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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았다' 해직언론인이 증언한 5·18

등록 2014.08.31 13:36:19수정 2016.12.28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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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31일 5·18기념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만든 책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은 5·18 당시 신군부의 무참했던 광주 시민 학살과 언론 검열·탄압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사진은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 책 표지 모습. 2014.08.31.  guggy@newsis.com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31일 5·18기념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만든 책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은 5·18 당시 신군부의 무참했던 광주 시민 학살과 언론 검열·탄압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사진은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 책 표지 모습. 2014.08.31.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1980년 5월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 공동사직서 내용)

 31일 5·18기념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1980년 해직언론인들과 함께 만든 책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은 5·18 당시 신군부의 무참했던 광주 시민 학살과 언론 검열·탄압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책에는 80년 5월 광주 지역 신문과 중앙지 신문, 방송, 다른 지역 신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했으나 결국 신군부 검열 때문에 보도하지 못했던 사진과 기사와 그 경위, 이유 등이 실려 있다.

 5월20일, "역사를 기록하자"며 비장하게 제작했던 전남매일신문의 '18, 19일 이틀 동안 계엄군에 학생, 시민 피투성이로 끌려가 / 민주화 부르짖다 숨지고 중태' 1면 톱기사 역시 신문 제작 조판대가 군부의 압력을 받은 임직원들에 의해 엎어지면서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두 남녀가 전남도청으로 붙잡혀 가는 사진도, 진압군에게 머리를 맞아 쓰러진 시민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지는 사진도 보도되지 못했다.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공동사직서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는 기자는 더 이상 신문사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며 던진 것이었다.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31일 5·18기념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만든 책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은 5·18 당시 신군부의 무참했던 광주 시민 학살과 언론 검열·탄압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사진은 책에 실린 80년 5월 신군부 검열 때문에 사실 보도를 하지 못한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이 작성한 공동사직서 초안. 2014.08.31.  guggy@newsis.com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31일 5·18기념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만든 책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은 5·18 당시 신군부의 무참했던 광주 시민 학살과 언론 검열·탄압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사진은 책에 실린 80년 5월 신군부 검열 때문에 사실 보도를 하지 못한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이 작성한 공동사직서 초안. 2014.08.31.  [email protected]

 중앙일보 광주지사가 모든 통신수단이 두절된 상태에서 어렵게 서울 본사로 보낸 '공수부대의 무차별 살육에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가담', '금남로 시민 학생 무조건 구타, 칼로 찌르고 여학생 옷 벗겨' 등의 기사도 지면에 게시되지 못했다.

 생생한 현장 취재 증언은 5월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흰 천으로 덮여 줄지어 누워 있는 시신들, 그 시신들과 유족들로 인해 상무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백주대로에서 속옷만 입은 채 벗겨진 수십 명의 젊은 남녀가 공수대원들로부터 곤봉 세례를 받고 피가 튀기는 모습을 숨어서 봤다'는 증언을 통해 신군부가 벌인 무차별 학살의 참혹함을 알려다.

 '시위사태가 일어났던 18일 이후 금융기관이 침입된 사례는 전혀 없었고 생필품이 모자라는 가운데도 사재기를 볼 수 없었으며 적은 물건이나마 서로 나눠 쓰는 미덕을 보였다', '일부 시민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자체적으로 마을 경비를 맡았다'며 당시 광주 시민정신이 살아 있었음을 전했다.

 증언록에는 '나는 기자라는 이름의 역사의 죄인', '당시 나는 기사 한 줄 보도할 수 없는 거세된 무정란 기자였다' 등 5월 광주의 비극에 대해 진실 보도를 하지 못했던 기자로서의 고해 성사가 이어졌다.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31일 5·18기념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만든 책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은 5·18 당시 신군부의 무참했던 광주 시민 학살과 언론 검열·탄압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사진은 책에 실린 80년 5월 신군부 검열 때문에 보도하지 못했던 사진과 기사. 2014.08.31.  guggy@newsis.com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31일 5·18기념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만든 책 '5·18민주화운동과 언론투쟁'은 5·18 당시 신군부의 무참했던 광주 시민 학살과 언론 검열·탄압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사진은 책에 실린 80년 5월 신군부 검열 때문에 보도하지 못했던 사진과 기사. 2014.08.31.  [email protected]

 신군부의 언론 통제에 반발해 전국의 기자들이 일부 검열 및 제작 거부 투쟁에 돌입했지만 신문, 방송, 통신 제작은 중단되지 않고 오히려 신군부의 입맛에 맞게 요리되는 모습으로 비춰진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광주학살 이후 군부는 언론장악을 시도, 80년 7월부터 그해 9월까지 1000여명의 언론인을 강제 해직시키고 40여개 언론사를 통폐합했다. 증언록을 만드는데 참여한 기자들은 그 당시 군부로부터 강제 해직된 기자들이다.

 고승우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광주항쟁 동안 신군부에 저항한 세력은 광주와 전남 일원의 시민들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언론인들이 유일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80년 광주항쟁과 같은 해 있었던 언론인 투쟁이 하나가 되는 것은 순리"라며 "이번 백서를 통해 먼 훗날 광주항쟁 동안 언론 투쟁이 동시적으로 감행됐다는 것이 기록으로 입증되게 됐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또 "광주 정신인 민주, 인권, 평화가 한국 사회와 언론에 의해 얼마나 실천되었나를 살피는 것은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작업"이라며 "언론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박근혜 정권에서도 여전히 타당성을 지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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