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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듣다]직원이 2개월을 못 버티는 회사...알고보니 내가 '나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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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3-05 07:00:00
여상철, 하이팟 대표, 개발자에서 사업가로 도전
'개발자 마인드' 못 버려 어려움 겪어
직원들에게 가혹했던 '사장님' "그것 때문에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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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표주연 기자 = "내가 사장이니까,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돌아보니 직원들이 안 좋아하는 행동은 다 하고 있었다."

여상철(56) 하이팟 대표는 1998년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진 직후 모 보험사 개발팀에서 퇴사했다. 이후 개발자로서 꽤 능력이 있는 편이었던 여 대표는 여러가지 사업을 했다.

첫 사업은 CD-롬에 메시지를 넣는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CD를 컴퓨터에 넣고 실행하면 미리 저장된 메시지를 띄워주는 것이었다. 사업은 시원치 않았고 바로 접었다. 두번째 사업은 웨딩촬영 사진과 영상을 CD에 넣어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개발해놓고도 여 대표는 누구에게 어떻게 팔아야하는지 전혀 몰랐다. 여 대표은 전형적인 개발자, 딱 거기까지였다.

당시 웨딩업체들은 100장에 80만원 정도를 받고 웨딩사진을 팔고 있었는데 여 대표가 개발한 CD에 사진을 담으면 단돈 5만원이면 해결이 됐다. 웨딩업체들은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에게 80만원에 팔수 있는 상품을 굳이 5만원으로 낮출 이유가 없었다. 웨딩산업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 역시 여대표는 몰랐다.

여 대표는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웨딩업체 대표들을 만나서 영업을 해야하는데, 그걸 잘 못했다"고 말했다. 여 대표는 "상대가 내 제품의 일부를 고쳐달라고 하면 고쳐주면 되는데, 난 지금 상태가 더 좋다고 상대를 설득하려고 했다"고 돌아봤다.

차라리 웨딩업체를 하나 차려서 80만원에 팔리는 결혼사진을 20만원쯤에 팔았으면 '대박'이 났지 않았겠냐고 묻자 여 대표는 "그런 생각을 미쳐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개념은 여전히 개발자 마인드뿐이었다"고 말했다. 여 대표는 "개발자의 가장 큰 문제는 제품을 잘 만들면 팔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는 것"라고 토로했다. 잠시 숨을 고른 여 대표는 "직접 차려서 저가로 공략했으면 영향이 있었을 수 있겠다"며 웃었다.

다음 사업은 꽃배달업이었다. 꽃을 배달하고 주문내역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사업은 3년차에 들어 꽤 잘 운영됐다. 3년째부터 연 3억원 정도 매출을 올렸고, 최대 10여명의 직원을 고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여 대표는 직원들과 소통하지 못했다. 9개를 팔고, 1개를 못 팔아온 직원에겐 "왜 1개를 못 팔았냐"고 역정을 냈다. 직원들에게 적당한 권한을 주지도 않았고, 모든 결정은 자신이 내렸다. 모든 업무도 여 대표 자신이 쥐고 있었다. 직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특정 직원에게 고함을 치며 혼을 냈고, 개발자에겐 "나는 잠을 자지 않고서라도 이걸 만들어냈는데 넌 왜 못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 여 대표는 '나쁜 사장'에 가까웠다.

대부분 직원이 두 달을 못버티고 나갔다. 어떤 직원은 출근한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다. 일하던 다른 직원이 "여기 사장 이상하니 나오지말라"고 귀뜸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었다. 어떤 직원은 "두번 다시 보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회사를 뛰쳐나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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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직원들의 퇴사는 반복됐고, 거래처는 유지되지 못했다. 당시 여 대표는 직원들이 나쁘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험한 말을 하고 퇴사하는 직원들을 보면 기분이 나쁘기만 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에게 부채승계를 조건으로 회사를 넘기기 직전 책속에서 답을 찾았다. 내가 문제였다는 것을. 이후 회사 문을 닫기까지 매일 아침 김밥 사들고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대화하며 소통해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직원들은 '회사기 어려워지니 우리한테 조금 잘해주려고 하나보다'라고 수근거렸다. 이 때에 대해 여 대표는 "내가 사장이니까 내가 시키는대로 해라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직원들이 안 좋아하는 행동은 다 했다고 보면 된다"고 멋쩍게 웃었다.

초보창업자에게 조언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 대표는 "내가 가장 안 바뀌었던 부분이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많은 나이가 좀 있는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 대표는 "그 경험이 장점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벽이 되더라.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일해라"고 조언했다.

현재 여 대표는 어항과 화분을 합친 아이템을 국내외 시장에서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2015년부터 개발해 2017년에 처음 시장에 내놨고, 조금씩 보완해가며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17년 2400만원이었던 매출이 2018년에는 10개 나라에 수출하며 5000만원까지 늘었다. 지난해는 약 2억원의 매출이 나왔다.

여기까지 여 대표는 아내와 처제, 고용한 개발자 1명으로 일해왔다. 올해 여 대표의 목표는 매출 8억원이다. 그리고 늘어난 매출만큼 직원도 늘릴 계획이다. 혹시 직원들을 다시 뽑으면 이번에는 잘해주겠냐고 묻자 여 대표는 "가장 먼저 회사의 꿈과 성과, 돈을 직원과 나누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 대표는 잠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때문에 망했는데 또 그라면 안되죠."

※'실패를 듣다'=성공에 이르기까지 힘들었던 수많은 실패의 고백을 털어놓는 것이다. 그냥 실패가 아니라 값진 실패, 유의미한 실패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pyo0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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