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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균형발전, 사람 중심의 지역발전이 되어야

등록 2019.03.22 14: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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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서울=뉴시스】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서울=뉴시스】우리나라의 미래전망 가운데 비교적 공감대가 뚜렷한 전망이 있다면 인구감소가 아닐까 싶다. 실제 통계청의 인구추계에 따르면 2031년을 기점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다고 하니, 인구감소는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닌 바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올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인구감소는 전 지역에 골고루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어촌에 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쳐 지역소멸이나 지방붕괴와 같은 섬뜩한 용어들이 회자되고 있다.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의 대책으로 우리는 균형발전을 강조한다. 어디에 살든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균형발전이 이루어진 국가는 참으로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 '균형'의 실체가 모호한 데서 발생한다. 모든 지역에 균등하게 자원배분을 하는 것인가? 전국 어디서나 균질한 생활서비스를 누리는 것인가? 정부가 어디에 살든지 간에 책임져 줄 수 있는 삶의 질, 더 나아가 공공서비스의 기준은 무엇인가?

균형발전을 하기 위해서 중앙정부는 지방에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아파트 중심의 신도시를 개발하고, 공항과 철도를 건설한다. 지방정부도 지역 내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저개발된 지역이나 지리적 중심지에 청사와 공공기관을 이전하여 신축하고, 아파트와 대형마트 등 물리적 인프라를 건설한다. 경북도청이 자리잡은 안동, 충남도청의 내포신도시는 지방정부의 대표적인 균형발전 정책으로 홍보된다. 혁신도시도 다르지 않다. 기존 도시의 외곽으로 청사나 공공기관을 옮기고, 외곽의 값싼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것이 지방의 발전을 가져오는 공식처럼 많은 지역에서 통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구도심에서 오는 사람들이고, 구도심에는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 즉 ‘빨대효과’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지방 구도심에서 신도시로의 인구이동은 지역 내에서 새로운 문제를 발생한다. 예를 들어, 저출산으로 인해 학생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지만 신도시에서는 학교를 새로 건설해야 하는 반면, 구도심 학교는 학생 수가 급속히 줄어들어 폐교의 위기에 직면한다. 외곽 신도시에서는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지만, 도심에는 빈집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지역발전을 위한 균형전략이 지역 내에서는 불균형을 가져오고 기존 도시문제를 심화시킨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했던 결과가 지역 낙후를 가져왔던 그 메커니즘과 유사하게 지역 내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의도한 목표보다는 일하는 방식이 중요할 수 있다. 이제는 이러한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인구성장시대에 물리적 인프라 건설은 지역발전의 초석을 이루었지만 인구감소시대에 쇠퇴하는 지역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여전히 통용될 것인가? 대답은 명확하다. '재생', '공유'와 같은 단어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처럼 등장하는 것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흐름은 유명한 도시계획사상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아이디어와도 맞닿아 있다. 그녀는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흔한 체인점이나 표준화된 식당이 입점하는 신축 건물이 아니라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사람들이 입점하는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인 제이콥스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는 지역발전을 도모하다는 명목 하에 시각적으로 근사하고 화려한 새로운 건축물을 우선순위에 두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지역발전의 척도가 지역공동체나 삶의 질 같은 추상적 가치보다, 눈에 띄고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나 쇼핑몰의 형태로 우리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대도시와 중소도시간, 농촌간의 격차가 이제는 양적인 차원을 넘어 질적인 격차로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문제는 인구감소가 현실화되는 국면에서 기존의 지역발전 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데 있다.

결국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만한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즉, 정부는 지역 일상생활에서의 편익 향상, 삶의 질을 제고하는 공공시설 서비스의 접근성 제고 등 지역 주민을 위한 생활맞춤형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소한의 시민적 권리인 국가최저기준(national minimum)과 도시위계, 지역여건 및 재정여건을 고려하여 수립하는 지역최적기준(local optimum)에 대한 논의가 꽤 진행되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없다. 공간적 집적을 통한 효율성 뿐 아니라 지역 주민 누구나 생활밀착형 서비스에서 배제 받지 않도록 형평성도 같이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정책당국자나 연구기관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국가의 자원배분이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어려운 숙제를 해야 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인구감소와 저성장시대는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되어 버렸고, ‘포용적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가치는 이 땅에 사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핵심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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