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양산 한우집에 회식을 명목으로 24명 단체 예약을 한 A씨.
A씨가 식당에 다시 전화를 걸어온 것은 예약 시간을 단 10여분 남긴 시점이었다. A씨는 "양주를 마시고 싶은데 사장님이 양주를 미리 구비해주면 저희가 도착해서 사장님한테 결제를 하겠다"며 양주 대리 구매를 요청했다고 한다. 양주 가격은 1병 당 95만원, A씨는 40만원씩을 더해 각 병당 13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 가게에서 일하던 김모(28)씨는 양주 구매를 거절했다가는 단체 손님을 놓칠까, 이를 수락했다. 테이블에는 이미 24인분의 식사 세팅도 마무리돼 있었다. 김씨는 A씨가 전해준 양주 판매 업체에 전화를 걸어 총 6병 금액인 570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예약 시간이 지나도록, 양주는 커녕 A씨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씨가 '설마 노쇼 사기일까' 싶어 다시 전화를 걸어봤으나, 이후 돌아온 것은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조롱 뿐이었다. 김씨는 즉시 은행에 계좌 정지를 요청했으나 "개인 간 물품 사기로는 계좌 정지가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찰에도 찾아갔으나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말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15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최근 '노쇼사기'는 2단계 속임 구조로 이뤄진다. 김씨가 피해를 입은 것처럼 식당에 전화해 단체 예약을 한 후, 회식 때 고급 주류가 필요한 데 대신 주문해줄 것을 요청하며 연락처를 전달하고, 이 연락처로 위조된 명함을 보내 송금하도록 하고 연락을 끊는 식이다.
노쇼 사기는 전화금융사기·투자리딩방과 같은 비대면 기반 사기다. 또 주로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콜센터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경찰은 "휴대전화로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연락 온 전화번호가 아닌 해당 공공기관·사무실의 공식 전화번호에 직접 확인해서 물어봐야 한다"며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바 있다.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초국경 범죄 특성상 검거가 쉽지 않고 현행법상 피해 보전도 어렵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계좌 정지를 요청해도 '개인 간 물품 사기의 경우' 계좌 정지가 불가능하다.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등 전기통신금융사기의 경우 지급 정지가 가능하지만 개인 간 물품 거래 등은 해당하지 않는다.
경찰은 투자리딩방·구매대행 아르바이트 사기 등 신종 사기에 계좌 일시중지 요청 등 임시조처가 가능하도록 하는 '사기방지기본법'이 제정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사기방지기본법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찰은 22대 국회에서 '다중피해사기 방지법'으로 명칭을 바꿔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기 예방 캠페인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초국경 범죄다 보니 검거가 쉽지 않고, 예방적 차원에서도 전화번호나 유심 차단도 뚫려버린 상황"이라며 "국민 개개인의 예방 역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금융·통신업체들, 정부 부처, 각 지자체가 함께하는 국가 캠페인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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