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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대학로와 '거리두기'한 공연장 주목

등록 2021.08.21 11:10:59수정 2021.08.21 11: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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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고개 예술극장·디스 이스 낫 어 처치

뚝섬 플레이스·신촌문화발전소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 중인 13일 연극 등 공연장이 다수 위치한 서울 종로구 대학로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1.07.13.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 중인 13일 연극 등 공연장이 다수 위치한 서울 종로구 대학로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1.07.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대학로는 광복 후 서울대 본부와 단과대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1975년 서울대가 의과대만 남기고 관악구로 이전할 때까지 이 학교의 중심이자 대학생들의 활동 무대였다.

대학로 명칭이 공식화한 건 1966년. 1985년 문화예술의 거리로 조성되면서 '공연계 성지'가 됐다. 하지만 2010년대 안팎에 이곳 상권이 상업화하면서 순수 연극인들의 입지가 줄어들어갔다. 임대료 압박에 극장을 접고 대학로를 떠난 이들이 하나둘씩 늘었다.

현재 크고 작은 극장 140여개가 몰려 있는데 위기는 여전하다. 더구나 지난해 2월부터 1년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우리 삶을 지배한 코로나19로 인해 소극장들은 더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 대학로와 '거리두기'한 작은 공연장들이 주목 받고 있다. 미아리고개 예술극장, 디스 이스 낫 어 처치(This Is Not a Church), 뚝섬 플레이스, 신촌문화발전소 등이다. 

아직은 소수 관객만 찾는 작은 공연장들이다. 하지만 개성 강한 작품들로, 공연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소수의 인원만 모이다보니, 방역 지침을 지키는데 수월하다. 사람들이 몰리는 지역과 떨어져 있어, 쾌적하다는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 위기와 상관 없이 확실한 콘텐츠와 개성이 있다면, 작은 공연장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공간들이다.

도로 옆 공간, 문이 닫히면 다른 세상 열려…미아리고개 예술극장

대학로 혜화역에서 북쪽, 즉 한성대입구역·성신여대입구역을 거쳐 2.6㎞를 직진하면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이 나온다. 도로에 인접해 있어 극장 위치로서는 독특한 풍경을 갖고 있다.

공연 직전까지 열린 입구 문을 통해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그런데 문을 닫으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서울=뉴시스] 미아리고개 예술극장. 2021.08.21. (사진 = 소셜미디어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미아리고개 예술극장. 2021.08.21. (사진 = 소셜미디어 캡처) [email protected]

정확히 성북구 미아리고개 구름다리 아래에 위치했다. 1998년 개관 이후 지역 공공극장으로 운영됐다. 성북문화재단 출범 이후 2015년부터 지역예술단체, 지역주민들의 활동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마을담은극장 협동조합'과의 민-관 협력형 지역극장 운영 모델을 실험 중이다. 지역예술가, 활동가, 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층고가 높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 젊고 실험적인 극단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서울괴담', '청년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등이 상주 단체로 있었다.

'여기는 당연히, 극장'과 성북문화재단이 협업한 고(故) 이은용 작가·구자혜 연출의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지난 5월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백상연극상'을 받기도 했다. 이 연극은 지난 7월 미아리고개 예술극장 무대에 다시 올랐는데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또 이 극장에선 20~30대 공동체 연극그룹 '화학작용3'이 주목할 만한 연극 축제를 펼치기도 했다. 2019년 10월 극장에 휠체어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장애인, 노약자 등의 관람 편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공간이다. 

청년단 민새롬 연출이 "분투하는 유희왕 PD"로 칭송한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유희정 PD는 "미고개(미아리고개) 극장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색을 달리했고 다양한 색이 덧입혀졌다. 그렇게 공간도 인격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우리에게 몸소 보여줬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정다슬 파운데이션 소장품 전' 퍼포먼스 중인 디스 이스 낫 어 처치. 2021.08.21. (사진 = 아워레이보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다슬 파운데이션 소장품 전' 퍼포먼스 중인 디스 이스 낫 어 처치. 2021.08.21. (사진 = 아워레이보 제공) [email protected]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디스 이스 낫 어 처치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서 다시 한성대 입구역쪽으로 내려와, 6번 출구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튼 뒤 골목을 누비면 디스 이스 낫 어 처치가 보인다.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1929) 속 담배 파이프 그림 밑에 적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역설적인 문구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곳이다. 1980년대에 지어진 명성교회 외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그룹 '아워레이보'가 매입했고 작년 8월부터 디스이스낫어처치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젊은 예술가, 관객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나고 있다.

