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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인디고' ②]에리카 바두·박지윤…주파수 통한 뮤지션들

등록 2022.12.09 13:14:53수정 2022.12.09 17: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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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큐레이팅한 전시 같은 앨범"

앤더슨 팩·타블로·김사월·마할리아·콜드·이이언·조유진

그리고 윤형근

[서울=AP/뉴시스] 에리카 바두

[서울=AP/뉴시스] 에리카 바두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악을 시작한지 어언 15년, 20대의 마지막 달에 제 1집이 나오게 됐어요. 많은 복잡한 생각들이 들지만 전작들을 포함한 그간의 제 모든 작업물들이 이 앨범 한 장을 내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어요. 첫 솔로 앨범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셔서 조금 의아하셨을 수도 있지만, 이번 앨범은 제가 스스로 큐레이팅한 전시 같은 앨범입니다."

미국 네오 솔(Solu)의 여왕 에리카 바두(Erykah Badu), 미국 R&B 솔 듀오 '실크 소닉' 멤버인 앤더슨 팩(Anderson .Paak), 힙합그룹 '에픽하이' 멤버 타블로,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사월, 영국 R&B 솔 싱어송라이터 마할리아, 한국계 캐나다인 R&B 힙합 뮤지션 폴 블랑코(Paul Blanco), 싱어송라이터 콜드(Colde), 밴드 '체리필터' 보컬 조유진, 싱어송라이터 박지윤, '서태지 밴드' 키보디스트 겸 프로듀서 닥스킴(DOCSKIM), 빅히트 뮤직 프로듀서 피독(Pdogg), 영국 일렉트로닉 듀오 '혼네(HONNE)', 밴드 '못'의 리더 겸 듀오 '나이트 오프' 멤버인 싱어송라이터 이이언(eAeon),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은희영(john eun)….

이 쟁쟁한 뮤지션들이 한 앨범의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까닭은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RM(28·김남준)이 솔로 정규 1집 '인디고(Indigo)'를 발매했기 때문이다. '미술 애호가'인 RM답게 전시를 큐레이팅하듯, 음악을 큐레이팅하며 각 영역마다 최적의 작가(뮤지션)를 섭외했다. RM은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의 주파수가 차마 대체할 수 없었던, 1순위의 섭외 대상들이었다"고 공언했다. 이 뮤지션들이 RM의 요청에 기꺼이 응한 이유는 그의 이름값이 아닌 진심을 봤기 때문이다.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RM이 어릴 때부터 무슨 음악을 들어왔고, 지금 어떤 이들과 음악·삶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 뮤지션들의 면면을 짧지만, 큐레이팅하듯 소개한다.

에리카 바두('윤(Yun)')

디안젤로가 네오 솔(Neo Soul)의 대부라면, 에리카 바두는 '네오 솔'의 대모다. 디안젤로와 협업 등으로 이름을 알리던 바두는 1997년 데뷔 앨범 '바두이즘(Baduizm)'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대중음악에 숭고함을 불어넣은 주인공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부친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음(音)을 내는 것이 몸의 장기와 정신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은 고대 이집트의 정신을 계승한다. 바두는 고급 술 브랜드의 캠페인 '와일드 래빗(Wild Rabbit)'에 참여하면서 진행한 해외 매체와 인터뷰에서 '내면의 오염될 수 없는 열정'을 말하며, 이집트에선 그것에 대해 카(Kah)라고 부른다고 했다. 본인의 활동명 에리카의 카가 여기서 왔다. 또 바두는 고대 이집트어로 생(生)을 뜻하는 앵크(ankh) 상징의 반지를 착용하고 다니기도 한다. 그의 목소리는 천진무구한 성품(性品)에서 '영원불변한 예술'을 추구한 고(故) 윤형근(1928~2007) 화백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은 '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택지였던 셈이다.
[서울=AP/뉴시스] 앤더슨 팩

[서울=AP/뉴시스] 앤더슨 팩


앤더슨 팩('스틸 라이프(Still Life)')

