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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세계 최초 미래세대 위원장을 아시나요?

등록 2019.03.15 10: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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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서울=뉴시스】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서울=뉴시스】영국을 구성하는 네 개의 국가 중 웨일스는 그레이트브리튼섬 서쪽에 있는 인구 309만명의 작은 나라다. 주민들 대부분은 켈트족 혈통으로 영어와 웨일스어를 함께 사용한다. 1999년 스코틀랜드와 함께 자치의회와 자치정부를 수립한 웨일스에는 아주 특별한 정부 위원회가 있다. 세계에서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하다. 특이하게도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한다는 목표를 추구한다. 현안이 산적한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묻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이 위원회의 이름은 미래세대위원회(future generations), 위원장 이름은 소피 하우(Sophie Howe), 그는 다섯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미래학계는 오랫동안 '미래'학을 '미래세대'학이라고 주장해왔다. 미래연구는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삶의 질(wellbeing)까지 고려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틔우고 정책을 설계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미래세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이자 현세대는 만날 수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의하면 미래세대는 매우 불공평한 처지에 놓인다. 현세대가 무슨 짓을 하든 미래세대는 그 결과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사실, 아직 투표권이 없는 현재의 미성년들은 미래세대의 처지에 놓여있다. 현재 투표권을 행사하는 기성세대의 결정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대간 정의(justice) 문제는 권한을 행사하는 현세대와 그렇지 못한 미래세대의 권력 불균형에서 발생한다. 이 문제를 풀자면 국가적 차원에서 누군가는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는 법적, 제도적 과정이 필요하다. 웨일스 정부는 이 문제를 2016년 미래세대위원회를 신설하고 7년 임기의 위원장을 임명하는 것으로 풀고 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어떻게 듣겠다는 것일까. 웨일스 미래세대위원회의 기원을 찾아보니 1999년 자치의회와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새로운 통치구조를 고민하게 된 웨일스는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들이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방안을 모색했다. 이들에게 의회와 정부의 역할이 무엇이고, 민주주의는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함께 논의하고 싶었다.

이런 노력은 2014년 '청소년 참여 헌장(Youth Engagement Charter)'을 선포하면서 구체화하였다. 이 헌장에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존중하며, 정책으로 실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듬해 2015년에는 '미래세대의 행복을 위한 법령(Wellbeing of Future Generations Act)'이 제정되었다. 이 법령의 핵심 내용은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위원장직 신설, 장기적 시각의 미래연구 및 미래 트렌드 공유, 미래 대안의 제시 등을 담고 있다. 이 법령에 따라 2016년 미래세대 위원장직과 청소년 의회(Youth Parliament)가 신설되었다.

웨일스는 청소년 의회 설립 시 5천 명의 청소년들에게 청소년 의회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으며, 현재 11세에서 18세까지 60명이 민주적 선거절차를 통해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2년 임기의 청소년 의원들은 미래세대의 처지에서 정부가 우선 추진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 생물다양성의 유지 및 보호,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마련, GDP(국내총생산) 같은 경제지표가 아닌 삶의 질을 포괄적으로 높이는 대안 지표(Wellness)의 개발 등이다.

청소년 의회는 웨일스 의회와 긴밀하게 협업한다. 청소년들이 제기한 의제는 웨일스 의회 논의사항으로 제기된다. 지난 2월25일 청소년 의회는 청소년의 감정과 정신 건강을 위한 우선 지원,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웨일스 의회에 전달했고, 이 내용은 의회 홈페이지에 주요 의제로 올라와 있다.

요즘 하우 미래세대위원장의 고민은 웨일스 우회도로 공사에 11억 파운드(한화 1조6000억원)를 쏟아붓는 프로젝트에 쏠려있다. 이 공사가 웨일스의 경제적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는 기여하겠지만 우회도로를 만들면서 훼손되는 생물다양성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빚을 전가한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미래세대 위원장의 역할은 정부 정책담당자들에게 사업의 필요성을 엄격하고 꼼꼼하게 따져 묻는 것이다.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미래세대의 권익과 행복의 관점에서 묻고 또 묻는다. 하우 위원장은 까다로운 질문으로 정책담당자들이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책 과정에 시민들을 참여시키고 미래의 부정적 효과를 사전에 대응하며, 정부간 협업을 촉구해 사회문제를 통합적인 시각에서 풀 수 있다고 한다.

【서울=뉴시스】소피 하우 웨일스 미래세대위원장.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서울=뉴시스】소피 하우 웨일스 미래세대위원장.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현재 행동이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알면서도 우리는 현재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미래세대의 행복과 삶의 질을 희생한다. 그들이 우리를 비난할 것이란 점도 알고 있지만, 그 비난을 들을 때 즈음이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을 것이란 얄팍한 계산도 하고 있다. 그러나 웨일스에서 태어날 미래세대는 적어도 이런 비난만큼은 덜 할 것 같다. 잘한 일에 대해서는 현세대에게 고마워할 수도 있겠다. 현재 웨일스에 살고있는 시민들이 부러운 이유다.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email protected])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미래연구 전공) 박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연구위원, 미래창조과학부 X-프로젝트 간사위원, 육군 미래준비위원회 기획위원 역임
2017년 세계미래학연맹(World Futures Studies Federation) 수여 '미래연구자상(Outstanding Young Futurist)' 수상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2037년 다가오는 4가지 미래(이새, 2017)'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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