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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듣다]제조는 '꿈'..."무조건 잘 팔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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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1-16 07:00:00
2004년부터 물티슈 제조기 개발·생산
물티슈 제조기가 40만원?...가정집 소비자들은 '외면'
"건강에 민감한 주부에게 먹일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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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황세영 대표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조를 몰랐고, 시장은 더 몰랐다. 아무런 검증 없이 제품이 무조건 잘 팔릴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서울=뉴시스] 표주연 기자 = "제조를 몰랐고, 시장은 더 몰랐다. 아무런 검증 없이 제품이 무조건 잘 팔릴 줄 알았다."
 
황세영(53) 대표는 무역도매업체를 운영했다. 한쪽에서 물건을 떼어서 다른쪽에 파는 유통업체 입장에서 제조는 '꿈'이라고 한다. 내 물건을 만들어서 한번 직접 팔아보자라는 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2004년 엘릭스라는 법인을 만들어 마른 휴지를 넣으면 물티슈로 만들어주는 기계를 개발해 제작했다. 자신을 포함해 직원 4명과 시작했다.

개발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격이었다. 제조원가가 대당 70만원에 달했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격은 100만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 가격에 '물티슈 제조기'를 구매할 일반 가정 소비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제조를 외부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접했기 때문에 단가를 더 낮추는게 쉽지 않았다. 역시 팔리지 않았다. 2004년 일본과 우리나라 백화점 푸드코트 등에 팔은게 고작 4000만원어치에 불과했다. 사실상 매출 '제로(0)'였다.

황 대표는 "제조를 아웃소싱을 줬어야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개발과 생산을 병행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는데 그게 패착이었다"고 털어놨다. 

2012년까지 이 사업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후 2012년 다시 단가를 낮추기 위한 소형화에 도전했고, 제품 원가를 20만원까지 낮췄다. 소비자가는 약 40만원.

그래도 팔리지 않았다. 40만원으로 가격이 떨어져도 물티슈를 만들어주는 기계를 살 소비자들은 많지 않았다. 대형마트에 가면 1000원~3000원짜리 물티슈가 널려 있는데다가, 애초에 일반 가정집, 아기를 낳은 신혼부부를 타깃으로 잡았던게 문제였다. 

"2011~2012년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 방부제 등이 이슈였다. 이 기계로 만드는 물티슈는 화학약품이나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는다. 가정용으로 먹힐 것으로 생각했다. 착오였다."

2013년까지 3000대 정도를 만들었다. 이 3000대를 모두 파는데 6년이 걸렸다. 황 대표는 "아기 엄마들이 이건 방부제가 없으니 무조건 쓸거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주변에도 누가 이걸 사겠냐는 조언을 많이했지만 듣지 않았다. 황 대표는 "개발자는 몰두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믿지 않는다. 반박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한번에 기계를 구매하기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를 위해 렌트도 대안이 될 수 있었지만 판매만 고집했다. 자금이 필요해서였다. 판매는 곧바로 현금이 들어오지만, 렌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물티슈제조기 회사는 2016년 폐업했다. 2004년 처음 시작하고 약 10년만에 문을 닫았다. 2012년부터 폐업한 2016년까지 황 대표가 쓴 현금은 약 25억원에 달한다.

이에 대해 황 대표는 "제조도 너무 모르고, 시장은 더 몰랐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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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황세영 대표는 2004년 엘릭스라는 법인을 만들어 마른 휴지를 넣으면 물티슈로 만들어주는 기계를 개발해 제작했다.
"제조를 모르고 너무 쉽게 덤벼들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시장은 더 몰랐다. 타깃마케팅이라는게 검증을 안 해보면 모르는 건데, 생각으로만 너무 안일하게 접근했다."

제조는 뭐가 문제였을까. 황 대표는 "만들기만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파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고 돌아봤다. 무엇보다 제조원가, 공정, 제품에 대한 AS 등에 대한 대책이 심사숙고되지 않았다. 제품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품화하다보니 수도 없이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예를들어 겨울철이면 이 기계가 작동을 멈췄다고 한다. 기계의 윤활류가 얼어서 벌어지는 간단한 원인이었는데, 이 원인을 찾는데만 며칠이 걸렸다.

황 대표는 2018년부터 같은 제품으로 재도전 중이다. 이번에는 아예 타깃을 공공장소로 바꿨다. 골프연습장, 실내오락실 등이 주요 타깃이다. 사업의 방향도 바꿨다. 기계를 판매하는게 아니라 기계를 무상에 가깝게 대여해주고, 매달 리필해야하는 물티슈 제조용 티슈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사업을 폐업한 뒤에도 이 기계를 구매한 업소들에서는 꾸준히 티슈 리필 요청이 들어온다는 점에 착안했다. 현재 업소에서만 매달 100박스 티슈 리필이 이뤄지고 있다. 약 500만원어치다. 업소에 깔려있는 기계가 70~80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황 대표는 아기 엄마들에게 기계를 파는데만 몰두했던 것에 대해 다시 자책했다. 황 대표는 "티슈를 많이 쓰는 곳에 기계를 팔 생각을 했어야했다"며 "아기엄마들에게 20~30대 팔아서 총 600만~700만원 벌어봐야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집에 팔 생각을 안하고 과거 만들었던 기계 2000~3000대를 모두 업소에만 팔았다면, 현재 티슈 리필로만 한달 매출 1억원이 유지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대표가 재도전하는 새기계는 올해 상반기 국내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이번에는 중국업체에 아웃소싱을 맡겼다. 이번에는 티슈를 한달에 1박스 이상 사용하는 조건으로 기계를 무상대여할 계획이다. 황 대표는 "지금에야 깨달았다"고 웃었다.

황 대표는 지금 창업을 준비하는 초보 창업자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최대한 느긋하게 하라"고 말했다.

그는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해서 앞서가는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불안한게 있다면, 반드시 문제가 터진다. 다 해결하고 시작해라. 반드시 확인해야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yo0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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