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신효령의 BOOK소리]"자본주의 세계에서 회사란 무엇일까요?"

등록 2018.03.27 08:52:52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 김솔 작가가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구 DDP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27.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 김솔 작가가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구 DDP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 낸 김솔 작가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회사의 일방적인 공장 폐쇄 선고가 내려진다. '대체 왜', '어쩌다가'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 때부터 치열한 경쟁과 음모가 시작된다.

김솔 작가의 세번째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문학동네)는 제각기 살 길을 찾는 회사원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김 작가는 소설을 쓴 의도에 대해 "절대적인 악인도, 절대적인 선인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회사가 문을 닫는다고 가정해놓고 사람들을 집어 넣으면 제가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갖고 스토리를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은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무기회사가 영업 실적 부진을 이유로 이탈리아 피렌체 공장의 폐쇄 결정을 내리면서 시작된다.

이에 유럽 지역 영업본부장과 피렌체 공장장은 각 부서의 팀장들을 비밀리에 모아 '마카로니 프로젝트'를 가동시킨다. '마카로니 프로젝트'는 직원들의 동요나 저항 없이 순조롭게 공장을 폐쇄하기 위한 계획이다.
[신효령의 BOOK소리]"자본주의 세계에서 회사란 무엇일까요?"

팀장들은 동료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그들을 배신한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은밀한 프로젝트에 동참함으로써 회사에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각자 생존을 모색하는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디스토피아(Dystopia·반(反)이상향)를 상상한 것"이라며 "어떤 일이 벌어지면 자신의 상황에 따라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다"고 말했다.

"서로 부딪히고 현실에 타협하다가 결국 공멸할 것 같지만,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선의 삶을 추구할 때 어느 쪽이 절대선이거나 윤리적으로 우선한다고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공식적인 공장 폐쇄 발표를 접한 직원들 반발은 예상보다 훨씬 거세다. 공장 기계를 파괴하거나 집기를 약탈하는 등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팀장을 찾아가 동정심에 호소하기도 한다.

다가올 운명에 자포자기하며 최대한의 보상을 얻어 퇴사하려는 쪽과 어떻게든 공장 폐쇄를 막아야 한다는 쪽 사이의 팽팽한 다툼도 생긴다.

김 작가는 "소설 속 이야기는 현실에서 이미 일어난 적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며 "이미 알고 있는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럼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의 연속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재발 방지 시스템, 사회적 합의, 이해당사자간의 연대, 사회 보장제도 등을 통해 이같은 일이 또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 김솔 작가가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구 DDP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27.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 김솔 작가가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구 DDP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피렌체라는 이국적인 공간과 함께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스 등 다국적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김 작가는 이를 '소설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 심지어 무기 회사 이야기를 쓰면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야기 자체에 빠져들 것 같았어요. 또 인물들 사이의 갈등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읽다보면 '우리들 이야기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직장인들의 답답한 속을 뚫어줄 '사이다' 같은 소설이다. 애환과 고충이 절절하게 녹아 있어 독자들을 금세 몰입시킨다.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간극, 각 부서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 싸움, 사태 전개에 따라 직원들 심리가 변화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절망이나 희망 중 하나만을 선택하기에 그는 너무 오랫동안 이 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자신이 통과해온 시공간과 자식들이 통과해야 할 그것을 한꺼번에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런 모호한 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니 주변 환경에 맞춰 부지런히 피부색을 바꾸고 묵묵히 따르는 척할 수밖에."(59쪽)

"빼앗은 자들과 빼앗긴 자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변증법적 합의와 주기적 갱신, 그런 과정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생에게도 상식이지."(23쪽)

"공동의 희망을 좇아 함께 아름다운 파산을 선택하는 게 인간적인 것일까, 아니면 파산 전에 제 몫을 챙겨 떠나는 게 더 인간적일까."(77∼78쪽)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 김솔 작가가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구 DDP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27.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 김솔 작가가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구 DDP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내기의 목적'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 작가는 새로운 이야기꾼의 탄생을 예감케 했다. 제3회 문지문학상, 제22회 김준성문학상, 제7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등단 후 6년 동안 두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쉬지 않고 펴낸 그는 "'인간이 절대적으로 순수한 존재가 아닌 것'에 천착해왔다"고 밝혔다.

이번 소설은 그가 천착했던 사유의 세계로부터 몇 걸음 더 나아가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회사란 무엇인지, 이 세계에서 온전하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윤리가 아닌 생존의 영역에서 날카롭게 묻고 있다.

"노력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토록 비난했던 사람들하고 닮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순수하다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늘 주시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작가는 향후 창작 계획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주제는 한결같다"며 "사람에 대한 관찰자적, 냉소적인 시선을 계속 견지할 생각이다.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맞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인간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항상 사회, 타인과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그런 의무를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저에게 질문하면서 사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글을 쓰겠습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