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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기자의 질문과 정치인의 대답…이해찬 대표의 경우

등록 2020.07.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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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기자의 질문과 정치인의 대답…이해찬 대표의 경우


[서울=뉴시스] 문광호 기자 = 지난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식장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기하고 있던 많은 취재진 중에 현장의 질서를 감안해 질문을 할 풀기자 두 명이 이미 선정돼 있었고, 그 중 한 명이었던 기자는 이 대표가 발언을 마친 뒤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혹시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었다. 이해찬 대표는 대답 대신 다짜고짜 노한 목소리로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라고 규정했다. 기자를 노려보던 그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쁜 (놈) 자식 같으니라고"라고 내뱉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기자에게 적의 어린 눈빛을 보냈다.

국회 기자로 일하면서 많은 정치인을 봤다. 시시각각 변하는 국회 상황 속에서 현안에 관해 던져야 할 질문은 늘 흘러넘친다. 그 때문에 이른바 '백브리핑(백블)'이라는 문화가 활성화돼있는데, 공식적인 회의나 행사가 끝나면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다. 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정국과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이 백블에서 속보가 나가기도 하고 그날 정치 기사의 주요 소재 및 주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당대표나 원내대표 등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정치인에게는 종일 여러 기자가 달라붙어 질문을 던진다. 때론 당혹스럽거나 다소 공격적인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렇기에 국회는 그 어떤 권력기관보다 투명하게 일정이 진행되는 편이고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국회 기자로서 갖고 있었다.

국회의 이러한 문화 덕분인지 내 기억 속에 아예 답변을 거부하거나 질문 자체를 악의로 규정해 적대적으로 대하는 의원은 거의 겪어보지 못했다. 언론도 성향이나 진영에 따라 양태가 제각각이지만, 적어도 중립적 사실 보도를 중시하는 뉴시스에 대해 그렇게 반응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이해찬 대표는 그 드문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처음 국회에서 백블을 기다렸다가 질문을 던지러 다가섰을 때 당시 수석 대변인이 날 막아섰다.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이 대표는 기자를 팔로 밀어냈다. 이 대표 측 관계자의 "걸으면서 인터뷰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나중에 다른 기자들을 통해 들으니 이는 이 대표의 일관된 태도였다.

장례식장에서 이 대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질문을 던졌던 것도 그러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가 이동하기 시작하면 아예 문답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물론 박 시장의 비극적 죽음 앞에서, 비통함이 가득한 오랜 동지의 상가에서 그런 질문을 받는 자체가 고통스럽고 불쾌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 역시 애초에 고인을 깎아내리려던 의도가 있었던 건 물론 아니다. 그래서 일부러 '성추행'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고, 이 대표의 개인적인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

민주당 소속 서울시장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극단적 선택을 놓고 그에 관한 애도와 추모와는 별개로, 제기된 의혹에 관한 진상조사 등 당 차원의 조치 여부를 시민들을 대변해 묻고 싶었을 뿐이다. 안희정 충남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등 당 소속 인사들이 우리 사회에 잇따라 큰 충격과 파문을 일으킨 상황이기에 당대표에게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건 언론으로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설령 기자의 질문이 불편하거나 부적절하다고 본인이 판단했다면 답변을 피하거나 침묵으로 대신하는 게 상식적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당대표로 빈소를 찾았음에도 "나와 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40년을 함께해온 오랜 친구"라며 개인적인 소회만을 토로했다. '신상 털기'를 당할 정도로 공격 받는 박 시장 고소인에 대한 언급은 없이 "예의가 아니다"라는 호통과 격앙된 감정만을 표출했다. 공당 대표에게 던진 질문이 친구 이해찬의 답으로 돌아온 셈이다. 거기에 막판엔 욕설까지 보탰다. 그렇다면 고소인과 언론과 많은 국민들에 대한 민주당 대표의 예의는 어디로 간 것인가.

당시에는 이 대표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기자도 당황해 입장을 밝힐 겨를도 없이 현장 상황이 지나갔다. 개인적으로 사과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미 수석대변인이 정중한 사과 의사를 거듭 전해왔다.

다만 바라는 점은 원래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듣는 것이다. 고인에 대한 의혹이 확인도 되지 않은 채 일파만파 퍼지는 상황에서 만약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경위를 당 차원에서 책임 있게 규명하는 것이 오히려 고인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 시장이 지난 1994년 10월11일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호를 맡아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성희롱을 당한 대부분 여성이 대인 혐오 증세를 보이는 등의 질환으로까지 발전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든 형편"이라고 공감했던 것처럼, 혹여 숨죽이고 지낼 피해자가 더이상 고통을 받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일이 또한 고인의 뜻을 받드는 길일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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