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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두산연강예술상' 윤혜숙 "연극인, 언택트시대 '보부상'

등록 2020.11.04 08: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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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윤혜숙 연출. 2020.11.04.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윤혜숙 연출. 2020.11.04.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저희 아버지께서 '21세기에 네가 연극을 하는 것은 남들이 로켓·총알 배송할 때, 보부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셨어요. 이왕 보부상 하는 거 연극인들이 해야 하는 일은 물건 뒤에 사람이 있음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극장이, 사람이 누구 곁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겠습니다."

최근 두산연강재단 '제11회 두산연강예술상'을 받은 연출가 윤혜숙(공연 부문)의 수상 소감은 연극계에서 화제였다. 두산아트센터 유튜브 채널에도 게재된 이 수상소감은 열악한 연극계 현실을 인간적으로 꼬집은(?) 윤 연출가 부친의 유쾌한 촌철살인과 그걸 따듯하게 받아친 그녀의 위트가 일품이었다. 

최근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윤 연출은 두산연강예술상을 받은 것과 관련 "연극을 하면서 빚진 사람이 많은데, 잠깐 돌아서서 배꼽 인사를 할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감사의 마음은 물질로 표현하라고 배웠는데 식사라로 한끼 사드리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할 수 있게 돼 감사하죠. 수상 이후 제 주변의 창작자들이 많이 생각났어요."

항간의 아버지와 불화설(?)에 대해서는 유쾌하게 답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유난히 돈독했어요. 외모적으로도 닮았고, 밥 먹을 때 반찬 집는 순서도 똑같아요. 그 만큼 심정적으로도 가깝죠. 아버지는 굉장히 재미가 있는 분이에요. 거창하게는 우주, 미시적으로 세포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주 재미있는 생각들을 공유해주시죠."

사실 부친은 윤 연출이 연극하는 것을 반기지는 않았다. 시대를 절묘하게 통찰한 '보부상 이야기'도 몇 년 전에 그녀에게 건넨 것이었다.

윤 연출은 하지만 보부상이라는 표현에 대해 긍정했다. "상대방에게 무슨 물건이 필요한지 알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잖아요. 연극이 추구해야 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에 보부상은 무조건 컨택트해야 하는데 그게 연극이랑 닮아 있는 거죠. 택배로 오는 물건도 그 뒤에는 노동자들이 있어 가능한 거잖아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어요."

윤 연출이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꿈꿔온 건 아니다. 중학교 H.R 시간에 '문화산책부'에 들었다가 처음 뮤지컬을 접했다. 직접 돈을 내고 공연을 봐야 해 신청 인원이 많지 않았던 부서다. 하지만 목동에 학교와 집이 있던 윤 연출은 서초동 예술의전당까지 꽤 먼 거리를 오가며 공연을 봤다.

뮤지컬 '그리스'를 보고 "지구가 흔들리는 경험을 한" 윤 연출은 '렌트' '브로드웨이 42번가' '시카고' '코러스 라인' 등 유명 라이선스 뮤지컬은 물론 '명성황후' 같은 창작물까지 각종 뮤지컬을 섭렵했다.
 
중학교 때는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어서 작은 아카데미를 다니며 연기, 탭댄스, 성악 등을 배우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예고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으나, 잠시 그 마음을 접고 대학에 어문계열로 입학했다. 이후 뭉게뭉게 연극에 대한 열망이 피어 올랐다. 학생회관을 지나다 연극 동아리의 아서 밀러 포스터 앞에 한참을 멈춰 있다가 입단했다. 이후 대학원에서 공연을 전공하며 연극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로에는 연출가 부새롬·극작가 김은성이 있는 달나라 동백꽃에 2010년대 중반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았다. 연출 데뷔작은 2015년 문래동 스튜디오QDA에서 공연한 '작은문공장'이다. '소녀시대 태티서'처럼 달나라동백꽃의 유닛인 배선희·이지혜·박주영 배우와 본인 포함 네 명이서 총 제작비 50만원을 들여 만든 작품이었다.
 
일본 마임이스트 오쿠다 마사시가 이끄는 이 극장은 가로 3mX세로 3m의 작은 공간. 도르래로 무대 막을 올리고 내리는 이 공간에서 작업 과정이 사랑스러웠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두산연강예술상 받는 윤혜숙 연출. 2020.11.04.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두산연강예술상 받는 윤혜숙 연출. 2020.11.04.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이후 검열에 대한 연극인 '15분', 이강백 작가가 쓴 작품으로 관계가 소원했던 부부가 큰 홍수를 겪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무언극 이불' 등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작가 루비 래 슈피겔이 2014년 발표한 '마른 대지'(번역 함유선)로 크게 주목 받았다. 혼자서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한 고등학교 수영부 학생 '에이미'를 통해 소녀들의 불안, 고립감 등을 그린 수작.

2017년 두산아트센터 'DAC(DOOSAN Art Center) 희곡 리서치' 때부터 이 작품에 참여한 윤 연출은 2018년 공연, 최근 여름 공연 등을 통해 연출력을 입증했다.

극작을 겸하지 않고 있는 윤 연출은 "주제를 정하면 작품을 오히려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대본을 읽다 보면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고 했다. 자신은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겸손하면서 "글을 머릿속에구현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일 뿐이에요. 처음부터 그려내는 재주는 없다"고 했다.

윤 연출의 특징은 대사, 행동뿐만 아니라 공간의 정서, 오브제 등 연극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이용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것을 바탕으로 연출하는 사람이라 연극이 갖추고 있는 무대, 소품, 조명을 모두 활용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에요. '달나라 동백꽃'에서 배운 분업 시스템도 큰 도움이 됐죠."

윤 연출은 현재 극단 래빗홀씨어터 대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에서 따온 이름으로 "앨리스가 토끼굴에 떨어진 것처럼, 극장이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선사하는 통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윤 연출은 데뷔하자마자 연극계 블랙리스트, 그리고 미투운동를 겪어왔다. 그녀는 "두 가지 인격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 창작자로서의 인격이죠. 이런 사태 이후 작업자이 이 두 가지 인격에 대한 동의들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늘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면 더 나은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면서 "평등한 작업환경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더라고요. 연출·배우,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책상과 의자를 챙기는 것부터가 중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를 비롯한 재난,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가 넘치는 시대에 연극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물었다. 윤 연출 특유의 긍정이 담긴 답이 돌아왔다.

"연극만큼 계속해서 자가 질문을 던져온 장르도 없는 거 같아요. 매번 위기다 보니 '잘하고 있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해온 거죠. 코로나 재난의 시국에도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누구는 연극을 확장할 것이고, 누구는 과거의 것을 고수하는 선택을 하겠죠. 그런 상황에서  폭 넓게 연극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더 탄탄해질 것이라고 봐요."

혜화동1번지 7기 동인이기도 한 윤 연출의 고민은 이어진다. '2020 혜화동1번지 7기동인 가을페스티벌 - '맞;춤''의 세번째 작품인 '춤의 국가'를 래빗홀씨어터 동료들과 함께 20~29일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한다. 여섯 명의 여자아이들과 한명의 남자아이로 구성된 댄스팀이 대회를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는 이야기로 장애인 창작자과 함께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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