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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홀린 민요록밴드 '씽씽', 이희문 "발버둥 칠수밖에 없다"

등록 2017.11.12 09:12:02수정 2017.11.12 10: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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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지난 7월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씽씽. 2017.11.10.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지난 7월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씽씽. 2017.11.10. (사진 = 국립극장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기자 = 최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중독세를 퍼트리고 있는 밴드가 있다. 해외 공연 영상인데 모습만 보면 희안한 록밴드같은데 소리를 들으면 새삼 놀란다. 알고보면 우리 민요, 우리 소리다.

 이름도 민요록밴드 '씽씽'이다. 뱅스타일 헤어와 화려한 화장,  뮤지컬 '헤드윅'을 방불케 하는 쇼킹한 비주얼에 테크노 비트, 글램 록, 디스코 사운드를 입힌 국악 사운드가 아찔하고 독특해서 '기가막힌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소리꾼 3명과 영화음악 감독인 장영규(베이스)․이태원(기타)․이철희(드럼)로 구성됐다.

 어떻게 이런 밴드가 나올수 있었을까. '조선의 아이돌'이라며 외국에서 먼저 알아본 '씽씽'의 중심에는 경기명창 이희문(41)이 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씽씽 밴드의 열기가 가속화 되고 있는데 정작 그는 "오래전부터 해온 것"이라며 태연했다.

 이희문의 태연작약한 모습에서 정작 '우리 것'을 몰라본 민망함과 '외국옷을 입고 글로벌화된 민요'앞에서 미안한 감정이 솟았다. 

 우리가 언제 민요를 제대로 보려고 했을까. 옛노래, 못알아듣는 노래라고 잊고 살았다는데, 척박한 환경속에서 민요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민요록밴드 '씽씽'이 나오기까지는 전통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씽씽'을 이끄는 프런트맨 이희문은 "만들어진 밥그릇안에서 싸움을 할수 밖에 없는데 그 안에서 싸움이 싫었다"고 했다.

"원형은 지키되 포장지를 다르게 하는 것이 전통을 유지해가는 게 비결"이라고 꼽은 이희문은 이미 아이돌에 버금가는 무대 장악력으로 '경기소리의 스타일리스트' 'B급 일류 소리꾼' 등 다양한 별칭으로 통한다.

 경기민요 인간문화재인 이춘희 명창의 권유로 20대 후반 국악에 입문, 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가 됐다. 판소리계에 이자람과 함께 대표적인 젊은 국악계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경기민요 이수자 고주랑의 아들로 일본에서 미디어영상을 공부도 했다.

 지난 1월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페스트 뮤직 콘서트'에 참가한 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그를 서촌공간 서로에서 만났다. 오는 16~18일 서울 청파동과 만리동일대, 즉 예전 사계축(四契軸) 지역에서 번성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남성 소리꾼들의 소리를 찾아가는 공연 '깊은 사랑(舍廊)' 시즌2 준비로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서울=뉴시스】 이희문, 경기민요 명창. 2017.11.10. (사진 = 이희문 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희문, 경기민요 명창. 2017.11.10. (사진 = 이희문 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Q. 씽씽은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유명한 것 같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음악 힙스터들 사이에서 큰 인기인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한국 뮤지션 최초로 출연한 이후 현지에서 큰 인기다. 이후 한국에서도 새삼 뒤늦게 주목 받고 있다.

A. "지난 1월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페스트 뮤직 콘서트'에 참가한 이후 현지 많은 프로듀서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는 미국 투어 중이던 지난 6월 잠시 짬을 내 워싱턴에 가서 녹화한 것이다. 그 영상이 9월에 풀렸는데 아델도 출연한 프로그램이라 한국에도 마니아들이 많았더라. 입소문을 타면서 순식간에 반응이 오니 저희들도 놀랐다. 지난 2일 한국에서 클럽 공연을 했는데 현장에서 오픈한 티켓이 8분 만에 매진돼 깜짝 놀랐다. 150명 규모의 공간이었는데 200명까지 들어왔다. 가사를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우리 노래의 후렴구를 다 따라 부르더라. 신기했다(웃음)."

Q. 씽씽에 대한 반응이 왜 이렇게 폭발적이라 생각하는가.

A. "사운드는 이미 현지에서 익숙한 장르다. 레게도 있고, 펑크도 있고. 근데 노래하는 사라들의 창법이 다르다. 그게 이질적일 수 있는데 되게 좋아하시더라. 세상에 없던 '어메이징 한 비주얼'도 세다 보니 한몫했을 거 같다(웃음)."

