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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화이트, 블러드 문 삼킨 파란 밤…록은 이렇게 젊다

등록 2022.11.09 06:30:25수정 2022.11.09 06: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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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예스24라이브홀서 첫 내한공연

[서울=뉴시스] 잭 화이트. 2022.11.09. (사진 = 라이브 네이션 코리아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잭 화이트. 2022.11.09. (사진 = 라이브 네이션 코리아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붉은 달을 삼킨 파란 밤.

8일 밤 서울 광장동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미국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 잭 화이트(Jack White·47)의 첫 내한공연이 1300명의 관객에게 선사한 황홀한 정경이다.

화이트가 공연한 시간엔 때마침 밤하늘엔 붉은 색을 띤 '블러드 문(blood moon)'이 떠올랐다. 개기월식엔 달이 붉게 물든다. 달이 붉게 보이는 까닭은 빛의 굴절 현상 때문. 지구 그림자가 달을 가릴 때도 햇빛은 지구 대기를 통과해 굴절하면서 일부 빛이 달을 비추는데, 이때 비교적 파장이 짧은 푸른 빛은 사방으로 퍼지고 파장이 긴 붉은 빛은 달에 도달해 이렇게 보인다.

그 흩어진 푸른 빛이 예스24라이브홀에 몰려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날 화이트 공연은 조명을 비롯해 파란색으로 가득했다. 그가 지난 4월에 발매한 솔로 4집 '피어 오브 더 던(Fear of the Dawn)'의 커버가 내내 연상됐다. 파란 밤하늘을 배경으로 둥근 달이 뜬 장면을 그렸는데, 포마드를 바른 파란 머리의 화이트도 등장한다.

그 커버 속 모습 그대로 무대 위에 나온 화이트는 4집 첫 번째 타이틀곡 '테이킹 미 백(Taking Me Back)'을 시작으로 록이 임자를 만났구나 싶은 무대를 선사했다.
[서울=뉴시스] 잭 화이트. 2022.11.09. (사진 = 라이브 네이션 코리아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잭 화이트. 2022.11.09. (사진 = 라이브 네이션 코리아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실 고백하자면 이번 내한공연은 화이트가 몸 담았던 혼성 록 듀오 '화이트 스트라입스(The White Stripes)'의 대표곡이자 매 공연마다 마지막으로 불렀던 '세븐 네이션 아미(Seven Nation Army)'로 향하는 여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처음 예상했던 75분보다 러닝타임이 훨씬 늘어나 2시간 동안 잭 화이트는 2000년대 개러지 록 리바이벌 열풍과 전성기를 주도한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노래와 자신의 솔로곡은 물론 그를 중심으로 결성됐던 수퍼 프로젝트 밴드 '데드 웨더'의 곡('I Cut Like a Buffalo'),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 '라콘터스(Raconteurs)'의 노래('Steady, as She Goes')를 모두 아우르며 어떤 노래에서도 관객들이 쉴 틈 없게 만들었다.
 
파란 밤에 어울리는 블루스를 바탕으로 하드록, 얼터너티브 록, 포크 록, 펑크, 컨트리 등을 모두 들려준 그는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록 히어로'였다. 어느 누리꾼이 이날 화이트의 무대에 대해 '일렉기타 병창'이라고 표현했는데 적확했다. 병창은 소리꾼이 악기를 직접 연주하면서 소리까지 하는 걸 가리키는데, 한발 뛰기를 병행하면서 드라마틱한 기타 연주를 선보이고 또 동시에 가성을 넘나드는 가창을 들려준 그는 내내 에너지로 넘쳤다.
[서울=뉴시스] 지난 7일 인천 미추홀구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 대 키움 히어로즈의 한국 시리즈 5차전을 관람한 잭 화이트. 이날 9회말 대타 끝내기 역전 홈런이 나왔다. 2022.11.07. (사진 = 잭 화이트 인스타그램 캡처)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지난 7일 인천 미추홀구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 대 키움 히어로즈의 한국 시리즈 5차전을 관람한 잭 화이트. 이날 9회말 대타 끝내기 역전 홈런이 나왔다. 2022.11.07. (사진 = 잭 화이트 인스타그램 캡처)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 화이트는 이날 멘트 없이 연주와 노래에 집중했다. 기타 소리를 유지하는 방식 등으로 네댓 곡 가량을 노래와 노래 사이에 끊김 없이 계속 연주해나가는 집중력이 탁월했다. 편곡적인 측면에서 실험적인 방식이 많았는데, 여전히 최고의 기타 테크니션이라 부를 만한 역량이 뒷받침돼 가능했던 부분이다. 라콘터스의 '유 돈트 언더스탠드 미(You Don't Understand Me)'를 들려줄 때는 건반 앞에 앉았는데, 이 연주 역시 명료했고 감미로웠다.

이날 공연 중에 화이트가 노래가 아닌 말로 전한 건 "한국에 와서 기쁘고 감사하다"는 것 외에 지난 7일 인천 미추홀구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 대 키움 히어로즈의 한국 시리즈 5차전을 관람한 것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날 경기에선 SSG 김강민의 9회말 대타 끝내기 역전 홈런이 나왔다. 화이트는 "야구장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확인하지도, 사진도 촬영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화이트의 공연을 관람한 록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다수가 오로지 공연에 집중했다.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위어 고잉 투 비 프렌즈(We’re Going to Be Friends)'를 부를 때는 다 같이 합창을 했고 '이프 아이 다이 투모로우(If I Die Tomorrow)'에선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밖에도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호텔 요바', 데드 웨러의 '아이 컷 라이크 어 버팔로(I cut like a buffalo)', 화이트의 솔로 음반에 실린 '래저레토(Lazaretto)' 등도 각자의 방식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화이트 외에 드럼, 베이스, 키보드 등의 세션 연주자들의 실력도 탁월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을 밀지 않고 예의 있게 관람하는 1층 스탠딩석의 관객들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서울=뉴시스] 잭 화이트. 2022.11.09. (사진 = 라이브 네이션 코리아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잭 화이트. 2022.11.09. (사진 = 라이브 네이션 코리아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드디어 "오오오오오"라는 주술적인 떼창을 불러 오는 '세븐 네이션 아미'의 순간. 이 주술은 앙코르를 부르는 주문이기도 한데, 직관한 '세븐 네이션 아미'는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곡으로 손색이 없는 노래라는 걸 주지시켰다. 모든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노래의 숭고함이랄까. 이 노래에선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의 고상함이 있었다.

록의 선구자인 화이트는 록이 이렇게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젊은 장르임을 깨닫게 했다. 블러드 문이 뜬 날 아이유의 '스트로베리 문'의 노랫말로 젊은 음악 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달이 익어가니, 아니 록이 여전히 익어가니 서둘러 젊은 피야. 로큰롤 포에버.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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