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200여년된 추석 민속놀이 '의성 가마싸움' 소멸 위기

200여 년 전부터 추석 무렵이면 경북 의성지역 남촌과 북촌의 각 서당 학동들이 편을 갈라 힘과 용기를 겨루던 '가마싸움놀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까지 수상했던 무형문화재급 민속놀이가 소멸 위기에 놓인 것은 이 놀이를 시연할 핵심 주체인 학동들이 없기 때문이다. 의성군은 한때 학생들 대신 중·장년층이 참여하는 시연 등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아 20여 년 가까이 시연되지 못하고 있다. ◇가마싸움놀이, 조선 영조 때부터 전래된 것으로 추정 23일 의성군에 따르면 '가메쌈', '자매(姉妹)쌈', '가마(가메)놀이'라고도 불리는 '가마싸움놀이'는 의성지방에서만 전래돼 오는 독특한 전통 민속놀이다. 의성은 안동과 더불어 영남 북부의 학향(學鄕)이라고 일컫을 만큼 많은 명인과 열사, 충산, 효자, 효녀, 열녀가 배출된 곳이다. 가마싸움놀이가 언제부터 전승된 놀이인지 명확한 근거는 확인할 수 없지만 대략 영조 때 시작된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1906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것을 1974년 복원했다. 이 민속놀이는 해마다 음력 8월 15일 추석 명절에 서당이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이웃 마을 또는 이웃 서당의 학동들끼리 힘과 지혜를 겨루는 경기에서 비롯됐다. 추석이 임박하면 학동들은 서서히 가마싸움놀이에 대한 설화가 오가고, 훈장이 감지하지 못한 사이 제법 계획한 것들이 진행돼 간다. 추석 전 마지막 장날인 12일에 장이 서면 각 서당의 훈장들은 그동안 모아 뒀던 곡식과 돈, 제수 등을 정리해 고향에 다니러 가느라 서당을 비운다. 그러면 학동들은 접장을 수령으로 해 가마싸움놀이에 필요한 준비를 진행하게 된다. 평소에 모았던 용돈을 갹출하기도 하고 재료를 수집하기도 해 일체의 도구를 장만한다. 가마싸움이 있는 날(추석)이면 각 서당의 학동들은 준비한 가마와 기(영기, 청도기, 청용기, 백호기, 주작기, 현무기 등)를 들고 풍악을 울리며 골목을 누빈다. 기세를 올리며 다른 학동들이 가마싸움에 합세할 것을 유도하는 것이다. 각 진영은 학동 60~70명으로 구성됐다. 학동들의 나이는 7세부터 20세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주축은 대략 13세였다. 일정한 수의 학동들이 가세하면 의성 읍내를 남북으로 가르는 아사천으로 이동해 유다리를 사이에 놓고 본격적인 가마싸움을 시작한다. 먼저, 천변 주위에 있던 돌을 집어 던져 상대편의 기세를 꺾는다. 이어 각 서당의 학동들은 최고 수장 역할을 맡은 접장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유다리를 건너 앞으로 나가거나 뒤로 물러선다. 왼쪽 또는 오른쪽 방향으로 돌면서 상대 진영의 허점을 노려 돌격한다. 가마끼리 심하게 부딪치거나 발로 가마를 차고 부수며 상대편의 기를 많이 빼앗으려고 전력을 다한다. 장사진(長蛇陣), 개문진(開門陳), 통짜기진, 멍석말이 등 각종 진법을 동원해 상대편을 공격한다. ◇상대편 가마를 부수거나 기 많이 뺏으면 승리 마을 사람들은 힘찬 박수와 함성으로 같은 마을의 학동들을 격려하며 승리를 기원한다. 상대편의 가마를 먼저 부수거나 기(旗)를 많이 빼앗는 편이 승리한다. 가마싸움에서 이긴 서당에서는 그 해 과거시험에 급제하는 학동이 많이 나온다는 속설이 있어 학동들은 경기에 최선을 다했다. 싸움은 30분~1시간 정도면 승부가 갈렸다. 싸움에서 이긴 편은 빼앗은 기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기세등등하게 마을을 누비고 다녔다. 이처럼 가마싸움은 청소년들이 벌이는 단순한 민속놀이가 아니었다. 과거시험 합격에 대한 주술적 기원과 신체단련의 가치가 담긴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민속놀이다. 이 놀이는 1970년 성병희 안동교육대학 교수가 발굴·복원했다. 2년 뒤인 1972년 10월 대전에서 열린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의성공업고등학교 학생 160여 명이 경북대표로 출전해 시연했다. 1975년 5월에는 의성군 새마을잔치 때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학생들이 가마싸움놀이를 재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헌상에 나타난 서당 학동들의 나이가 13세 전후임을 고려해 시연에 참여할 학생들을 당초 고등학생에서 연령대가 비슷한 중학생들로 한정했다. 1983년 10월 안동에서 열린 '제2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는 의성중학교 학생 250여 명으로 구성된 의성가마싸움놀이가 경북대표로 출전해 최우수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대구에서 열린 축구경기 개막전 축하시연 및 문화행사에 참여해 가마싸움놀이의 진수를 전세계에 알렸다. 의성문화제 때도 매년 시연행사를 열어 그 맥을 이었다. 제1회(1983년)부터 제19회(2001년)까지 연령대가 비슷한 의성중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됐다. 시연단은 구자균·강상문·이근토 의성공업고등학교 교사, 공진호·김영구 의성중학교 교사가 바톤을 이어 받아 지도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각종 행사에 학생 동원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2001년 제19회 의성문화제 때 선보였던 시연이 마지막이 됐다. ◇지역주민들 "안타깝다. 맥 이어졌으면…" 한목소리 이후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흐르도록 아직껏 시연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의성가마싸움놀이 시연을 지도했던 김영구 전 의성중학교 교장(당시 의성중학교 체육교사)은 "시연할 학생들을 동원할 수 없어 각 읍·면 의용소방대 동원까지 생각했지만 비용 등 여러 문제로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13세도 필요 없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인력동원만 되면 그 맥을 이을 수 있다"며 "제가 죽기 전에 꼭 가마싸움놀이의 기술을 전수하고 싶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신시호 의성문화원장은 "연습은 일주일에 두 번씩 한 달간 하면 된다"며 "과거에는 중학교 교과 과정에 있는 특별활동(특활) 시간을 이용해 가마싸움놀이를 전수하면 됐다. 하지만 이것도 없어진 데다 학부모들이 공부에 지장된다면서 극구 반대해 학생 동원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또 "가마싸움놀이는 의성지방에만 전래돼 온 독특한 놀이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며 "그런데도 시연할 인력이 없다면 결국 그 맥이 끊길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해 의성문화원 주도로 의성가마싸움놀이를 무형문화재로 등록시키기 위한 용역을 발주했다. 그러나 무형문화재 등록을 위해서는 먼저, 전승할 완벽한 조직체계가 갖춰져야 하고, 이 조직에 의해 몇차례 시연돼야 하지만 이 같은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아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특히, 놀이 자체가 나이 어린 학동들이 중심인데 성인들이 이를 재현하는 게 과연 가치가 있겠느냐, 설사 성인들로 조직된 놀이팀이 이를 전승할 경우 무형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등록 추진이 제자리에 멈춰섰다. 배기석 의성군 문화관광과 학예사는 "아직 전승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며 "의성문화원이 신축·이전 문제 때문에 올해는 잠시 쉬어가고 있다. 아마도 내년부터는 공론화 작업 등을 통해 본격적인 전승 방법 등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jh9326@newsis.com

많이 본 뉴스

지역 주요 뉴스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