Q. 씽씽이든 이희문 컴퍼니 작업이든 프렐류드와 협업이든, 무엇을 하든 전통과 현대가 공존돼 있다. 비결은 무엇인가.
A. "소리꾼 이자람 씨를 봤을 때 부러웠다.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판소리를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 전통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미 만들어진 밥그릇 안에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싸움이 싫었다. 그걸로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내 밥그릇을 따로 만든 거다. 그래서 이런 변화가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전통음악을 기반한 사람으로서 사명감 같은 건 있다. "재담형 가수가 아닌 콘텐츠형 가수"(국악평론가 윤중강)라는 말씀이 그래서 감사하다. 나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울타리나 무대, 즉 내가 만든 세상 안에서 잘 논다. 방송 등에 출연하는 건 남의 집에 가서 노는 것 같아 잘 안 맞더라."
 
Q. 이번에 발표하는 신작 '깊은 사랑' 시즌2는 작년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은 '깊은 사랑'을 발전시킨 것으로 안다. 정확히 어떤 내용인가.

A. "경기소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다. 옛날 농한기에 마을에는 남성들이 쉬는 땅을 파고 그 위에 볏짚으로 움집을 지어 방을 만들었다. 일종의 쉼터 같은 곳이었는데 그곳을 '깊은 사랑방'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취미로 경기민요를 하던 귀명창들이 소리를 나누던 곳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홍대 앞 인디신이라고 할 수 있다. 위치와 공간이 '깊은 사랑방'과 유사한 서촌공간 서로에서 그걸 소재로 한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 땅은 팔 수 없지만, 블랙박스 형태(무대와 객석의 변환이 가능한 공연장)라 객석을 양 옆으로 밀착된 형태도 만들고 그 가운데서 공연한다. 영상 작가, 미술 작가도 함께 한다. 사운드, 퍼포밍, 디자인 전문가가 함께 하지만 소리는 전통 그대로 한다."
 
【서울=뉴시스】 이희문, 경기민요 명창. 2017.11.10. (사진 = 이희문 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희문, 경기민요 명창. 2017.11.10. (사진 = 이희문 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Q. 경기민요의 역사를 되짚어가는 공연이 될 듯하다.

A. "내가 민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어떻게 공부를 했으며 어떤 식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녹아들어간다. 그렇게 개인적인 역사를 건드리다 보니, 민요의 역사도 건드리게 되더라. 경기민요에서 남자 소리꾼은 인디에서 시작했다. 한 때 왕성했지만 지금은 쇠퇴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속에서 화두를 던지고 싶다. 요즘 세상에 전통 소리를 하는 소리꾼으로서 어려움도 있을 것이고, 이 판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도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가 이 시대에 대한 궁금한 것도 있고. 그런 것들이 녹아들어간다."

【서울=뉴시스】 이희문, 경기민요 명창. 2017.11.10. (사진 = 이희문 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희문, 경기민요 명창. 2017.11.10. (사진 = 이희문 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Q, 전통에 대한 책임감인가?

A. "윗대와 현 세대의 교류가 없다. 내 나이대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나 역시 여자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웠다. 물론 유능하신 분이고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지만 남자 소리에 대한 근본적인 갈증이 있다. 그걸 어떻게 찾아나갈 것인가가 숙제인데 현재 미개척된 분야다 보니 할 게 많다. 예를 들어 현재 남도소리인 판소리는 예전에 서울 지역에서 인기가 없었다. 경기민요가 융성했지. 그래서 판소리 하시는 분들이 연구를 많이 하셨다. 지금은 판소리 자료가 많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은 경기민요 자료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명맥을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서 더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Q. 앞으로 또 어떤 도전을 할 것인가.

A.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전통 음악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현대음악을 좋아했고 대중음악 뮤직비디오 감독을 꿈 꿔 연출 공부도 했다. 그러다 전통 음악 쪽으로 넘어왔다. 음악 자체는 참 좋지만, 제도적인 시스템과 분위기는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맨땅에서 헤딩'을 시작한 거다. 의지할 데가 없으니 스스로 판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런데 아직 연기 쪽을 안 해봤다. 기존 형태는 나랑 역시 맞지 않다(웃음). 독특한 모노드라마를 구상하고 있다. 또 다른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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