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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박현주 아트클럽]RM도 1타강사도 "내돈내산"...MZ세대 '아트 플렉스'

#지난 10월 서울옥션 경매장. 객장은 치열한 경합이 이어지고 있었다. 16억부터 출발한 작품 가격이 36억까지 치솟았다. 긴장감 속 숨죽이던 경매장, 젊은 남자가 패들(Paddle·경매 번호판)을 들었다. 36억5000만원. "낙찰됐습니다." 망치가 탕 내려쳤고, 박수가 터졌다. 그 순간 그 남자가 팔을 스윽 들고 일어났다. 키가 무척 큰 남자는 '승리자' 같았다. '저 그림 낙찰자가 바로 나입니다' 라고 알리는 몸짓처럼 보였다. 그렇게 유유히 객장을 빠져나간 그는 '최고의 자랑'을 세상에 알렸다. 자신의 SNS에 낙찰받은 작품을 사진과 함께 게시했다. 수학 1타강사로 유명한 현우진(34)씨였다. 36억 5000만 원에 사들인 건 일본 거장 쿠사마 야오이 2015년작 '골드 스카이네트(Gold-Sky-Nets)'였다. 알고 보니 그는 '쿠사마 마니아'였다. 현 씨는 올해 쿠사마의 비싼 작품을 모조리 사들였다. 3월, 23억에 낙찰받은 ‘인피니트 네트’를 시작으로, 6월 ‘실버네트’(29억원), 7월 ‘인피니트 네트’(31억원)까지 총액으로만 119억 5000만원어치에 달한다. 현씨는 자신의 SNS 프로필에 '슈퍼 컬렉터'라고 써놨다. ◆현 씨가 산 쿠사마 작품 판매한 사람은?...MZ세대 소장자 현씨가 '아트 플렉스(flex)'한 36억5000만원짜리 작품은 MZ세대 소장품이었다. 미술컬렉터들에 따르면 소장자는 40대 초반 남성 컬렉터다. 그는 2016년 이 작품을 9억 원 정도에 샀다. 5년을 소장하다 판매를 위해 존재감을 알렸다. 올 4월 부산서 열린 한 아트페어에 12억 원에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다. 한 고객이 비싸다며 머뭇머뭇거리다 포기했다. 소장자는 7개월 후인 지난 10월 서울옥션에 위탁했고, 결국 36억5000만 원에 팔렸다. 쿠사마가 2015년에 그린 이 그림은 6년만에 30억 넘게 오른셈이다. 쿠사마 작품을 판 이 소장자는 이후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등 국내 블루칩을 비롯해 데이비드 호크니, 우고 론디노네 등 해외 유명작가 작품을 수집하며 '넘사벽 아트 플렉스' 행보를 진행중이다. ◆"이 작품 내가 샀어요" 아트플렉스...이전 컬렉터들과 다른 모습 "이 그림 내가 샀어요"라고 알리는 건 미술시장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컬렉터들은 드러내지 않는게 미덕이었다. '검은 돈?' 이라는 비난의 두려움이 있었다. 경매사는 함구했고 이는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세상이 달라졌다. MZ세대들의 '아트 플렉스'는 당당해졌다. 방탄소년단 RM으로 시작됐다. RM은 미술관 화랑 나들이를 숨기지 않았다. SNS에 그림 앞 사진을 올렸고, 도자기를 끌어안고 므흣한 모습을 자랑했다. RM이 가는 전시마다 줄 서는 풍경이 연출됐고, RM이 픽한 그림은 완판됐다. 'RM이 반한 달항아리’, 'RM이 좋아하는 윤형근, 이우환' 등 'RM 효과'에 매체도 그의 행적을 쫒아 쓰며 아트 행보에 불을 지폈다. '미술시장이 RM에 기댄다'는 말이 나올 정도지만, 20~30대까지 미술판을 확장시켰다는 긍정적 평가다. 미술판을 들어온 MZ세대들은 적극적인 구매력도 보였다. '샤넬백 대신 그림 산다'가 아니라 '샤넬백도 샀고 그림도 산다'라는 분위기다. '3040 싹쓸이'에 미술시장은 대박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역대급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올해 경매사와 아트페어는 사상 유례 없는 흥행 열풍으로 과열을 우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올 정도다. ◆MZ세대 몰려온 키아프 역대 최대 매출 650억 역대급 매출 MZ세대들은 미술시장 역대급 호황을 이끌었다. 지난 10월13~17일 열린 키아프서울(KIAF SEOUL·이하 키아프)’가 증명했다. 첫날 VVIP 오픈에서만 약 350억원치가 거래됐다. 벽에 걸리기도 전에 팔려나간 그림들 때문에 우는 사람까지 생겼다. 단 5일간 열린 행사에서 팔린 금액은 650억치.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키아프 창립 이래 최고 기록이다. 