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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신의칙' 잣대 따라 희비 엇갈려 [통상임금 집중분석]

금호타이어의 통상임금 소송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대한 법원 판단이 승패를 갈랐다. 신의칙이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금호타이어 사측이 "예측하지 못한 추가 지급으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영 실적과 재무 상황을 고려할 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영계는 "지불 여력이 있다는 이유로 신의칙 적용 잣대를 달리하는 것은 일관성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유감을 표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소송은 금호타이어 전·현직 노동자 5명이 2013년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회사가 2개월마다 지급해온 정기상여금 중 일부가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며 "이를 반영해 3800여 만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사측에 요구했다. 2016년 1월 열린 1심에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2017년 8월 열린 2심부터 '신의칙'이 쟁점으로 등장했다. 당시 재판부는 "근로자의 통상임금 확대 청구가 노사 간 합의에 의한 신의성실 원칙에 위반된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통상임금은 초과근로수당과 퇴직금의 기준이 된다. 사측은 2010년과 2012년 단체협약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기로 합의했는데, 이를 무효로 한다면 회사 자금 사정이 악화돼 신의칙에 반한다며 지급을 거부해왔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노사가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재정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판시하며 사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또 뒤집혔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고들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어 지난 16일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금호타이어 연간 매출이 2조원을 넘고 당기순이익과 부채 등을 종합할 때 추가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신의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경영계는 지불 여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의칙 적용 잣대를 매번 달리하는 법원 판결이 유감스럽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실제 2020년 7월 한국GM·쌍용자동차가 근로자들과 벌인 소송에서는 신의칙을 인정해 사측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그해 8월 기아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았고,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혀 고법으로 사건이 돌아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법원은 근로자 측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 간 합의를 위반하고 추가 비용을 청구했는데도, 근로자 측이 신의칙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며 "신의칙 불인정 근거로 경영지표나 경영상황 등 사후적이며 외부 변수에 따라 달라지는 경영 요소에 중점을 둘 경우, 법원 시각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어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한편 법원은 직원들이 청구한 2012년 1월~2014년 5월의 법정수당 3859만원 중 2712만원(70%)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금호타이어에 주문했다. 이 판결이 최종 확정돼 노동자 3500명의 추가 소송이 진행되면 금호타이어는 1569억원의 법정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경총은 "이번 판결로 이미 노사 합의를 이룬 기업들이 막대한 추가 비용 부담할 수 있게 된 것은 극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인준 기자 | 안경무 기자 | 정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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