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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듣다]아내도 말리던 제품...'고집'을 버려야 했다

등록 2020.04.2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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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거치용 네비게이션 연동 소프트웨어 개발

가격경쟁력-장착 불편 등의 이유로 시장에서 외면

"기술 중심의 사고가 고집을 부리게 했다"

[서울=뉴시스] 심유진(52) 파인데크 대표는 22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까지 이게 얼마나 팔리겠냐는 제품에 대해 고집을 부렸다"고 토로했다. (제공=파인데크)

[서울=뉴시스] 심유진(52) 파인데크 대표는 22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까지 이게 얼마나 팔리겠냐는 제품에 대해 고집을 부렸다"고 토로했다. (제공=파인데크)

[서울=뉴시스] 표주연 기자 = "아내까지 이게 얼마나 팔리겠느냐는 제품에 대해 고집을 부렸다. '이런 혁신적인 아이템이 시장에서 안 먹힌다는 게 말이 안 돼'라고 나 혼자 생각했던 것 같다."

심유진(52) 대표는 자동차 부문 1차 협력사 연구소에서 오래 일한 경험을 살려 회사를 차렸다. 자동차 네비게이션(네비) 관련 사업이었다.

2010년 당시 대부분 자동차에는 거치용 네비게이션이 사용됐다. '순정네비'의 가격이 200만원으로 꽤 고가였기 때문에 대부분 사용자가 80만~100만원 안팎의 거치용 네비를 사용한 것이다. 심 대표는 거치용 네비를 차 오디오 자리에 끼워넣고, 이 거치용 네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심 대표는 2011년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해 2012년 출시했다. 인건비와 자재비 등으로 1억~2억원이 들어갔다. 이 제품의 가격은 당시 네비 가격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11만원 정도였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첫 반응은 괜찮았다. 온라인카페에 이 제품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그날만 300여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첫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애초에 이 제품을 설계할 때 어떻게 팔아야 할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크게 고민하지 않은 탓이 컷다. 일단 이 제품은 고객이 스스로 차량 오디오 부분을 뜯어서 거치용 네비를 장착하고, 연동하는 것까지 하도록 설계됐다. 설치 방법은 인터넷카페 등을 통해 설명해 줬고, 오작동에 대한 부분은 인터넷을 통해 질문을 올리면 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설치 방법을 아무리 상세히 설명해준다고 해도, 직접 차량 오디오 부분을 뜯어내고 네비를 장착할 차량 소비자는 많지 않았다. 직접 장착하는 게 어려운 사람들은 서비스점을 찾으면 됐지만, 서비스요금이 10만~20만원이 되니 가격이 확 높아졌다. 이에 대해 심 대표는 "개발하면서는 이런 문제를 못 느꼈다"며 "기술중심의 사고였다. '이런 혁신적인 아이템이 시장에서 안 먹힌다는게 말이 안 돼'라고 나 혼자 생각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리점 등을 통한 판매를 구상했어야 했다. 애초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방식이 아닌, 자동차서비스 대리점에 납품하고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면서 장착 서비스도 해주는 B2B방식을 택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대표는 '유통구조가 복잡한 것은 싫다'는 자기만의 고집을 부렸다. 이에 대해 심 대표는 "B2B를 찾고, 기존에 구축된 유통구조에 순응을 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유통단계가 더 생길수록 들어가는 비용에 인색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네(서비스대리점)가 판매하던 제품보다 내 제품을 가져다 놓게 했어야 했는데. 유통업체를 경쟁관계로만 생각했다. 그들과 협업하지 않았다. 큰 테두리 안에서 협업을 하고, 그 안에서 복잡하게 경쟁도 있는 것으로 이해했어야 했는데 인식의 폭이 좁았다."

결정타는 유통업체와의 계약이 잘못되면서부터다. 심 대표는 A유통업체와 독점 판매계약을 맺었다. 심 대표가 이 제품을 납품하면 A유통업체가 판매를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업체는 물량만 받고 '나 몰라라'했다. A유통업체는 첫 발주로 500개를 받아간 뒤, 단 한개도 판매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업체는 심 대표의 상품과 유사한 제품을 따로 개발하고 있었다. 애초에 심 대표 제품의 판매에는 관심이 없었다. 심 대표는 "회사가 체력적으로 힘이 드니, 배고프고 힘드니까 독점계약을 하자고 하니 끌려갔다"고 회상했다. 다만 심 대표는 "내가 겪는 이 일의 구조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며 "이 문제는 (A유통업체)사업자의 양심과 마인드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심유진(52) 파인데크 대표는 22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업 실패 후 재창업을 통해 전기차 완속 충전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제공=파인데크)

[서울=뉴시스]심유진(52) 파인데크 대표는 22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업 실패 후 재창업을 통해 전기차 완속 충전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제공=파인데크)

이후 시장이 변화하면서 심 대표의 제품은 자연스럽게 퇴출 수순을 밟았다. 창업 후 몇년이 지나자 새로운 차종이 나왔고, 대부분 네비가 장착됐다. ‘순정네비’의 가격도 100만원대로 낮아졌다. 그러다보니 심 대표가 만든 거치용 네비 연동 프로그램은 가치가 떨어졌다. 새로운 차를 구매한 입장에서는 거치형 네비를 구매하고, 심 대표의 연동 프로그램도 구매해야 하는데다, 스스로 장착까지 해야 했다. 번거로운데다가 가격경쟁력이 없어진 이 제품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심 대표는 2013년 3월께 1억~2억의 빚을 진 상태에서 폐업을 결정했다. 새로운 차종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도 문득 거기에 맞는 새 제품을 만들 의욕 자체가 생기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이후 심 대표는 잠시 방황을 했다. 사무실에는 나왔지만 연락이 오는 곳도 연락을 할 곳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잠시 자동차 부품업체에 들어갔다가, 3년만인 2017년 재창업을 결정했다.

이번에 개발한 제품은 전기자동차용 완속충전기 모듈이었다. 기존 전기차 충전기가 대단히 크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제품 구성을 아주 단순화하고, 소형화하는데 주력한 제품이다. 집이나 기둥에 손쉽게 설치하거나 들고 다닐 수 있는 정도로 소형화했다. 충전성능은 6~7키로와트(㎾)로 기존의 전기충전기와 동일한 수준이다. 이 제품은 지난 3월 출시해 100개 정도가 팔린 상태다. 전기차 충전서비스 사업자를 통해 판로를 넓히고 있다.
 
초보창업자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곧바로 심 대표는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다들 실패하는 이유는 자기 생각, 고집에 따라 착각을 하기 때문"이라며 "많은 사업자들이 다른 사람 이야기를 안 듣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끌고 가고 있는데, 세상은 자기 뜻대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남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뭐가 문제인지 고민할 줄 알아야한다"고 덧붙였다.

심 대표에게 네비를 판매했을 때 주변에서 혹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심 대표는 "주변에서 안될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했고, 아내까지 몇개나 팔겠냐고 할 정도였다"며 웃었다.

이어 심 대표는 "대부분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옳게하고 있는지 모르고, 같이 고민해줄 사람이 없다"며 "정부 차원의 멘토링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깊이있는 조언이 불가능한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심 대표는 "스타트업이 의사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표준화된 발주금액이나 계약서 등이 플랫폼화 되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실패를 듣다'= 수많은 실패의 고백을 담는다. 그냥 실패가 아니라 값진 실패, 유의미한 실패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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