 만들었다.

강은일의 아들인 한진구 작곡가 '제망모가'가 첫 곡. 한 작곡가의 할머니이자 강은일의 어머니 또 누군가의 할머니자 어머니를 위한 곡은 정지화면처럼 저마다 할머니 또는 어머니의 기억을 점멸하게 만들었다.

미국 출신의 작곡가 도널드 워맥이 섬인 제주와 하와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한 '떠오르는 섬'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제주와 하와이는 모두 여성 신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중력을 잃고 마치 부유하는 듯한 몽환적 멜로디는 폭포수 떨어지듯 낙화하며 마음을 섬처럼 두둥실 떠오르게 했다.

김성국 작곡의 '해금과 피아노를 위한 날개'는 서서히 비상하는 상승감을 안겼다.

콜롬비아국립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겸 작곡가 모세 베르트랑의 '이매진드 리콜렉션스(imagined recollections)'는 가장 드라마적으로 요동쳤다.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겪은 카탈루냐 출신 베르트랑이 작곡한 이 곡은 전쟁에서 발휘되는 여성의 내재된 힘을 발산했다. 남북한 국경을 넘는 불가능함을 표현한 2악장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구가 등장할 때 음악과 텍스트의 시너지가 주는 무게감이 컸다. 

3악장은 한국의 강강술래와 스페인의 전통춤 카타란 사르다나를 접목시키기도 했다. 카타란 사르다나는 강강술래처럼 서로 손을 잡고 동그랗게 추는 춤이다.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 우디 박이 작곡한 '4대'에는 4세대에 걸친 여성, 할머니, 어머니, 나, 그리고 딸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녹아 있다.

[서울=뉴시스] '오래된 미래_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26.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오래된 미래_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26. [email protected]

EDM적인 요소가 적극 개입할 때 순간 당황스럽기는 했다. 그런데 이내 마치 기다렸다는 듯 EDM과 멋지게 조우하는 해금의 새로운 공감각을 엿봤다.

4악장 '딸'에서 10명의 젊은 여성 해금 연주자들이 한복이 아닌 모던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며 즐겁게 연주를 할 때, '새로운 클라이맥스란 이런 것'임을 깨달았다.

변주된 '수미쌍관' 식으로 '제망모가'가 '제망모가2'라는 이름을 달고 이날 마지막에 연주될 때 여운이 짙었다.

안타까웠던 점은 이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이 본격화됐다는 것이다. 공연장 밖 풍경은 삭막했고 내부의 정경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항상 새로움으로 관객을 몰고 다니는 스타 강은일이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객석은 군데군데 비었다. 4악장 '딸' 시작 전 전자 장치의 문제로 약간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이 공연을 한 번 더 보고 싶다. 온전한 상황에서 걱정 없이 품고 싶은 무대이기 때문이다. 두 줄로 돼 있어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해금의 꿈'을 무한대로 넓혔다. 그것은 결국 여성 연주자 강은일, 나아가 여성의 가능성을 확대한 순간이기도 했다.

엄마라는 오래된 정서를 새로움으로 환기시키는 작업. 강은일의 공연 브랜드 타이틀인 '오래된 미래'가 수긍이 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9 창작산실 올해의신작'의 전통예술 부문 선정작이다. 이 프로그램에 선정된 공연들은 3월29일까지 개별적으로 이어진다. '코로나 19'가 창작진의 노력과 작품의 완성도까지 아프게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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