한국계 미국 래퍼 겸 싱어송라이터다.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결성한 프로젝트 듀오 '실크 소닉(Silk Sonic)'의 '리브 더 도어 오픈(Leave the Door Open)'으로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본상 2개 포함 4개의 트로피를 받는 등 지금까지 그래미에서 총 8차례 수상했다. 앤더슨 팩의 팩(Paak)은 박(Park) 씨 성을 가진 어머니가 입양 당시 서류에 팩(Paak)으로 잘못 기재되면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의 이름에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의 역사가 묻어 있는 셈이다. 이 사실을 안 한국 팬들은 그를 '밀양 박씨'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다. 앤더슨 팩의 아들 솔(Soul)이 방탄소년단 팬인 '아미' 이기도 하다. 앤더슨 팩은 솔뿐만 아니라 재즈, 힙합 등 장르 불문 탁월한 재능을 뽐내는데 펑키함이 일품이다. RM은 "박제된 정물이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캔버스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는 걸 표현하고 싶었고 그런 에너지가 있는 곡이라 펑키한 보컬이 더해지면 좋을 거 같아 제가 좋아하는 앤더슨 팩과 작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타블로('올 데이(All Day)')

RM이 어릴 때부터 '히어로'로 여겨온 힙합그룹 '에픽하이' 리더 타블로. 국내 힙합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타블로는 RM 뿐만 아니라 현재 활발히 힙합 기반 음악 신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입을 모아 존경하는 인물이다. 다양한 함의가 담긴 시(詩)적인 노랫말을 상업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성적으로 풀어내는 방면에서는 타블로가 단연 국내 톱이다. 타블로가 삶의 온갖 감정을 녹여내 꽃 피운 노래들이 실린 그의 솔로 음반 '열꽃'(2011)은 명반으로 회자된다. RM은 "함의들을 같이 써 나가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 방면에서 타블로 형이 우리나라 1등이라고 생각해 부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에픽하이 타블로. (사진=아워즈 제공) 2021.05.3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에픽하이 타블로. (사진=아워즈 제공) 2021.05.31. [email protected]


김사월('건망증')

김사월의 정규 1집 '수잔'(2015)은 몇년 전부터 유행한 '부캐 열풍'을 점지한 음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상의 인물, 김사월의 또 다른 자아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수잔을 앞세운 콘셉트 앨범. 무엇보다 특별한 기교 없이 깨끗한데, 몽환적이면서도 요염하고 청순하면서 귀여움이 배어 있는 김사월의 목소리를, 다양한 캐릭터를 입고 생명력을 얻었다. 특히 RM이 너무 좋아한다고 점 찍은 정규 2집 '로맨스'는 사랑·이별 여정을 1인칭 시점 소설처럼 풀어낸, 국내 대중음악 정규음반의 서사의 결을 풍성하게 만든 명반이다. 김사월은 1, 2집으로 각각 한국대중음악상 포크 음반 부문을 받았다.
[서울=뉴시스] 김사월. 2021.11.19. (사진 = 유어썸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사월. 2021.11.19. (사진 = 유어썸머 제공) [email protected]


마할리아 & 폴 블랑코 & 혼네('클로저(Closer)')

마할리아는 감미로운 음색·서정적 노랫말로 일찌감치 가능성을 인정 받아온 뮤지션이다. 청자를 끌어들이는 선율의 대중성이 상당한데, 그걸 쉬운 노래로 만들지 않는 아이디어가 곡마다 산재해 있다. 2019년 8월 내한공연을 하기도 했다. 한국계 캐나다인 R&B 힙합 뮤지션 폴 블랑코(Paul Blanco)은 최근 힙합계에서 '싱잉 랩'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동대구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 간 그는 창모, 더콰이엇, 애쉬 아일랜드, 호미들 등과 협업하며 이름을 알렸다. 더콰이엇이 이끄는 앰비션 뮤직에 소속돼 있다. 혼네는 RM과 이미 RM의 믹스테이프 '모노.' 수록곡 '서울(seoul)'에서 호흡을 맞췄던 영국 일렉트로닉 듀오다. 몽환적인 멜로디로 한국과 일본에서 특히 인기를 누리는 팀이다.
[서울=AP/뉴시스] 마할리아

[서울=AP/뉴시스] 마할리아


콜드('헥틱(Hectic)')

콜드는 2010년 중반 등장부터 뮤지션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2016년 그가 EOH(0channel)와 결성한 듀오 '오프온오프(offonoff)'는 타블로가 이끌었던 하이 그라운드에 영입되기도 했다. 특이한 보컬과 세련된 감각이 일품이라 다양한 장르에 몸 담은 뮤지션들이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최근엔 가수 최백호의 '덧칠'을 피처링했다. 절친한 RM과는 시티팝 '헥틱(Hectic)'을 작업했다. RM은 "남자들이 시티 팝을 하면 어떨까 싶어 오랜 친구인 콜드와 작업했어요. 어번한, 도시적인 감성을 가진 친구라 곡이 더 풍성해졌다"고 흡족해했다.
[서울=뉴시스] 콜드. 2022.12.09.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콜드. 2022.12.09.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이언('체인지(Change) pt.2' 프로듀싱)

