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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여장은 경기민요를 거들뿐, 이희문은 '소리꾼'이었다

등록 2020.02.28 09: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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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희문. (사진 = 이희문컴퍼니 제공) 2020.02.26.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이희문. (사진 = 이희문컴퍼니 제공) 2020.02.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개인의 특수한 이야기가 다수의 공감을 얻으며 보편적 역사가 되도록 만드는 노래의 힘.

경기소리꾼 이희문이 이끄는 '이희문컴퍼니'가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친 '깊은사랑(舍廊) 3부작'을 통해서 느꼈다.

국악 록 밴드 '씽씽' 등을 통해 엿본 이희문의 화려한 모습은 그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머리를 부풀린 가발, 하이힐 등을 통해 꾸민 여장은 그의 낭창낭창한 목소리를 들어보게끔 하는 보조 수단일 뿐이다.

춤사위까지 더해진 이런 외적인 면모는 국악 공연계에서 이희문이 '치트키'로 통한 계기가 되긴 했다. 그가 출연하는 공연은 단독이든 갈라든 게스트 출연이든 매진 사례다.

그런데 단정한 한복을 입고서, 경쾌하지만 부산스럽지 않고 서정적이지만 처연하지 않은 경기민요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들어야 이희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경기명창인 고주랑 여사를 모친으로 둔 이희문은 근래에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경기민요의 맥을 잇고 있는 드문 소리꾼이다.

현재 '소리'라고 하면 대부분 전라 지역의 판소리를 떠올린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경기민요는 서울, 경기 지역에서 대중가요로 통하며 인기를 누렸다. 서민들의 애환이 선율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됐지만 크게 주목은 받지 못했다. 이듬해 태어난 이희문은 경기민요의 역사를 몸과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는 경기민요 이수자다.

이희문이 처음부터 경기민요에 '올인'한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영상을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20대 후반에 어머니의 친구인 이춘희 명창의 권유로 뒤늦게 경기민요를 시작했다. 본인도 모르게 자신에게 새겨진 경기민요의 무늬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꺼내 그려나가고 있다.

'깊은 사랑' 시리즈가 그 무늬들을 그려나가는 일종의 도화지다. 1부 깊은사랑(2016), 2부 사계축(四契軸)(2017), 3부 민요삼천리(民謠三千里)(2018) 등 총 3부작으로 나눠 발표한 이 시리즈는 경기민요의 문화와 역사를 경기민요, 잡가와 함께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보여준다.

20·21일 깊은사랑, 22·23일 사계축, 25·26일 민요삼천리를 공연했다. 21일, 23일, 26일 공연을 관람했는데 최근 50년 역사를 시간여행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깊은 사랑'은 옛날 농한기에 남성들이 쉬는 땅을 파고 그 위에 볏짚으로 움집을 지어 방을 만들었던 곳이다. 일종의 쉼터 같은 곳이었는데 그곳을 '깊은 사랑방'이라고 했단다. 

제목을 여기서 따온 1부 깊은사랑은 이희문이 어떻게 소리꾼이 됐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2부 사계축은 이희문을 포함한 남자 소리꾼의 역사다. 청파동과 만리동일대, 즉 예전 사계축(四契軸) 지역에서 번성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남성 소리꾼들의 소리를 찾아간다. 서울시무형문화재 제21호 휘몰이잡가 예능보유자 박상옥 명창이 특별출연, 생생함을 더했다.

백미는 3부 '민요삼천리'였다. 여자 소리꾼의 이야기다. 이희문이 어머니 고주랑 명창을 꼭 빼닮은 모습으로 분장하고, 그녀를 직접 연기까지 한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 입었던 한복과 똑같이 생긴 의상도 지어 입었다.

고 명창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어려워진 가정 형편으로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던 그녀는 충북 단양 등지에서 홀로 생활하다 서울의 어느 집에 수양딸이 됐다. 하지만 이내 그곳을 나와 종각 인근의 신신백화점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곳에서 들은 민요가 고 명창의 마음을 홀렸고 종로 인근의 전수 학원에서 민요를 배우면서 명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희문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어머니로 분장한 채 들려주는 역사는 경기민요의 역사이자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이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이희문. (사진 = 이희문컴퍼니 제공) 2020.02.26.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이희문. (사진 = 이희문컴퍼니 제공) 2020.02.26. [email protected]


'민요삼천리' 제목은 국립국악원이 1968년 발매한 동명의 음반에서 따왔다. 고 명창을 비롯 당대 명창들의 히트곡을 쏟아낸 앨범이다. 이런 콘셉트의 음반을 모티브로 삼은 공연인 만큼 다른 명창들도 조명됐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인물이 고 명창과 이춘희 명창을 이끌기도 했던 안비취 명창이다.

'조선아이돌'을 표방하는 그룹 '놈놈'의 신승태가 안 명창을 연기했는데 단순히 흉내낸 것을 넘어 그녀에게 빙의한 듯한 노래와 디테일 연기를 보여줬다. 

이희문과 신승태 그리고 조원석, 김주현 등 남자 소리꾼들은 1980년대부터 경기민요의 주류였던 여자 소리꾼들의 소리를 자신들만의 기교와 화법으로 소화한다. 경기민요가 고색창연한 것이 아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경기민요는 우리의 음악 중에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이희문이 '정선아리랑'과 '본조아리랑'을 섞어 부른 것으로 시작한 이날 공연은 경기민요의 화룡점정으로 통한 '노랫가락' '창부타령' 등으로 담백하게 수놓아졌다.

장르의 벽을 허물며 우리 음악계의 이단아로 통한 이희문이 주축이 된 이희문컴퍼니는 무규칙 이종으로 경기민요의 본질을 살려낸다. 이런 재창조는 익숙함을 신선하게 만들어버린다. 검증된 복제는 이 시대에 통하지 않을 뿐더러 이들에게는 안주함일 뿐이다. 진짜 이 시대의 '소리꾼'들을 만났다.
 
이희문 공연은 예매 오픈 즉시 매진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세로 군데 군데 객석이 비었다. "이런 시국에도" 와준 관객들에게 이희문이 매번 큰 절을 올린 이유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3부작을 연이어 감상해야만 하는 정당성을 획득한 공연이다. 신승태가 연기한 안비취 선생이 거듭 "건강하세요"라고 강조한 만큼, 소리꾼과 스태프 그리고 관객 모두 서로의 건강을 위해 조심한 공연이기도 했다.

마지막 공연날인 26일 앙코르는 뱃놀이였다. "어기야 디여차, 어야디여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경기민요를 위한 이희문의 항해는 이제 시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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