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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아트클럽]구순 박서보 화백의 식지않는 열정...'색채 묘법'

등록 2021.09.17 12:11:02수정 2022.01.21 18: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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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서 개인전...홍시·단풍색 등 근작 16점 공개

다리 힘없어 넘어지지만 하루 5시간씩 연필로 선 그어

"내년 베니스비엔날레서 200호 대작 신작 공개할 것"

[서울=뉴시스] 박서보 화백. 사진=국제갤러리 제공. 2021.9.17. photo@newsis.scom

[서울=뉴시스] 박서보 화백. 사진=국제갤러리 제공. 2021.9.1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내 전부를 걸고 그림과 싸우는 거지요.”

박서보 화백의 열정은 여전했다. 구순의 나이에도 지팡이를 짚고 서서 하루 5시간 연필로 선을 긋는다.

"늙어 다리에 힘이 없어 작업실에서 자빠져요. 서 있거나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점점 힘듭니다. 그래도 제 인생을 걸고 완성하고 싶어요."

목표가 있다. 내년에 베니스비엔날레 전시할 계획이다. 캔버스 크기는 200호(259× 195cm) 대작들에 신작을 선보인다. 2019년부터 시작한 작품으로 올해 말 끝낸다는 의지다.

"지구에 살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중섭·박수근·김환기 등 '죽은 화가'와 달리 '박서보'는 살아 생전 화가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단색화 거장'으로 불리며 지난 10여 년 전 팔순에 최고의 화가로 등극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화가는 환갑 이후부터가 절정이라는 말을 박서보 화백이 증명했다.

자화자찬 화법의 1인자이기도 한 그는 "외국에서는 나를 한국 현대미술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자랑도 잊지 않는다.

일본 유학파 등 이전 세대와 달리 '토종 미술인'인 그의 그림 '묘법'은 마법이 됐다 '장르가 박서보'라 할 정도로 독보적인 작품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끝까지 살아남아 단색화를 일궈내고 세계화시켰다"는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닌 이유다.

2016년 영국 런던 화이트 큐브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데이미언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 등 영국 스타 작가뿐 아니라 전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취급하는 세계 최고의 화랑에서 연 한국 작가 초대전은 한국 미술계의 쾌거이자 일대 사건이었다. 이후 세계 최고 화랑들의 러브콜이 이어져 파리 페로탕 갤러리, 국립 그랑팔레미술관, 도코갤러리, 홍콩 아시아소사이티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붓을 놓는다'는 팔순 이후부터 후끈한 봄날이 이어진 '행복한 화가'다.

작품값도 10년전보다 최고 20배 정도 상승했다.박 서보 화백은 평균 호당가격이 10여년 전보다 10배 올라 50만원이었던 호당가격은 2015년 400만원을 넘겼다. 100호 크기이면, 기본 4억선에 거래되는 셈이다.
[서울=뉴시스] 박서보_Ecriture (描法) No. 060910-08. 사진=국제갤러리 제공.

[서울=뉴시스] 박서보_Ecriture (描法) No. 060910-08. 사진=국제갤러리 제공.


◇장르가 된 '박서보 묘법'은 어떤 그림?

'묘법(描法·Ecriture)'연작은1970년대 초 시작됐다. 화면에 물감을 바르고 연필로 수없이 선을 그은 '연필 묘법'이 이어지고 있다. 그림값도 치솟았고, 2007년작 '묘법'은 올해 처음 4억대를 돌파했다.

둘째 아들이 스승이다. "어느날 아들이 노트 네모칸 밖으로 글씨가 삐져 나가자 화가 나서 빗금을 막 그리더라고요. 그걸 옆에서 보고 '저게 체념이다'고 생각했죠."

"아들이 하던 짓을 그림으로 흉내내 수없이 반복하니까 '연필 묘법'이 됐다"는 박 화백의 그림은 초기에는 사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의 그림과 비견됐지만, '산 자의 그림'은 생명력이 강했다. 사이 톰블리가 즉흥적인 에너지로 그려냈다면, 박서보는 깊은 내공의 볼수록 명상적인 그림이라는 평가를 획득했다.
 
지난 2014년 단색화가 세계미술시장에 진입했을때 박 화백의 당당함은 하늘을 찔렀다. 서양인들이 박 화백에 “한국의 피카소 같다”고 하자 “나는 피카소가 아니라 박카소다!”라고 맞받아친 일화는 유명하다.
 
 1970년대 초기(연필) 묘법, 1980년대 중기 묘법, 2000년대 이후의 후기(색채) 묘법으로 구분된다. 연필 묘법이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우고 수신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다면, 색채 묘법은 손의 흔적을 강조하는 대신 일정한 간격의 고랑으로 형태를 만들고 풍성한 색감을 강조하여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작가의 대표 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작품 제작을 위해 작가는 두 달 이상 물에 충분히 불린 한지 세 겹을 캔버스 위에 붙이고, 표면이 마르기 전에 흑연 심으로 이뤄진 굵은 연필로 선을 그어 나간다. 연필로 긋는 행위로 인해 젖은 한지에는 농부가 논두렁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좌우로 밀려 산과 골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물기를 말린 후 스스로 경험한 자연 경관을 담아 내기 위해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덧입힌다.

