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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노동운동 '새로고침'

"기존 노조와 같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노동조합 본질에 맞는 목소리를 내겠다" 지난달 21일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주축으로 한 신생 노동조합 협의체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새로고침)가 공식 출범을 선언하면서 내건 기치다. 통상 노조의 상징으로 불리는 '빨간 머리띠'와 '투쟁 조끼'는 이날 출범식에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후드티'와 '가디건' 차림의 구성원들 모습이 이들 노조가 기성 노조와 차별화를 추구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MZ 노조가 국내 노동운동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2030 중심의 사무직과 연구개발 직군으로 구성된 MZ 노조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기성 노조가 벌이는 '정치 투쟁'을 거부한다. 이들은 '공정'을 핵심 가치로 명확한 기준과 성과에 기반한 임금과 처우를 요구한다. 새로고침은 이러한 MZ 노조가 연대를 통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8개 노조를 시작으로 출범한 협의체다. LG전자 사람중심사무직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한국가스공사 더코가스노조,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노조, LS일렉트릭 사무직노조,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 부산관광공사 열린노조, 코레일네트웍스 일반직노조로 구성됐다. MZ 노조의 등장과 관련해 여러 분석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21년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성과급 논란'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에 이어 LG전자, 현대차까지 성과급 등 보상체계 산정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기존 생산직 중심의 노조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면서 사무직 노동자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그동안 사무직 노동자들은 '노조'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생산직 중심의 기존 제조업 노조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사무직들 역시 생산직과 업무가 다르다는 인식 탓에 노조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노사 협상에서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 주체는 주로 생산직 노조였고, 임금이나 성과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무직 노동자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서 그 기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새로고침 창립 멤버인 'LG전자 사람중심사무직노조'가 만들어진 것도 이즈음이다. 현재 새로고침 의장이자 당시 LG전자 4년차 연구원이었던 유준환(32)씨가 이를 주도하면서 사무직 노조 설립의 시작을 알렸다. LG전자에는 한국노총 산하의 생산직 노조와 민주노총 산하의 서비스 노조 등 2개 노조가 이미 있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산업 구조가 완전히 재편되면서 생산직 중심의 기성 노조는 사무직 등 젊은 세대의 니즈를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MZ 세대는 각자의 능력에 걸맞은 공정한 보상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실제로 이들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을 통해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공유했으며, 자신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독자적 조직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면서 MZ 노조 결성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각 사업장별 MZ 노조를 넘어 협의체까지 출범하면서 이들이 향후 노동운동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결합된 국내 노동운동은 양대노총을 중심으로 정치 투쟁의 지향점이 강했다. 물론 강력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 권리 보장 등 값진 승리를 쟁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와 관계없는 정치적 구호와 일부 불법·폭력적인 시위로 인해 기존 노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나빠졌으며, 이러한 투쟁 방식이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게 새로고침의 주장이다. 새로고침은 출범식에서 "시위의 본질은 단체 행동권을 이용해 대중에게 부당함을 알리는 것"이라며 "그런데 누구 석방 운동하고, 주한미군 철수(운동)하고 이런 부분은 그것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노동조합의 본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에 새로고침은 기존 노조와 달리 노조 본질에 맞는 목소리를 내고, 노동자 권익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측을 적대적 관계가 아닌 '상생'의 대상으로 보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을 바꿔나가겠다는 점도 이들이 기성 노조와 차별화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새로고침 출범에 노동개혁을 추진 중인 정부는 어느 때보다 주목하고 있다. 기성 노조와 이들의 활동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새로고침은 노동개혁의 강력한 우군이자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이들의 출범을 "환영한다"면서도 기성 노조의 투쟁 방식을 비판한 이들을 '경험 부족'으로 맞받았다. 양경수 위원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노총이 정치 파업이나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이제 막 노조를 시작하는 MZ세대 분들은 직접 경험해본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이러한 MZ 노조 출범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이들의 역할에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박지순 원장은 "분명 국내 노동운동에 있어 변곡점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이해관계에 보다 집중하는 젊은 세대 노조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의 '세대교체'라는 큰 흐름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앞으로 사무직들이 노조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과거보다 활발해질 것"이라며 "그간 양대노총을 통해 대변되지 않은 영역에 주목해 활동해 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강지은 기자 | 고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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