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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중전쟁]④中은 '미국 바이러스' 라는데…코로나19 기원의 정치화

등록 2021.09.11 07:00:00수정 2021.09.11 07: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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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중국)=신화/뉴시스]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의 '늑대 전사' 외교의 대표 주자다. 2021.08.27.

[베이징(중국)=신화/뉴시스]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의 '늑대 전사' 외교의 대표 주자다. 2021.08.27.

[런던=뉴시스]이지예 기자 = '20세기 최악'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회자되는 '스페인 독감'은 사실 스페인과 아무 연관이 없다.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강한 독감이 유행했는데 참전국들은 사기를 떨어뜨릴만한 뉴스를 철저히 통제했다.

그러나 중립국이던 스페인은 자국 내 발병 상황에 대해 자유로운 보도를 했고 세계인들은 스페인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이 전염병에 관한 자세한 얘기를 접했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게 된 배경이다. 스페인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자신들은 절대 발원지가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독감이 창궐한지 100년이 넘었지만 확실한 근원은 미스터리다. 미국 역사학자 존 베리 등은 미국 캔자스의 군기지에서 1918년 3월 최초 감염자가 나왔다는 데 힘을 싣는다. 당시 유럽 곳곳에 배치된 미군을 통해 바이러스가 여기저기 번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중국 등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제기된다.
[AP/뉴시스]스페인독감이 돌던 1918년 미국 대학 미식축구 경기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관중들. 2021.9.9.

[AP/뉴시스]스페인독감이 돌던 1918년 미국 대학 미식축구 경기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관중들. 2021.9.9.


코로나19 기원도 미궁 빠지나…"모든 게 정치로 오염"

지금 인류는 코로나19라는 또 다른 역대급 팬데믹을 겪고 있다. 곧 발병 2주년이 다가오는데 바이러스의 기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과학계는 코로나19가 박쥐 같은 야생동물에게서 사람으로 넘어 왔다고 본다. 그러나 정확한 숙주나 중간 매개체가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인간에게 전파된 건지 아무 것도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코로나19의 기원도 영원히 미궁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이미 높다. 과학적 조사에는 속도가 나지않는데 책임 공방만 가열돼서다. 바이러스의 기원 문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주도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정치 싸움'으로도 비화했다. 양국 정치인들 모두에게 상대국 견제와 국내 여론몰이에 딱 좋은 소재인 탓이다.

미국은 중국 중부도시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를 문제의 발단으로 주목한다. 우한은 2019년 12월 코로나19 발병이 처음으로 공식 보고된 곳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최대 피해국'인 미국이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며 미군 생물 연구소 기원설을 들고 나왔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스튜어트 닐 바이러스학 교수는 온갖 갑론을박으로 기원 추적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돌아가고 있다며 "모든 게 정치로 오염됐다"고 텔레그레프에 말했다.
[서울=뉴시스] 2020년 1월 중국 우한시 화난 수산 수산시장에서 방역 요원들이 소독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출처: 바이두> 2020.01.02

[서울=뉴시스] 2020년 1월 중국 우한시 화난 수산 수산시장에서 방역 요원들이 소독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출처: 바이두> 2020.01.02


美서 '반중정서' 업고 우한연구소 유출설…"반소련 투쟁 연상"

미국에서는 우한 연구소 유출설을 기정사실화하는 목소리와 과학적으로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예단은 안된다는 신중론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기원에 관해 공식적으로 내린 결론은 아직 없다. 미 정보당국마저도 추가 기원 조사를 했지만 '자연 전파설'과 '연구소 유출설'을 놓고 뚜렷한 결론을 짓지 못했다고 8월 털어놨다.

미국인들 사이 역대 최악의 반중 정서가 조성되면서 미 정치권은 여기 부응하려 바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연구소 유출설을 거론하면서 미 정보기관들에 코로나19 기원 추가 조사를 공개적으로 지시했다. 코로나19 발발 한 달 전인 2019년 11월 우한 연구소 직원들이 유사 독감 증세로 입원했다는 보도로 여론이 들썩인 직후였다. 민주당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처음 연구소 유출설을 주장했을 때에는 음모론으로 폄하하기 바빴다.

강경파 미 정치인들은 코로나19가 우한 연구소에서 흘러나왔다고 자기들끼리 결론을 냈다. 미 하원 외교위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우한 연구소 유출 증거가 압도적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이 기원을 밝힐 때까지 전 세계가 합세해 중국을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치 활동을 슬슬 재개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 공산당이 '피해 보상금'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작년 코로나19 초반만 해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상황을 잘 해결할 것이라고 격려하다가 미국 내 피해가 본격화하자 중국 때리기로 태세를 바꿨다.

