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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1937~2018···미남배우의 대명사, 주연영화만 507편

등록 2018.11.04 05:30:26수정 2018.11.12 09: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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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영화배우 신성일(81)이 4일 오전 2시30분 폐암으로 숨을 거뒀다.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치료에 전념해왔다.

투병 중에도 지난달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하는 등 대외 활동을 이어왔지만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다.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단역과 조연을 모두 거친 뒤 총 영화 507편을 주연, 한국 영화 발전에 공헌했다.

1960∼19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톱스타다. 1966년에는 한 해동안 89편의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상대역으로 출연한 여배우만 119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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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출연작은 '아낌없이 주련다'(1962) '가정교사'(1963) '청춘교실'(1963) '떠날 때는 말없이'(1964) '맨발의 청춘'(1964) '초우'(1966) '별들의 고향'(1974) '달빛 사냥꾼'(1987) '위기의 여자'(1987) '레테의 연가'(1987) '아메리카 아메리카 아메리카'(1988) '증발'(1994) 등이다.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고,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제작·감독을 맡은 작품은 '연애교실'(1971) '어느 사랑의 이야기'(1971)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1971)이다. 감독한 영화는 '그건 너'(1974), 제작작은 '코리안 커넥션'(1990) '남자시장'(1990) '물위를 걷는 여자'(1990)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 '열아홉 절망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1991) '안개 속에서 2분 더'(1995)다.

원래 이름은 강신영, 예명이 신성일이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1981년 11대 총선 서울 용산·마포구에 한국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2위로 낙선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 동구 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 동구에서 당선돼 의정 활동을 했다. 17대 총선에는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해 불출마했다.

청룡영화상 인기상(1963~1973), 아시아 영화제 남우조연상(1979),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1968),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1986),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1990),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1994), 대종상영화제 영화발전공로상(2004), 제28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특별공로예술가상(2008), 2008년 제17회 부일영화상 영화발전공로상(2008)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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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한국배우협회 회장, 2001년 한국영화배우협회 초대 이사장 등을 지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사장, 계명대학교 특임교수도 역임했다.

데뷔작 '로맨스 빠빠'에서 처음 만난 배우 엄앵란(82)과 1964년 결혼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하객과 시민 4000여명이 몰려 큰 화제를 모았다. 아들 강석현 씨, 딸 강경아·강수화 씨를 남겼다.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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