행사를 주최한 키아프에 따르면 올해 처음 방문한 고객은 MZ세대라 불리는 20~40대가 가장 많았다. 새로운 미술 애호가가 늘어났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화랑협회 김동현 팀장은 "올해 키아프에 첫 방문한 사람들의 반 이상이 21세~40세 사람들이었고, 이들 중 약 20% 정도가 적극적으로 작품을 구입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1000만원 대 작품은 쇼핑하듯 구매했다는 것. MZ세대 고객들은 거침없다. 망설이고 몇번을 보러 오던 이전 세대와는 다른 모습이다. 전시 부스에 들어와 "이 작품들 다 얼마에요?" 라며 묻기도 해 화랑주가 더 당황했다는 일도 있다. 오히려 "그림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고 말렸다는 한 화랑주는 "옛날과 정말 달라졌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그림이 좋아서라기보다, 아트테크로만 보는 것 같다"며 안타까운 마음도 드러냈다. ◆"나 만 없어"...김환기 이우환 윤형근 우국원 작품 없어요? 반면 MZ세대들의 컬렉팅은 변화무쌍하다. 주식 부동산에 이어 미술품으로 투자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1타강사 현씨처럼 '아트 플렉스'가 SNS에 이어지면서 자극이 되고 있다. 한 미술품딜러는 "최근 그림을 찾는 MZ세대 컬렉터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이들은 '나 만 없어'라며 김환기 이우환 윤형근 작품을 구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연예인 픽' 그림은 대박이 터지고 있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TV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의 집에 걸린 그림은 없어서 못파는 그림이 됐다. 배우 손예진·조윤희 거실에 걸린 그림 작가인 우국원의 작품값은 폭등했다. 서울옥션 케이옥션 양대경매사에 출품한 그림은한달새 2배 올라 2억을 넘기며 작가 최고가 경신했다. 케이옥션 8월 경매에서 우국원이 미운 오리를 그린 'Ugly Duckling'은 시작가 1500만원에 나와 치열한 경합 끝에 15배 폭등한 2억3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러한 그림 구매력은 '조각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30~40대 직장인들은 공동으로 사는 '그림 투자'에 나서고 있다. 2018년 공동 구매 미술품을 시작한 ‘아트앤가이드’는 공동 구매때마다 5분~10분만에 마감되며 활기다. 지난 7월 28일 공동구매를 시작한 ‘문형태’ 작가의 ‘Diamond(2017)’는 2100만 원에 매각돼 600%의 수익률을 거두기도 했다. 2020년 4월부터 앱 기반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테사도 매각한 작품 모두 10%~30%대 수익률을 달성했다. 지난 3월 조각투자 진행 당시 10분 만에 분할 소유권이 완판되며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아트테크 투자자 몰리면서 미술품 거래 플랫폼들은 작품 확보가 치열하다. 전문 아트 리서치 팀이 작품 상태, 경매 기록, 유찰률 등 글로벌 미술품 시장의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한다. 풍요로움속에 자라 유학파가 많은 MZ세대 컬렉터들의 앞선 정보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MZ세대 아트플렉스 패턴...'게임'처럼 소비 기성세대와는 완전 달라 '게임처럼 클릭하듯 사들인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NZ세대의 아트마켓 소비패턴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MZ세대 등 젊은층의 미술시장 참여와 거침없는 구매는 '감상을 넘어 투자 시대'로, "본격적인 미술품 투자의 시대가 왔다”는 진단이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방탄소년단(BTS) 등 유명 연예인·인플루언서들의 전시장 방문과 작품 구입, 코로나19로 답답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해방감을 느끼며 ‘아트 쇼핑’을 즐기는 측면도 일조했다"고 했다. '아트 쇼핑'은 과감하다. 