미국 언론은 정치권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CNN은 바이러스 기원이 완전히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미 정계에선 중국이 대가를 치르게 하자는 요구가 빗발친다며 "신냉전을 촉발할 수도 있는 지정학적 다툼에 유독성을 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애틀랜틱은 "몇몇이 연구소 유출설을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전용하려 한다"며 1950년대 소련 공산주의라는 외부 위협을 이유로 모든 것을 반대하며 내부적 이념 숙청을 정당화하던 반공 투쟁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오하이오(미국)=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2021.08.06

[오하이오(미국)=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2021.08.06


공산당 위상 달려…中, 발원지 인정 않고 해외 조사 요구

중국은 코로나19가 자국에서 시작됐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 각지에서 우한보다 먼저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나왔다며 다른 나라에서도 기원 조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컨대 유럽종양학연구소(IEO)는 바이러스 추적 과정에서 2019년 11월 이탈리아에서 25세 밀라노 여성이 코로나19에 걸렸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브라질, 인도 등에서 기원 추적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특히 미국 포트데트릭 연구소 기원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 곳은 미군 생물학무기 개발 역사의 중심지로 현재는 바이러스 관련 생의학 연구를 한다. 중국은 이 연구소 일대에서 2019년 중순 원인불명 호흡기 질환이 발병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미국이 떳떳하다면 조사를 허용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누리꾼 2500만 명이 서명한 포트데트릭 연구소 조사 청원서를 세계보건기구(WHO)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시도는 국제사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이 바이러스 확산을 적극 알린 탓에 '스페인 독감'이라는 오명을 썼다면 중국은 코로나19 사태 초반부터 불투명한 대응으로 지탄받았다. 폐쇄성으로 악명 높은 중국 정부가 초기 사태의 심각성을 은폐하고 정보를 통제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서다. 질병 확산을 처음 경고한 의사 리원량을 괴담 유포자로 처벌한 게 단적인 예다. 코로나19는 어쨌든 중국의 부실 대응이 키운 '중국산 팬데믹'이 맞다는 조롱까지 나온다.

중국에 코로나19는 공산당의 위상이 달린 문제다. 먼저 확산세를 잡은 중국은 작년 9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하면서 자국 통치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했다. 또 마스크와 백신 외교를 통해 책임 있고 마음씨 좋은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호주 멜버른대 아시아 연구소의 멜리사 콘리 타일러 연구원은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중국은 바이러스를 퍼뜨린 게 아니라 세계에 바이러스 극복 방법을 보여준 체제로 기억되길 원한다"고 꼬집었다.
[AP/뉴시스]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제공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입자의 전자 현미경 이미지.

[AP/뉴시스]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제공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입자의 전자 현미경 이미지.


기원 찾아야 다음 팬데믹 막는데…진전 없는 WHO 조사

학계에선 다음 팬데믹을 막으려면 코로나19의 시작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WHO는 "코로나19 기원 수색은 비방, 손가락질, 정치적 점수따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모든 나라가 다같이 협력하며 과학적 조사를 지원할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호소했다.

WHO는 3월 발간한 우한 현지 조사 보고서에서 박쥐 같은 본래 숙주에서 밍크, 천산갑 등 '중간 숙주'를 통한 전파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농사, 사냥 등의 접촉으로 인한 '숙주→인간 직접 전파'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바이러스가 동물 오물에 오염된 냉동식품에 의해 간접적으로 넘어왔다는 설도 가능한 얘기라고 분석했다. 실험실에서 코로나19가 유출됐다는 설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새로울 것 없는 내용으로 더 큰 논쟁을 촉발했다. 중국은 우한에 온 국제 전문가단에 제한적 자료만을 허용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일본 등 14개국은 공동 성명을 통해 기원 조사 지연과 원본 자료·샘플 접근성 부족 문제에 우려를 표명했다. 일각에선 WHO 무용지물 주장이 또 터져 나왔다. WHO는 주요 자금원인 중국 눈치를 보느라 팬데믹 선포를 지체하며 늑장 대응을 했다고 호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우한=AP/뉴시스]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이 1월 14일 중국 중부 후베이성 우한 공항에 도착해 방호복을 입은 중국 관계자의 안내를 받고 있다. 2021.01.14.

[우한=AP/뉴시스]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이 1월 14일 중국 중부 후베이성 우한 공항에 도착해 방호복을 입은 중국 관계자의 안내를 받고 있다. 2021.01.14.


더 늦어지면 생물학적 기원 규명 불가…"미중 대화 필요"

코로나19 기원 정치화 우려에도 미중 공방전은 점점 더 가열되는 양상이다. 미국은 중국에 전 세계적 확산의 책임이 있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기원 추가 조사 협조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중국 스스로도 투명한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을 안다며 "여기 실패한 결과, 코로나19가 더 빨리 통제에서 벗어나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미 투명하게 조사에 응했다며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기원 추적을 똑같이 진행하길 요구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푸콩 군비통제국장은 "중국을 희생양 삼아 미국을 미화시킬 순 없다"고 말했다. WHO는 불완전한 조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우한 연구소를 위주로 하는 2차 기원 조사를 추진하고 나섰다. 중국은 그러나 1차 조사에서 이미 명확한 결론이 났다며 재조사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WHO 국제 전문가단은 코로나19의 기원을 규명할 '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일부 생물학적 연구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시간이 지나 항체가 감소하면 추가 샘플 채집이나 2019년 12월 이전 감염자 추적도 어려워진다. 게다가 방역을 위해 중국 내 많은 야생동물 농장이 문을 닫거나 동물을 살처분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우리가 절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원 논란은 이미 얼어붙은 미중 관계에도 추가적인 악재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7월 회담에서 '책임 있는 미중 관계 관리'를 강조했다. 이런 일환에서라도 코로나19 기원을 놓고 협력이 긴요하다는 요청이 나온다. 크리스토퍼 존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현 상황에선 "스모킹건(결정적 단서)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며 갈등을 완화하려면 사실상 미중이 서로 대화하는 수밖엔 없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톈진=AP/뉴시스]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중국 톈진에서 회담했다. 2021. 7. 26.

[톈진=AP/뉴시스]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중국 톈진에서 회담했다. 2021. 7. 26.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