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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대한민국 혁신체제, 창조적 학습사회를 지향해야

등록 2019.09.06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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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 '4차 산업혁명'과 '일본의 수출규제', 현재 우리나라 산업의 주요 화두이다. 이 두 가지는 향후 산업생태계의 재편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4차 산업혁명은 자동화와 연결성의 극대화를 추동하여 제조업을 포함한 전통적 산업들의 성격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일본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소재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는 지금까지 지속해온 글로벌 가치사슬이 전환기로 진입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산업은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하는, 다차원적인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를 어떻게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 슬기롭게 극복하느냐는 우리 산업계의 중요한 숙제이다.

직면한 불안감과 위기감을 극복하고 장기 저성장 기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국가 혁신역량과 제도적 기반을 진화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글로벌 혁신지형에서 선도자로서 발돋움하고 외부충격에도 곧 회복할 수 있는 복원력을 가진 산업구조로의 진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재정투입 확대로는 한계가 있다.

혁신역량 진화는 고착화된 성장 정체를 극복하고 고소득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충분조건이자 외부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우리가 앞으로 구축해야 할 혁신역량은 산업 전반의 부족한 개념설계역량 축적으로 지향할 필요가 있다. 개념설계역량은 새로운 개념을 기술, 제품, 비즈니스 모델 등 형태로 제시하기 위해 수반되는 점진적 탐색 활동, 누적적 실험 및 개선 과정을 포함한다.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실패로부터 '더 잘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자발적 학습활동이 지속되면서 경제체제에 생명력과 회복력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념설계역량 축적으로의 혁신역량 진화는 사회 전반에 창조적 학습활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을 때 가능하다. 창조적 학습사회는 개인, 기업, 연구소, 대학 등 혁신 주체들 스스로 구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노벨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는 계층 간 격차가 작고 경제 내 불안감이 적으며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을수록 더 많은 학습이 발생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학습에 대한 투자는 위험성과 불확실성이 높지만 훌륭한 사회보장제도는 위험을 완화하여 개인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모험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함을 주지한다.

여기에서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학습활동을 유도하는 제도적 요소와 정책의 역할이 강조된다. 창조적 학습사회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을 보았을 때 스티글리츠 교수의 주장은 아프다.

우리나라에는 전반적으로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만연한 듯하다. 이는 경제체제 내 주체들로 하여금 창조적 학습활동을 제약한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도전적 목표의식을 가지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안정된 직업군을 찾아 나선다.

연 2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으며 공시생 10명중 7명은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 청년들을 넘어 우리나라 개개인들은 노후준비, 취업, 및 소득 문제, 자녀교육 및 가족부양 문제 등 개인적 측면의 다양한 불안 요소에 휩싸여있다.

기업들의 경우에도 글로벌 무역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기술혁신의 흐름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기존 사업의 점진적 확장이나 구조조정에 힘쓰고 있다. 혹자는 불안이 우리나라 사회를 움직이는 본원적 힘이며 사회를 관리하는 숨은 지배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지역 간, 세대 간, 기업 간 격차가 점차 증대함에 따라 경제주체들 간 갈등은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는 혁신주체 간 신뢰 구축을 저해하고 있다.

이처럼 가중하는 불확실성, 불안감은 사람과 돈이 도전적인 시도가 있는 곳으로 흐르는 것을 제약하고 새로운 시도가 허용되지 않는 산업 및 경제환경의 고착화를 이끌 것이다. '더 잘하는 법'을 학습하는 사회가 창조적 학습사회라면 우리나라는 '더 도태되지 않는 법', '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법'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있는 사회인 듯하다.

이는 새로운 시도를 통한 역동적 학습경험 축적과 산업 전반의 개념설계역량 축적을 저해할 것이다. 또한 경제체제 내 쇠퇴하는 신뢰 기반은 혁신주체 간 거래비용을 증대시켜 이들 사이의 집합적인 혁신활동을 저해하고 학습에 따른 광범위한 파급효과 창출을 약화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 산업정책은 어떻게 변모해야 할까. 첫째, 미래 산업환경의 변화 양상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적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미래 산업환경에 영향을 미칠 다양한 환경변수와 동인들을 추출하고 이들 간 복합관계를 고려함으로써 시스템적 관점으로 산업환경 변화를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

다양하게 그려지는 미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중장기적 산업 로드맵과 발전전략이 도출되어야 한다. 이는 산업 내 혁신주체들이 마주한 불확실성을 다소 완화시킬 것이다.

둘째,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고 여기에서 수반되는 실패를 통해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정책금융, 교육, 노동, 과학기술 분야 등 혁신활동을 둘러싼 다양한 부문들이 공통의 비전으로 삼아 서로 어깨를 걸고 함께 도전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시도에 기반한 역동적 학습 분위기가 산업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기술을 둘러싼 규제를 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산업 내 인적자원들로 하여금 기술적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학습활동과 혁신활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가 구성될 필요가 있겠다.

셋째, 혁신주체 간 신뢰기반이 더욱 공고히 구축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식 공유 프로그램과 플랫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식 공유 플랫폼의 성공적 정착과 활용을 위해서 참여하는 주체들 간 사회적 신뢰가 축적되고 위험이 상호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안전망 및 사회적 자본에 대한 깊은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집합적 노력에 의한 창조적 학습활동의 파급효과를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 도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학습과 학습의 파급효과를 촉진하는 산업정책 설계와 이행을 통해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다.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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