이렇게 연필로 그어내는 행위를 반복해 완성된 작품에는 축적된 시간이 덧입혀지고, 작가의 철학과 사유가 직조한 리듬이 생성된다.

'회화에 동아시아의 자연과 예술에 대한 관점을 담아냄으로써 한국의 모더니즘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뉴시스] 국제갤러리 1관(K1) 박서보 개인전 PARK SEO-BO 설치 전경. 사진=국제갤러리 제공.

[서울=뉴시스] 국제갤러리 1관(K1) 박서보 개인전 PARK SEO-BO 설치 전경. 사진=국제갤러리 제공.


◇박서보 묘법의 '색'...검정→오방색→흰색, 시대상 드러내

박서보의 회화에서 색은 시대상을 드러내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전후 시기의 원형질 연작에서는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불안의 정서를 표현한 검은색, 1960년대 후반 서양의 기하학적 추상에 대응해 전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유전질 연작에서는 전통적인 오방색, 그리고 1970년대에 ‘비워 냄’을 몸소 실천한 연필묘법 연작에서는 색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위해 흰색을 선택했다.

그러던 그가 2000년 이후 강렬하고선명한 색감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급진적인 시도는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하던 그가 새로운 디지털문명을 대면하며 느낀 공포심과 무관하지 않다.

디지털 문명으로의 대대적인 전환이 현대인들 누구나 겪는시대적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상을 녹인 작업을 이어오던 그에게 ‘더 이상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없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고, 이는 스스로 작업 중단까지 고려하기에 충분한 배경이 되었는데, 그 끝에서작가가 찾은 돌파구는 다시금 색이었다.

각종 이미지가 무차별적으로 범람하는 시대, 회화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색채 묘법 연작에서 회화는 더이상 자기표현의 도구로 기능하지 않는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의도된 경험을 강요하거나 메시지를 던지는 대신, 화면에 정적인 고요함과 리듬감 있는 활력만을 남겨 보는 이의 스트레스를 흡인(吸引)하는 장을 만든다.

이는 그가 스스로의 작품을 ‘흡인지’라 일컫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라불리는 그가 단색화를 “행위의 무목적성, 행위의 무한반복성, 행위과정에서 생성된 흔적(물성)을 정신화 하는것”의 세 가지 요소로 정의 내린 사실도 이 같은 회화의 새로운 역할을 뒷받침한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단색화 대가 박서보 화가가 15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1.09.15.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단색화 대가 박서보 화가가 15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1.09.15. [email protected]

◇국제갤러리서 개인전, 2000년대 이후 근작 16점 공개

"나는 그림 그리기가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색칠과 선 긋기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내는 깊은 맛은 서양인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에요. 누구도 따라못할 밀도감을 담으려고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미술이 곧 방법론임을 주장하는 박서보는 여러 측면에서 회화에 내재한 기존 질서들을 전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캔버스에 유화물감과 연필로 작업해오던 그는 1980년대 이후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양의 종이와는 달리 색과 빛을 흡수하는 성질의 한지는 ‘물아일체’를 실행하고자 하는 작가의 동양적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매체였다. 더 나아가 그 위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 즉 한지가 젖어 있는 동안 연필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골을 만들고 음영을 부여한 건 연필이라는 도구를 종이의 원초적인 물질성에 굴복시켰다고 해석할 수있다. 그 결과 화면에는 연필의 흔적이 아닌 과정과 질서만이 오롯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15일 개막한 박서보 화백 개인전은 '박서보 색(감)'의 묘한 기운 '묘법'을 실감할 수 있다.

‘왜 회화 작업을 하는가?’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변화하는 시대상에 부응하는 새로운 작업방식을 모색해온 그의 ‘후기 묘법’ 내지는 ‘색채 묘법’으로 알려진 2000년대 이후 근작 16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국제갤러리 K1 공간에서는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을, 그리고 K1의 안쪽 전시장에서는 홍시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 박서보가 자연에서 화면으로 유인한 색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는10월 31일까지.
[서울=뉴시스] 국제갤러리 박서보 화백 개인전 전경.

[서울=뉴시스] 국제갤러리 박서보 화백 개인전 전경.


◇박서보 화백은 누구?
화가 박서보(1931·본명 박재홍)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미술의 전위적 흐름을 이끌어왔다. 1956년 김영환, 김충선, 문우식과 함께 '4인전'을 통해 반국전 선언을 발표, 앵포르멜 기수로 화단의 스타작가였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62-1997) 및 학장(1986-1990)을역임했다. 2000년에는 명예교수로 임명되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 및 고문(1980)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대형 회고전을 비롯, 같은 해 독일 랑엔 재단(Langen Foundation), 2006년 프랑스 메트로폴 생떼띠엔느 근대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제갤러리와 손잡고 전시를 열고 있다. 그간 국제갤러리와 박서보는 국제갤러리(2014),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2016), 상하이 파워롱미술관(2018) 등에서 열린 그룹전들을 통해 단색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여정을 함께 해왔다.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은 지난 2010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도쿄도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아부다비, 홍콩 M+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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