밴드 '못'의 리더이자 듀오 '나이트 오프' 멤버인 싱어송라이터 이이언(eAeon)은 RM보다 형이지만 RM이 "음악적 친구"라고 표현할 정도로 신뢰가 두터운 뮤지션이다. '체인지 pt.2'는 데모를 거의 그대로 쓴 곡으로 알려졌는데, "어디에도 없는 사운드"를 찾아내는 이이언의 감각이 빛나는 곡이다.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 곡이 제일 호평을 받았다. RM은 이이언이 9년 만인 지난해 발매한 솔로 정규 2집 '프래질(Fragile)'의 타이틀곡 '그러지 마'를 피처링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이이언. 2021.05.14. (사진 = Motmusic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이언. 2021.05.14. (사진 = Motmusic 제공) [email protected]


밴드 '체리필터'의 보컬 조유진('들꽃놀이')

지난 8월 열린 '2022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마지막날 라인업에 밴드 '체리필터'가 포함됐다는 소식에 이들 전성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음악 팬들은 더욱 반가워했다. 다만 저녁 시간대가 아닌 오후 2시에 이들의 무대가 편성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낭만고양이' '오리 날다' '달빛소년'은 어두컴컴한 노래방에서 소년·소녀들의 해방구가 된 희망가들이었다. RM은 올해 초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체리필터의 '해피데이'를 듣고 있다는 걸 인증했었다. 이번 '인디고' 타이틀곡인 '들꽃놀이'는 특별함이 넘치는 트랙들 중 가장 방탄소년단의 스타일·정서에 맥락적으로 가장 접점을 이루는 곡이다. 여기에 "엄청나게 로킹하고 파워풀한 조유진의 보컬"이 더해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확장성이 확보됐다고 RM은 흡족스러워했다.
[서울=뉴시스] 체리필터 조유진. 2022.11.25. (사진= 뉴시스 DB)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체리필터 조유진. 2022.11.25. (사진= 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박지윤('넘버 투(No.2)')

사실 이번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 중 가장 의외는 박지윤이었다. RM과 접점이 가장 없다는 기존 편견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RM과 박지윤의 합은 근사했다. 곡은 그리스 신화의 음유시인으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명을 어겨 아내를 영원히 잃고 마는 '오르페우스' 때부터 파생된 '돌아보지 말자'는 이야기. RM은 이것을 우리가 무엇을 겪었든 간에 최선이었고, 그것이 당신의 모든 지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돌아보지 말자'로 재해석해냈다. 박지윤의 담담한 목소리는 RM의 말마따나 곡의 메시지에 설득력을 부여했고 '인디고'의 굉장히 훌륭한 마침표가 됐다. 과거에 상업적인 화려한 아이돌의 아이콘이었다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는 싱어송라이터로 확실히 변신한 박지윤은 어쩌면 RM의 미래다. 박지윤이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2017년 3월 홍대 앞 벨로주에서 연 콘서트는 그녀가 펼친 콘서트 중 최고였다. 포크, 블루스, 슈게이징 등의 장르를 자기 식으로 해석한 주체적인 아티스트의 표본이었다. RM은 지난 5일 벨로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롤링홀에서 200석 규모의 소극장 공연을 열었다. "이젠 니가 널 지켜줄 거야"
[서울=뉴시스] 박지윤. 2022.12.09. (사진 = 박지윤 크리에이티브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지윤. 2022.12.09. (사진 = 박지윤 크리에이티브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리고 윤형근 내레이션('윤')

"그러려면 욕심을 다 버리고, 모든 욕심을 다 버려야 해. 천진무구한 세계로 들어가야지.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은 해야지. 그게 인간의 목적이거든." 예술가의 천진무구한 성품에서 '영원불변한 예술'이 만들어진다. '윤'에 삽입된 '한국 단색화의 거목(巨木)' 윤형근 화백의 육성(肉聲) 내용이 추구하는 가치다. '인디고'는 윤 화백에 대한 헌사이자 그가 가고자 했던 길을 따라가려는 RM의 다짐이다. 그가 "그(윤형근)는 말했지 늘, 먼저 사람이 돼라 / 예술 할 생각 말고 놀아 느껴 희로애락 / (…) / 아이 워너 비 어 휴먼(I wanna be a human·나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노래하는 이유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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