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결사 '신문잡지종람소'
광주 3·1만세운동 주도했다

광주지역 3·1만세운동은 비밀독서회 모임인 '신문잡지종람소(新聞雜誌縱覽所)'의 주도로 조직적으로 이뤄진 사실이 3·1혁명 주역 103명에 대한 재판기록 분석 결과 드러났다. 또 광주시사(市史)에 기록된 광주지역 첫 시위장소와 행로 등도 오류 투성이여서 재정리가 시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국제고 노성태 역사담당 수석교사는 19일 '광주 3·1혁명 100주년 학술 세미나'에서 '광주 3·1운동의 재구성-판결문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1919년 광주지역 3·1 만세시위는 광주 양림동 기독교인들과 함께 2년 전 조직된 비밀결사 '신문잡지종람소' 청년학생들의 조직적 가담으로 치밀하게 준비돼 일어났으며, 같은 해 4월8일까지 광주 인근지역 횃불시위로 지속됐다"고 밝혔다. 광주 출신으로 동경 메이지대학에 유학중이던 정광호가 일본에서 가지고 온 2·8 독립선언서와 김복현이 서울에서 가지고 내려온 3·1 독립선언서 등을 비밀리에 인쇄·배포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 3·1혁명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103명의 연령과 직업, 거주지 등을 분석한 결과, 10∼20대가 89명, 학생이 53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거주지는 양림교회와 숭일학교, 수피아학교, 기독교병원이 소재한 광주 남구 양림동이 62명으로 나타났다. 결국 광주3·1혁명은 기독교인과 학생들이 주도하고 농민과 상인, 이발사 등 다양한 계층이 폭넓게 참여한 것으로 사료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 특히, 광주제중원 직원 황상호 등이 항일투쟁 의식을 고취하고,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광주지역 첫 신문 '조선독립광주신문'(4호까지 발행)을 제작, 시위현장에 집중 배포하면서 시위 확산에 크게 기여한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노성태 교사는 "판결문 기록으로 볼 때 광주지역 만세시위 사전 준비모임 참가자 숫자와 광주지역 첫 시위장소, 시위 행로, 재판 형량 등에서 기존의 광주시사에 오류가 수두룩하게 발견돼 광주시사 중 3·1운동사에 대한 재정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남지역의 3·1 만세시위 규모가 다른 지역보다 크지 않았던 이유는 항일의병 전쟁의 중심지였던 전남에 대한 일제의 감시 체제가 삼엄해 사전발각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남대 5·18연구소 임선화 연구위원은 '전남지역 3·1운동 재조명'이란 발제논문을 통해 "전남 동부권은 천도교, 목포 등 서부지역은 기독교가 중심이 돼 만세시위가 벌어졌으나, 사전에 발각돼 무산된 사례가 많았다"며 "의병전쟁 결과, 항일조직이 와해돼 만세시위 규모가 작았다는 기존의 학설은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려인 인문사회연구소 김병학 연구위원은 '3·1 운동과 연해주 고려인 항일운동'에 대한 논문을 통해 "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은 한반도의 3·1혁명에 고무돼 3월17일 최초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격인 '대한국민의회'를 출범하고 만세시위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4개 언어로 번역해 세계 만방에 알리면서 본격적으로 항일무장 독립투쟁에 나섰다"며 "이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광주와 연해주는 3·1혁명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고, 그런 점에서 광주고려인마을은 민족사를 연해주까지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고려인 박물관'을 세워 역사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goodch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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