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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유린 부산 형제복지원
30여년 한 풀수 있을까

30여년 전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불법 감금 등 인권유린으로 고통받고 있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한이 풀릴 수 있을까.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의 과거 무죄 판결과 관련, 지난 13일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비상상고 신청을 권고하면서 ‘형제복지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상상고는 형사사건의 판결이 확정된 후 법령 위반 등을 발견한 때에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신청하는 비상구제절차를 말한다. 법조계는 검찰이 법리 검토 등을 거쳐 비상상고 신청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로써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된 불법 감금과 강제노역, 구타·성폭행 등 인권침해 사건은 군사정권의 비호아래 불법 감금과 폭행·살인 혐의 등에 대해 ‘무죄’ 판결로 면죄부가 주어졌지만, 이번 비상상고 권고를 계기로 재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부산시, 31년만의 사과 검찰개혁위원회의 비상상고 권고에 이어 부산시는 공권력의 비호와 방임 속에 자행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사건이 드러난 지 31년 만이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지난 16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시가 복지시설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함으로써 무고한 시민들을 불법 감금하고 폭행·강제노역 등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참혹한 인권유린 이었다”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아울러 “국회 계류중인 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촉구하는 한편 법률이 제정될 때까지 행정·재정적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정한 해결은 국회에서 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국회에서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부산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해 해당 상임위 위원들과 공동 발의한 의원들에게 적극 협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해당 법률이 제정되도록 행정·재정적 지원에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아울러 형제복지원 피해자 현황 조사와 실태 파악에 나서는 한편 피해자들의 상설 상담 창구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 형제복지원 사건 원인 규명과 과제는.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실종자 및 유가족) 모임은 먼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 모임을 이끄는 한 대표 등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외로운 투쟁을 벌여 왔다. 작년 9월에는 형제복지원 옛 터인 부산 주례동에서 서울 청와대 앞 까지 22일 동안 매일 50리길을 걸어서 총 486.44㎞ ‘국토종단 대장정’을 완주하고 국회앞 1인 시위와 국가인권위원회 및 전국 사회복지관련 단체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 등을 계속해 왔다. 이번엔 검찰개혁위가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권고함으로써 국회의 특별법 제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대표는 “이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아직 비상상고 결정과 함께 국회 특별법 제정 및 진상 규명 등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한 대표는 “무엇보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당시 억울하게 수용된 원생들과 폭행·사망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치유대책 마련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다시는 이같은 인권 유린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될 때 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인근(1986년 6월 사망) 원장의 가족과 친인척들이 형제복지원 부지 불하와 원생들의 강제노역 등으로 축재한 재산으로 호의호식하고 있다”며 “원생들의 피땀으로 불린 형제복지원의 재산을 환수하는 방안도 마련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은. 형제복지원 사건은 정부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노숙인과 거리에 부랑아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워 1975년부터 1987년까지 거리를 배회하던 시민을 복지시설에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학대·성폭행을 일삼은 인권유린 사건이다. 이 사건은 부산지검 울산지청에 근무하던 김용원 검사가 당시 형제복지원 소유의 울산 반정목장에서 벌어진 강제노역 인권침해 사건을 수사하면서 몸통인 형제복지원의 비리가 드러났다. 당시 이 사건을 첫 보도했던 기자가 1987년 1월 반정목장 현장을 취재할때도 형제복지원에서 동원된 10여명의 청·장년 원생들이 야산에서 개간작업을 하고 있었다. 또 작업장 옆에 나무와 블록으로 지은 움막에는 또다른 원생 3명이 발목에 사슬에 묶인채 누어있는 광경을 확인했다. 형제복지원은 1987년 6월말 폐쇄될 때까지 확인된 수용자만 최소 3164명이다. 특히 군대식 조직으로 운영하면서 강제 노역과 구타와 학대 등이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소년·소녀들은 강제노역 뿐 아니라 자체 소대장이나 상급자들의 성적 노리개로 성폭력에 시달렸고 그 충격으로 정신병동에 갇히거나 폭행 후유증으로 죽어 나갔다. 복지원 자체 기록으로만 각종 폭력이나 학대로 513명이 사망했고 주검 일부는 의대에 팔려나가 시신조차 찾지 못해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고 있다. 반면 수사는 외압과 조직적인 은폐·축소로 형제복지원에 면죄부가 주어졌다. 김 검사는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으나 외압과 조직적인 축소·은폐로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1986년 12월 형제복지원 박 원장을 체포해 초지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속시키자, 당시 부산시장으로부터 "원장을 구속하면 안된다"며 "바로 석방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고 했다. 이 뿐아니라 그 시장은 박 원장이 구속돼 재판을 받을 때도 전국의 복지원 관계자들과 공무원들을 동원해 “선처해 달라”며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벌이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김 검사는 또 “가혹행위 조사와 10억원 이상 횡령한 사실을 확인하고 공소장을 변경할때도 검찰 내부에서 ‘제동’을 거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회고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상고심을 거쳐 원심 파기까지 7차례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대법원이 1989년 7월 횡령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형(2년6월)을 선고했다. 특수감금 혐의는 당시 내무부훈령 제410호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라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돼 면죄부를 주었다는 지적이다. 이후 전두환 정권의 폭압과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열기 속에 형제복지원 사건이 여론의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2012년 복지원 피해자인 한종선씨가 국회 앞 1인 시위에 나서고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담은 책과 보고서가 출간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herai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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