공연, 전시 등을 아우르는 '다목적 공간'인 이곳의 큰 특징은 커다란 창문이다. 창문을 찾기 힘든 기존 공연장과 다른 구조. 그래서 다른 공연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오후 5시 안팎으로 시작하는 공연이 많다.

빛이 남아 있을 때와 어스름해질 때의 차이가 생기는, '자연 조명'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역시 층고가 높아 다영한 연출도 가능하다.

아워레이보 작가인 이정형 대표는 "장식적인 요소를 대부분 제거해 디폴트 값으로 용도에 맞게 공간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면서 "환경적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예술가들이 거기에 적응하는 동시에 오히려 상상력을 만들어내더라. 천천히 길게 가는 것이 우리 공간의 목표"라고 말했다.

설유진 연출이 이끄는 극단 907의 '홍평국전' 등이 이곳에서 공연을 해 호응을 얻었다.
[서울=뉴시스] 극단 성북동 비둘기 상주공간 '뚝섬 플레이스'. 2021.07.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극단 성북동 비둘기 상주공간 '뚝섬 플레이스'. 2021.07.23. [email protected]

성북동 비둘기가 상수하는 곳, 뚝섬 플레이스

한성대입구역에서 4호선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호선, 다시 수인분당선 왕십리역에서 갈아탄 뒤 서울숲역에 하차해 10분 정도 걸어가면 뚝섬 플레이스가 나온다.

대대적인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상황이 맞물려 핫플레이스가 됐고, 재개발도 연기됐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돌아, 인적이 드문 위치에 있는 공연장을 찾아가는 것은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연극 관람법이다. 개발에 밀려난 비둘기의 삶을 노래한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와 같은 이름을 지닌 이 극단의 삶도 거리두기에 가깝다. 성북동에 시작해 한남동으로 밀려났다가, 다시 성수동에 겨우 둥지를 튼 극단이다.

원래 소극장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객석수가 더 줄었다. 최근 성북동 비둘기가 이곳에서 공연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바이러스를 중심(中心)으로'에 출연한 배우는 11명이었는데, 관객은 12명이었다.

김현탁 연출이 이끄는 성북동 비둘기는 무엇보다 서비스 정신이 남다른 극단이다. 스태프도 겸하는 배우가 공연 전 직접 관객을 맞고 차를 대접하는 등 극진하게 모신다. 독특한 구조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을 보는 것도 의미가 크지만, 관객을 대하는 이들의 마음을 체험하는 것도 특별하다.

청년문화 부활을 꿈꾸다… 신촌문화발전소

뚝섬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신촌역에서 하차한 뒤 10분가량을 걸으면 신촌문화발전소가 보인다. 주택가 언덕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인 이곳은 좁은 대지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지상 3층·지하 2층 구조다.

[서울=뉴시스] 신촌문화발전소. 2021.08.21. (사진 = 홈페이지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신촌문화발전소. 2021.08.21. (사진 = 홈페이지 캡처) [email protected]

사실 신촌 일대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명동과 함께 소극장 연극의 성지로 통했다. 1970년대 극단 민예가 터를 잡은 이후 1980년대 신촌은 연극으로 활기를 띠었다. 대학가답게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1980년대 잦은 시위, 비슷한 시기 대학로 부흥과 함께 이곳은 그 역할을 상실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더 스테이지' 등의 공연 공간이 남아 있긴 했다.

2018년 6월 개관한 신촌문화발전소는 신촌 지역 청년 문화의 맥을 잇고 있다. 신촌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건립됐고 서대문구청에서 직영하고 있다. 지하 2층에 자리 잡은 소극장의 객석은 60석. 코로나19 이후 매회 약 20석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공공극장으로서 소수자·약자의 시선을 다양한 목소리로 담아내 예술가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개관 첫해 주요 키워드는 여성·장애·기술이었다.

이후 공간 특정형 공연 등을 꾸준히 선보이며 공연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엔 안정민 연출이 이끄는 창작집단 푸른수염의 낭독극 '구슬정원' 등을 선보인 '2021 오드아이프로젝트'가 주목 받았다.

아울러 신촌문화발전소는 신촌 청년 문화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이들의 향수도 자극하고 있다. 25년 동안 신촌 일대를 지켜오다 지난 2016년 오프라인 매장을 폐점한 '향음악사' 전 직원이 이곳을 찾아와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다.

홍은지 신촌문화발전소 소장은 "민간에서 사라진 크고 작은 문화를 공공 공간에서 어떻게 지켜나갈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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