기성세대가 장기간 면밀한 검토와 객관적인 분석을 토대로 신중하게 지출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면, MZ세대는 대중의 선호도보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개인의 기호를 우선한 구매 패턴을 보인다. 이러한 MZ세대의 '아트 쇼핑'에 대해 김윤섭 미술평론가(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은 이렇게 전했다. "MZ세대 두드러진 성향 중엔 바로 완전한 게임세대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일명 '클릭세대'라는 점이죠. 마치 미술품을 꼭 갖고 싶은 게임아이템을 소장하듯 수집하는 예가 많습니다. 특히 일반 통화(通貨)보다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에 더 익숙한 세대답게, '클릭' 몇 번으로 수억 원의 작품을 손쉽게 구매하기도 하는 것이죠." 실제로 코로나 시대 온라인 경매를 강화한 경매사들은 매월 80~90%의 낙찰률을 기록하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런 현상을 초기 주식세대들이 현실성과 이완된 무감각한 중독현상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살펴보면 확실히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MZ세대는 자신들이 익숙한 가상 디지털 매커니즘이 메타버스처럼 실생활 못지않은 '또 다른 일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MZ세대는 수집한 고가의 미술품을 플렉스한다. 개인의 수장고에 은밀하게 보관하는 게 아니라, 구입과 동시에 인스타나 페북처럼 가상사회관계망에 공개한다. 독점한 현물가치를 디지털 세계에서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가상가치를 추가로 창출하는 셈이다. 게임의 최강 아이템을 뽐내듯, 이런 현상이 MZ세대에겐 자연스럽고 '먹히는' 일상이 된다. 아트쇼핑, 아트테크에 나서 MZ세대 컬렉터들은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었고, 웹 개발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결국 MZ세대 중심의 새로워진 미술품 소비패턴 연구가 중요한 점은 급변하는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아트마켓의 새로운 확장성을 가늠하는 채널이 되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충동적이고 일시적은 중독 현상이라고 다소 자극적인 시선으로 폄훼하지 말아야할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3040 싹쓸이'에 미술시장 투자 과열 양상 우려도 있지만 MZ세대 컬렉터들은 NFT 미술품으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시선이다. "한국의 MZ세대는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리더세력이란 점에서도 한국 미술시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바라본다면 미술시장의 새로운 활력이자 음성적이던 미술판이 투명한 시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MZ세대의 급부상으로 미술시장이 역대급 호황을 맞고 있지만 현재 한국미술미장은 세계미술시장과 비교하면 미미하다. 프랑스의 미술시장 조사업체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20년 미술품 경매시장 점유율을 보면, 중국(39%)과 미국(27%)·영국·프랑스·독일이 전체의 89%를 차지한다. 아시아 시장은 중국이 67%, 홍콩 26%, 일본 2%, 한국이 1%다. 한국은 시장 규모가 5000억여원으로 작다. 지난 1일 열린 크리스티 홍콩 12월 경매는 단 2일간 낙찰총액 14억9500만2500 달러(한화 약 2259억 원)을 기록했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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