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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애이불비'로 기억한 5·18민주화운동…뮤지컬 '광주'

등록 2020.10.20 12: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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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주'. 2020.10.20. (사진 = 라이브, 마방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주'. 2020.10.20. (사진 = 라이브, 마방진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뮤지컬 '광주'는 '고선웅 표' 작품이다. 고선웅 연출의 '애이불비(哀而不悲)' 정서가 흐른다.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 하는 것이다.

뮤지컬 '아리랑', 연극 '푸르른 날에'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 '산허구리'처럼 고 연출이 우리의 정서를 녹여낸 작품뿐 아니라, 그가 셰익스피어 '리어왕'을 원작으로 삼은 연극 '리어외전'에서도 녹아 있었다.

공연계에서는 '고선웅 매직'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이들 공연에서는 슬픔이 비참하지 않게 승화됐다. 5·18민주화운동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자는 뮤지컬 '광주'에서 그 정서가 극대화된다.

그런데 이번엔 일부에서 이런 정서를 낯설어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5·18민주화운동의 무게감 때문이리라.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이 민주화의 상징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큰 상처다.

그런 상황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는 것'으로 당시 광주의 상황을 본질로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자칫 가벼운 해석으로 읽힐 수 있다.

군의 투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 논리를 생산·유포한 것으로 알려진 편의대원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여지, 여성 캐릭터가 보조 역에 머문다는 점 등에 대해서도 아쉬운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고 연출과 제작진의 진정성을 평가절하하는 건 부당하다. 그 동안 5·18민주화운동은 아픔의 공적인 측면으로 주로 기억돼 왔는데, '광주'는 사적인 측면에서 기억하고자 시도한다.

5월27일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함락되기까지를 그리는데 그 과정에서 결사 항전한 시민군을 무리지어 '아픔을 타자화'시키지 않는다. 아파하고, 슬퍼하고, 싸우는 과정에서도 긍정적인 삶에 대한 기운이 묻어 있음을 표출한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 시내에서 가장 많이 들렸던 노래에서 모티브를 얻은 넘버 '훌라훌라'가 대표적이다.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주'. 2020.10.20. (사진 = 라이브, 마방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주'. 2020.10.20. (사진 = 라이브, 마방진 제공) [email protected]

'손뼉 치며 빙빙 돌아라'라는 동요로도 알려진 노래를 시민군이 개사해 불렀다. "무릎 꿇고 사는 것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노라 훌라훌라", "유신 철폐 훌라훌라"라고 목놓아 아픔 속에서 '뭉근한 희망'을 노래했다.

극 중에서 시위 도중 잡혀가 세상을 뜬 '오용수'가 반짝이 재킷 같은 무대 의상을 입고, 비현실적으로 등장해 트로트 풍 '마음만은 알아주세요'를 부르는 장면에 대해서도 일부에서 오해를 한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5·18민주화운동을 다루는 장르로서 알맞지 않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맞다. 트로트는 한동안 저속한 음악으로 통했다. 왜색이 짙은 음악으로 치부되며 무시당했다. 하지만 트로트는 항상 곁에서 우리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다. 최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간 쌓여 있던 우리의 일상적 아픔과 한을 이 음악이 잘 담아내고 있다는 걸 전국민적으로 뒤늦게 깨달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용수가 트로트를 부르는 것이 마냥 낯설지는 않다. 

앞서 고 연출은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를 통해 '애이불비'의 공력을 증명했다.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을 표방하는 '푸르른 날에'는 5·18이라는 비극을 다루면서도 발랄한 에너지를 마음껏 뽐냈다.

5·18를 다룬 김지훈 감독의 영화 '화려한 휴가' 등이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정공법으로 돌파한 것에 반해 '푸르른날에', '광주'는 과장된 언어와 몸짓, 위트 등으로 측면을 공략한다.

편의대 시선이 담긴 뮤지컬 '광주'는 그리고 고선웅 연출의 총체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와 짝패로 봐야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무대 위에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전남대 정문에서부터 출발해 완전한 고립 속에서 민주화를 위해 싸운 광주의 열흘을 재현한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다큐적 아픔을 '광주'는 극적으로 승화시킨다. 

한편에서는 뮤지컬 넘버에 낯설어하는 관객들도 많다. 작곡가 최우정의 음악은 어렵다. 최 작곡가는 작년 고 연출과 함께 작업한 오페라 '1945'에서 창가, 엔카, 민요, 동요, 종교음악, 클래식 등 1940년 대 동아시아 지역 민중의 삶과 가까이 닿아 있었던 다양한 음악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양한 장르를 사용한 건 마찬가지지만, 미국 뮤지컬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 풍의 불협화음이 곳곳에 배치됐다. 그래서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구간이 드물다. 감정이 배출되지 않고 계속 쌓이는 느낌이다. 그래서 '광주'와 잘 맞는다.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아픔을, 감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넌지시 내비치는 듯하다.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주'. 2020.10.20. (사진 = 라이브, 마방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주'. 2020.10.20. (사진 = 라이브, 마방진 제공) [email protected]

이처럼 뮤지컬 '광주'는 그간 5·18민주화운동을 해석해온 것과는 다른 연출, 음악을 통해 아픔을 이해하려는, 지난한 노력의 과정을 펼쳐낸다.

역사적 사실은 슬프지만, 먀냥 슬프게 애도하자고 공연 장르로 옮기는 건 아니다. 자기만의 고유한 서사와 연출로, 이 역사적 상징을 또 다시 기억해내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광주'는 희미해진 색 위에 좀 더 밝은 색을 덧칠해 죽은 자를 애도하고, 남은 자를 진정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내내 테마 음악으로 흐르고, 마지막을 장식하며 극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그래서 더 뜨겁다.

편의대원 '박한수' 역의 민우혁·테이·서은광, 광주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캐릭터인 정화인 역의 장은아·정인지, 야학교사 윤이건 역의 민영기·김찬호, 또 다른 야학 교사 '문수경' 역의 정유지·이봄소리·최지혜, 분위기 메이커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이기백 역의 김대곤과 주민진 등 배우들도 내내 뜨거움을 분출한다.

역사적 아픔은 영영 해소하기 힘든 우리의 난제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처를 딛고, 더 밝은 앞날을 위해 행진해야 한다.

뮤지컬 '광주'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광주문화재단과 제작사 라이브㈜가 주관한다. '2019 님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 세계화 사업'의 하나로 기획됐다. 11월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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