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디 레드메인이 호킹 역을 소화하기 위해 체중을 10kg 감량하고 루게릭병 환자를 연구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의미있는 정보가 아니다. 이런 정도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중요한 것은 레드메인이 숨을 곳이 없는 스크린에서 얼마나 실제 호킹처럼 보이느냐일 테고, 이 점에서 레드메인은 완벽하게 승리한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흡사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우리가 호킹의 사진을 통해 보아온 근육이 퇴화해 휠체어 위에 구겨진 몸, 머리의 무게조차 지탱 못해 구부러진 목 등을 레드메인은 마치 포토샵으로 복사라도 해놓은 것처럼 똑같이 구현한다.(레드메인의 연기를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의 그것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배우에게 중요한 건 감정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퇴화해(퇴화하고 있는) 일그러진 몸은 스티븐 호킹의 상징이다. 우리는 호킹을 그의 몸으로 이해한다. 이런 몸을 제대로 구현하지 않고 호킹을 연기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배우의 몸이 호킹의 몸이 되지 않으면 호킹의 감정도 표현할 수 없다. 그런 배우를 보는 관객 또한 호킹을 이해하기 힘들다. 연출진이 안무가 알렉스 레이놀즈까지 동원해 호킹의 모습을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려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 |
스티븐 호킹의 서사는 흥미롭다. 먼저 장애를 가진 인간과 그런 상대를 사랑하는 인간의 관계가 상호 결핍과 충족의 관점에서 그려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이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감독 이누도 잇신)과 '러스트 앤 본'(감독 자크 오디아르)에서 신체적 결함이 어떻게 서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으로 기능하는지 봤다. 이 서사를 흐르는 시간과 신체퇴화, 우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얽히고설키는 4차원적인 이야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인간승리 드라마로 단순화시킬 수도 있다. 이 서사가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어떤 면으로 봐도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널려 있다는 점이다.
![]() |
호킹과 제인 그리고 조너선(찰리 콕스) 세 사람의 이야기는 결핍과 보완, 충족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보편성에 대한 함의다. 정방향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시간과 거꾸로 퇴화하는 신체, 커지는 연구 업적과 변해가는 감정 등 모든 게 각자의 방향으로 무심히 흘러간다. 호킹이 장애를 딛고 물리학자로 성공하는 영화 전체의 큰 맥락은 휠체어의 한계를 넘어 우주로 뻗어나가는 자기극복의 드라마다. 하지만 제임스 마쉬 감독은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 |
영화는 호킹이 '시간'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을 독립변수로, 호킹의 신체와 제인과의 사랑을 종속변수로 놓고 사랑에 대해 어떤 통찰을 보여주려는 듯한 제스처다. 하지만 호킹의 말처럼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변한다는 자명한 진리 외에는 두드러진 통찰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어떤 것도 담겨있지 않다.
호킹은 제인에게 넌지시 이별을 선언한다. 그러자 제인은 "난 최선을 다했어"라며 울먹인다. 제임스 마쉬 감독도 호킹을 영화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지 모른다. 제인이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된 것이 아니듯이 마쉬 감독의 노력도 영화를 어떤 성취의 단계까지 이끌지는 못했다.
jb@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