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규제 아닌 선언" 도민 숙의로 만든 제주평화인권헌장
분 야 지방 게시일자 2025/12/22 17:08:11

도민참여 전제 2년 논의, 쟁점 문안 조정 후 선포
헌법·국제인권규범 보편 기준 반영…"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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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뉴시스] 김수환 기자 = 제주도가 지난 10일 '제주평화인권헌장'을 공식 선포했다. 헌장은 법적 강제력이나 처벌 규정을 두지 않은 정책 선언문으로, 도는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에 담긴 보편적 가치를 제주지역 현실에 맞게 정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장 수립 과정은 도민참여를 전제로 진행됐으며 수차례 도민의견 수렴과 인권 보장 및 증진위원회 검토를 거쳐 일부 쟁점 표현을 조정한 뒤 최종 선포됐다.

특히 도는 이번 헌장 선포를 완결점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보고, 도민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해 나갈 방침이다.

◆헌장 수립 과정 전반 도민참여 전제

제주평화인권헌장은 제주4·3의 역사와 그 과정에 형성된 민주주의, 평화, 인권 등 가치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4·3 이후 평화와 인권이 제주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이어지고 있는 차별과 혐오, 인권 등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됐다.

헌장 제정 논의는 2023년 3월부터 기본방향 설정과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친 기본계획 수립으로 시작됐다. 같은해 8월에는 각계각층 도민 33명으로 구성된 '제주평화인권헌장제정위원회'가 출범했고, 도민참여를 원칙으로 둔 제정 절차가 본격화했다.

지난해에는 공개모집을 통해 도민참여단 100명이 선발됐다. 도민참여단은 헌장 제정 취지와 인권 규범에 대한 교육을 받은 뒤 4차례의 숙의 토론을 거쳐 자체 초안을 마련했고, 제정위원회는 이 초안을 바탕으로 실무위원회 논의와 전체회의를 통해 수정·보완했다.

도는 헌장 수립 과정에서 행정이 초안을 주도하기보다 도민 논의를 중심에 두는 방식으로 접근했지만, 의견 수렴 과정에서 일부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제주시에서 열린 첫 도민공청회는 헌장 제정을 반대하는 단체의 단상 점거와 고성 등으로 파행을 겪었다. 반대 단체는 헌장안에 포함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중 '성적 지향'에 대한 표현을 문제 삼으며 헌장 제정 자체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로도 도는 서귀포시에서도 공청회를 열고 헌장 제정과 관련한 의견을 접수해나갔다. 사전의견 접수와 공청회를 통해 접수된 의견은 916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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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반대단체 의견 수렴…갈등해소 노력

제주도는 기독교계와 보수단체 등 우려가 지속되자 별도 면담과 간담회를 열어 반대 의견을 청취하고 방송 찬반 토론회를 병행했다.

논쟁의 중심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의 문구였다. 도민참여단과 제정위원회가 검토한 원안에는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이 포함됐다.

다만 해당 문구는 올해 9월 제주도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수정됐다. 최종 헌장에는 '성적 지향'은 유지하되 '성별정체성' 표현이 제외되고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가 포함되는 등 일부 항목이 정리·수정됐다.

헌장 제정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합의와 갈등 완화를 고려한 결정이다.

인권 보장 및 증진위원회는 헌장안 의결 당시 부대의견을 통해 행정 검토 의견을 반영할 것과 도민들에게 제정안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과정을 거쳐 선포할 것을 요구했고, 도는 부대의견을 수용해 최종 문안을 확정했다.

다만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성별정체성'이 제외된 점을 두고 유감을 표했다. 헌장이 사회적 소수자를 인권의 주체로 명시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성별정체성' 표현의 삭제는 트랜스젠더와 젠더 비순응자에 대한 배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다.

반면 일부 단체는 헌장이 여전히 동성애를 조장하거나 특정 가치관을 확산시킨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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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국제인권규범 보편 기준…마침표 아닌 시작

제주도는 헌장이 법령이나 조례가 아닌 선언문으로, 법적 구속력이나 처벌조항이 없으며 특정 사상이나 행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헌장에 특정 성적 지향을 장려하거나 확산시키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으며 '차별하지 말자'는 원칙 역시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에 이미 담긴 보편적 기준이라는 입장이다.

헌장이 개인의 신념이나 종교적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이 같은 논쟁과 조정 과정을 거친 헌장안은 문안을 다듬은 이후 지난 10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기념식과 함께 공식 선포됐다.

선포식에서는 오영훈 제주지사와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교육감,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및 유족회 관계자, 청년·여성·이주민·시민사회 대표 등 각계각층 도민이 참여해 헌장을 공동으로 낭독하면서 헌장 제정 의미를 더했다.

선포식 당일에도 행사장 안팎에서 일부 반대 측의 고성과 피켓 시위가 이어졌지만 우려됐던 물리적 충돌이나 집단 마찰은 없었다.

도는 헌장 선포를 제도의 완결이 아닌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다만 헌장을 행정 집행의 기준으로 즉각 적용하기보다는 교육과 홍보를 통해 도민 이해를 높이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평화인권헌장은 무엇을 강제하는 규범이 아니라 제주 사회가 지향하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확인하는 선언"이라며 "선포 이후에도 도민과의 열린 소통을 이어가면서 헌장 제정의 의미를 살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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