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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루시 오케스트라, 힙합·우크라 민속음악으로 싸우다

등록 2022.05.15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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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비전 2022 송 콘테스트'서 경연곡 '스테파니아'로 우승

[서울=AP/뉴시스] 칼루시 오케스트라

[서울=AP/뉴시스] 칼루시 오케스트라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유로비전 2022 송 콘테스트'에서 경연곡 '스테파니아(Stefania)'로 우승한 우크라이나 6인조 밴드 '칼루시(Kalush) 오케스트라'는 힙합에 우크라이나 민속 음악을 결합한 팀이다.

우크라이나 서남부 이바노프란키우스크 주(州) 내 도시인 칼루시에서 팀 이름을 따온 힙합 그룹이 모태다. 칼루시는 지난 2019년 래퍼 겸 프런트맨이자 팀을 창단한 올레흐 프시우크(28)를 추축으로 결성된 3인 힙합그룹이다.

칼루시는 원래부터 자국에선 꽤나 인지도가 있는 팀이다. 미국 대표 힙합 레이블 중 하나인 '데프잼 레코드'(Def Jam Recordings)와도 음반 계약을 맺기도 했다.

칼루시 오케스트라는 이 힙합그룹 칼루시 멤버들을 주축으로 한 일종의 프로젝트 팀이다. 작년 멀티 악기 연주자 티모시 무지척(Tymofii Muzychuk)과 비탈리 두지크(Vitalii Duzhyk) 등 4명이 합류, 지금의 진용을 꾸렸다.

'스테파니아'는 올해 66회째 대회를 연 '유로비전 콘테스트'에서도 새 역사를 쓴 곡이다. 랩이 포함된 곡이 이 대회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힙합과 우크라이나의 전통 민속 음악의 결합을 내세웠다. 우크라이나의 전통 목관악기인 소필카(SOPILKA)의 소리가 구슬프게 삽입됐다. 칼루시 오케스트라가 포크 힙합 그룹으로 불리는 이유다.

'스테파니아'는 원래 프시우크가 자신의 모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작곡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 뒤엔 우크라이나를 위한 외침이 됐다.

늙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며 향수를 자극하다, 엄마가 자신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해줬는지를 깨달았다는 내용이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내 힘을 내게서 뺏을 수 없다" "길이 황폐해졌다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겠다" 등의 노랫말은 멤버들의 모국인 우크라이나의 상황과 국민들의 심경을 그대로 대변했다. 이로 인해 유럽 대중들로부터 "선견지명이 있는 곡"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서울=AP/뉴시스] 칼루시 오케스트라

[서울=AP/뉴시스] 칼루시 오케스트라

프시우크는 주최 측에 "전쟁이 시작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노래에 나오는 엄마를 우크라이나로 인식했다. 또 자신들의 어머니에 대해 감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얻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칼루시 오케스트라 멤버들은 고국이 아닌 이번 대회가 열린 이탈리아에서, 총 대신 노래를 들고 비장하게 싸웠다.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는 젊은 남성들의 출국을 막는 계엄령을 내렸는데 칼루시 오케스트라 멤버들은 여행을 할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공영 방송사 서스필네(Suspilne)는 방공호에서 이번 '유로비전 2022 송 콘테스트'를 중계했다. 이 방송사가 온라인에 올린 사진에는 침식된 벽들로 둘러싸인 벙커 같은 곳에서 진행자가 중계하는 모습이 담겼다. 진행자는 영국 BBC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이 대회를 매우 좋아한다. 평화로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칼루시 오케스트라는 노래가 정치·국제적 힘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실제 러시아 침공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알린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위한 지지와 원조에 큰 영감을 줬다고 유럽 언론들은 잇따라 전했다.

또 북유럽 중립국인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더 가깝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 핀란드 정부는 칼루시 오케스트라 우승 직후 나토 가입 의사를 공식화했다. 스웨덴은 오는 17일 나토 가입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자국 언론이 보도했다.

칼루시 오케스트라 리더인 프시우크는 이번 '유로비전 2022 송 콘테스트' 출전에 앞서 지난달 영국 타임즈(Times U.K.)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떠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구호 활동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AP/뉴시스] 칼루시 오케스트라

[서울=AP/뉴시스] 칼루시 오케스트라

우크라이나를 떠나기 전 그는 자원 봉사 단체를 설립, 러시아 침공으로 인해 집을 잃은 동포들의 피난처, 교통수단, 의약품을 찾는 것을 도왔다. 칼루시 오케스트라의 또 다른 단원인 무용수 슬라빅 흐나텐코는 키이우 영토방위군에 입대, 이번 유로비전 공연을 놓쳤다고 타임즈가 보도하기도 했다.

1956년 출발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1년에 한 번씩 열린다. 유럽과 주변 지역의 국가 대항 노래 경연 대회로 유럽 음악팬들에게 인기가 높고 권위도 인정 받는다. 스웨덴 팝그룹 '아바'(ABBA) 캐나다 출신 팝스타 셀린 디온(스위스 대표로 출전) 등이 이 대회를 통해 알려졌다.

칼루시 오케스트라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서 우승했다. 심사위원단 투표에서 4위에 머물렀으나, 시청자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631점으로 우승했다.

프시우크는 우승 트로피를 받은 직후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 승리는 모든 우크라이나인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크라이나 팀이 우승한 건 2004년, 2016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대회엔 25개국이 본선에 출전했는데 러시아 출전은 유럽방송연합(EBU)이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을 물어 금지됐다. 러시아는 1994년부터 이 대회에 꾸준히 참여했다. 유럽 지역의 여러 나라와 불편한 관계에도, 이 대회를 문화 교류의 발판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이제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까지 고립됐다는 것이 유럽 문화계의 해석이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우승팀이 속한 국가가 다음 대회 개최지가 된다. 내년엔 우크라이나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칼루시 오케스트라는 내년 제67회 대회가 모국에서 열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칼루시 오케스트라의 우승에 격려를 받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에 "내년엔 우크라이나가 유로비전을 개최한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마리우폴에 참가자와 관객들를 초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썼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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