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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위장전입 부추기는 청약제도…'못 고치나 안 고치나'

등록 2020.05.18 15: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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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위장전입 부추기는 청약제도…'못 고치나 안 고치나'

[서울=뉴시스] 강세훈 기자 = 청약 가점제 만점은 84점이다. 부양가족 수(최고 35점)와 무주택 기간(최고 32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최고 17점)을 합산해 점수를 매긴다.

가장 배점이 큰 항목은 부양가족 수다. 나머지 두 개 항목에서 만점(49점)을 받더라도 자녀가 한 명 있는 3인 가족이라면 64점으로 요즘 같은 청약 광풍 시기에 서울 인기 단지 당첨이 쉽지 않다. 

지난 4월 분양했던 '르엘 신반포' 전용면적 84㎡ 커트라인은 67점이었고, '호반써밋목동' 전용면적 59㎡는 69점이었다.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 항목은 불법이나 편법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반면 부양가족 수 항목은 청약가점을 올리기 위한 불법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직계존속은 3년 이상 동일 등본상에 있으면 가점을 인정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이에 실제로는 같이 살지 않는 부모나 조부모를 위장전입 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위장전입을 하다가 적발되면 당첨 취소는 물론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처벌 수준이 무거운 편이다.

그럼에도 위장전입이 쉽게 악용되는 이유는 범죄라는 인식이 낮은 데다 적발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분양업계의 한 전문가는 "청약 가점을 높이려고 위장전입을 하는 사람이 많다"며 "정직한 사람만 바보가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고 등을 통한 불법 의심 사례 단속으로 위장전입을 적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청약시장이 과열될 때 집중단속을 벌이는 게 지금까지의 패턴이다.

의심 사례에 대해서는 휴대전화 위치 정보나 신용카드 사용 기록으로 생활 근거지를 비교해 위장전입 여부를 가릴 수 있지만 상당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불법 행위 자체를 사전에 거를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말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사전에 다 걸러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의심이 되는 사례에 대해 경찰과 함께 조사를 한다"고 말했다.
 
부양가족 가점제가 위장전입으로 변질되면 실제로 부모 또는 조부모를 부양하는 사람들이 정작 아파트 당첨의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이는 청약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과 정책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처벌을 강화하거나 가족부양 가점을 아예 낮춰야 한다는 등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지만 정부는 청약제도 개선을 검토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대책은 수년 째 감감무소식이다.

정부의 어설픈 제도와 느슨한 단속이 범법자를 양산하는 꼴이다. 그래서인지 청약시장에는 임신진단서 위조, 위장 결혼, 허위 출생신고, 통장 불법거래 등 다양한 속임수로 당첨을 노리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장에 만연한 불법행위도 막지 못하면서 어떻게 집값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하루속히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투기 세력은 바늘구멍 만큼의 허점만 보여도 파고들어오기 때문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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