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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하 경쟁으로 이어질까[11조 대출전쟁①]

스마트폰에서 클릭 몇 번으로 더 싼 이자의 신용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인프라가 가동에 들어가면서 연간 11조원 규모의 대출 전쟁이 시작됐다. 고금리 시대에 한푼이라도 싼 이자를 찾는 소비자들이 몰리며 뜨거운 관심을 증명한 가운데 금융당국이 당초 목표한 금융사 간 금리 인하 경쟁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로 이름 붙여진 이 서비스는 은행, 저축은행, 카드, 캐피탈사 등에서 기존에 받은 신용대출 정보를 스마트폰 앱으로 쉽게 조회해 더 유리한 조건으로 한 번에 갈아탈 수 있게 해준다. 은행 19개, 저축은행 18개, 카드 7개, 캐피탈 9개 등 총 53개 금융사가 대환대출 인프라에 참여한 가운데 지난달 31일 운영을 시작했다. 해당 금융사에서 받은 10억원 이하의 무보증·무담보 신용대출이 갈아타기 대상이다. ◆사흘간 1500억 '머니무브'…10%p대 이자경감 사례도 초반 인기는 뜨겁다. 금융사 영업점 2곳을 방문해 최소 2영업일을 기다려야 했던 과거와 달리 대출비교 플랫폼 앱이나 금융회사 앱을 통해 간편하게 갈아타기가 가능해진 덕분이다. 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서비스 첫날 1819건의 대출이동을 통해 474억원의 '머니무브'가 일어난 데 이어 이틀째인 지난 1일에는 2068건, 581억원의 대출이동이 있었다. 사흘째인 지난 2일에는 1792건의 대출이동을 통해 486억원이 옮겨 갔다. 서비스 개시 3일 만에 1541억원의 대출 갈아타기가 이뤄진 것이다. 대환대출을 통한 머니무브 규모는 향후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6월부터 자체 앱을 통해 대환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사가 추가될 예정이고 대출비교 플랫폼에 입점하는 금융사들도 증가할 전망이다. 또 일부 카드사에서 받은 카드론(장기카드대출)은 현재 대출비교 플랫폼에서 기존 대출로 조회가 되지 않지만 오는 7월1일부터는 플랫폼에서도 모든 카드론을 조회해 다른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된다.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제공하는 비상금대출도 현재로서는 이용이 불가능하지만 향후 대환대출 대상에 포함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게다가 연말에는 가계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로까지 대환대출이 확대될 예정이어서 대출전쟁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금융권 신용대출은 신규 취급 기준으로 약 110조원 규모다. 업계에서는 대환대출 시장 규모가 연간 최대 11조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의 민생금융 안정화 대책 일환으로 추진된 대환대출의 정책적 목표는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금리 인하와 금융사 간 경쟁 촉진 효과다. 일단 서비스 개시 초반인 현재까지는 이같은 목표에 걸맞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가 분석한 주요 금리 인하 사례를 살펴보면 첫날인 지난달 31일 저축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이동한 일반 신용대출 8000만원 차주는 금리를 기존 15.2%에서 4.7%로 10.5%포인트 아꼈다. 마찬가지로 저축은행에서 은행으로 1500만원짜리 일반 신용대출을 옮긴 차주도 이자가 기존 19.9%에서 8.7%로 11.2%포인트나 줄었다. 서비스 이틀째인 지난 1일에도 카드사에서 은행으로 이동한 300만원 카드론 금리가 18.5%에서 8.72%로 줄어 9.78%포인트의 이자가 줄기도 했다. 대환대출 서비스를 계기로 금리 인하에 나선 금융사들도 있었다. 한 시중은행은 자사 앱을 통한 대환대출 신청시 0.3%포인트의 금리 우대를 제공했으며 다른 은행은 대출비교 플랫폼을 통한 대환대출 상품의 금리 범위를 0.5%포인트 내렸다. ◆플랫폼 수수료 부담 때문에 금리인하 효과 반감 우려도 금융당국은 고객을 '뺏고 뺏기는' 대환대출 서비스가 자리를 잡아가면 플랫폼에 입점하는 금융사와 대출상품이 더 많이 늘고 금리 인하 경쟁도 가열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환대출 서비스에 따른 수수료가 대출 금리에 전가될 경우 금리 인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출비교 플랫폼에 입점한 금융사는 대출이 성사되면 일정 비율을 수수료를 플랫폼에 내야 한다. 금융사 관계자는 "은행 등의 자체 앱보다는 여러 금융사와 대출상품을 한눈에 비교해 환승할 수 있는 대출비교 플랫폼으로 고객들이 결국 쏠리게 돼 있다"며 "지금은 시장선점 때문에 금융사들이 수수료보다는 고객 유치를 위한 금리 인하에 몰두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은행 등이 수수료 부담을 대출금리에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서비스 초기인 만큼 핀테크들이 수수료를 깎아주며 입점 업체 확장에 나섰지만 향후 대출비교 플랫폼의 힘이 커질 경우 수수료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금융사별 대환대출 한도가 정해져 있어 금리 인하 경쟁을 제한한다는 분석도 있다. 각 금융사가 정해진 한도에 가까워질수록 적극적으로 금리를 내려서 신규 고객을 유치해야 할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대환대출 시범운영을 통해 개별 금융사가 신규로 유치할 수 있는 신용대출 한도를 4000억원 또는 전년도 신규 취급액의 10% 이내 중 적은 금액으로 설정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범운영 단계에서 대환대출을 통한 이동 규모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도를 정했지만 대출 동향을 살피면서 필요시 기준을 탄력적으로 조정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에 비해 자금조달 사정이 열악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사정을 고려할 때 은행으로의 쏠림 현상도 우려해야 하는 지점인 만큼 취급 한도가 크게 늘어날 여지는 적어 보인다. ◆'은행끼리 이동'이 전체의 90%…은행권 신용장벽은 그대로 대환대출을 통한 금리 인하의 온기가 저신용자까지 미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출을 갈아탐으로써 이자를 아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가장 낮은 수준의 금리가 붙는 시중은행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출 금리가 낮은 만큼 시중은행은 평가 기준이 엄격해 제2금융권을 이용해 온 저신용자나 다중채무자는 부적격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은행권은 대환대출 서비스 개시에 맞춰 금리 인하 경쟁 채비를 갖추면서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출심사 기준까지 낮추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실제 금융위가 분석한 대환대출 개시 첫날 금융사 이동 사례도 은행에서 은행으로의 '은행 간 대출이동'이 이용금액 기준으로 전체의 90.5%에 달했다. 이미 기존에도 은행권 대출이 나올 정도의 신용도를 갖춘 차주들 중심으로 대환대출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축은행에서 은행으로 이동하며 금리를 10%포인트 이상 아낀 사례도 소개되고 있지만 이는 제2금융권 이용자 중에서도 고신용자에 해당하는 흔치 않은 경우일 것"이라며 "숫자로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저축은행에서 은행으로의 이동이 거부당하는 사람들이 훨씬 일반적인 사례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섭 기자 | 이정필 기자 | 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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