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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잘알]표류하는 팀의 소방수, 감독대행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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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9-14 09:16:17
프로야구 매해 1~2명은 감독대행
1983년 삼미, 감독 구속 뒤 3명 연달아 대행체제 '진기록'
축구계에도 만연, 히딩크 감독 첼시 대행으로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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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원호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사진= 한화 제공)
[서울=뉴시스] 권혁진 기자 = 감독대행은 운동 경기에서 감독이 경질되거나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그의 임무를 대신하게 된다. 한창 경쟁이 진행 중일 때 수장을 바꾸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성적에 따라 감독의 난자리가 쉽게 발생하는 프로 스포츠에서는 감독대행을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프로야구에서는 올해에도 두 명의 감독대행(SK 와이번스 박경완·한화 이글스 최원호)이 팀을 이끌고 있다.

▲프로야구 1호 감독대행은 삼미 이선덕

프로야구는 1982년 3월27일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기억되는 3월27일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의 대결로 힘차게 출발했다.

국민적 기대 속에 발을 뗀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역사적인 1호 감독대행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이선덕 코치다.

3승6패로 6개 구단 중 최하위를 달리던 삼미는 박현식 감독의 보직을 단장을 변경하고 이선덕 코치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이선덕 코치가 이끈 삼미는 그해 15승65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승률 0.188은 역대 프로야구 최저 기록으로 남아있다.

삼미의 야심찬 시도는 엄청난 실패로 이어졌다. 사실 원년의 삼미는 누가 맡아도 별반 다를 바 없었을 정도로 전력이 약했다.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도 프로 원년부터 감독대행을 경험했다. 전반기 1위를 차지한 OB 베어스는 시즌 중인 8월 일본 프로야구계를 둘러보겠다던 김영덕 감독의 일본행을 허락했다.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가능했다. 김영덕 감독이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김성근 감독이 8월5일부터 19일까지 대행으로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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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AP/뉴시스】첼시 임시 사령탑에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난달 27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2015~2016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왓포드와의 경기를 지휘하고 있다.
이후 다시 코치로 돌아간 김성근 감독은 1983년 10월 김영덕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물러난 뒤 정식 감독으로 취임해 5시즌 간 OB와 함께 했다.

프로야구 출범 후 팀 사령탑에게 감독대행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사례는 총 64번. 39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으니 해마다 1.64명꼴의 감독대행이 탄생한 셈이다.

감독대행의 대부분은 전임 감독의 성적 부진으로 탄생했다. 정상과 거리가 꽤 존재하는 팀을 고스란히 이어받았기에 애초에 성적을 내기란 쉽지 않은 구조다. 충격 요법으로 잠시 반짝한 경우는 왕왕 있었지만 엄청난 반등으로 반전을 쓴 사례는 드물다. 

1983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대행으로 시작해 이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강병철 감독처럼 계속 남아 큰 성공을 맛본 인물도 있지만 대다수의 감독대행들은 시즌이 끝나거나 임무가 종료되면 본업으로 돌아가거나 아예 팀을 떠나곤 했다.

지난해 KIA 타이거즈의 후반기를 함께 했던 박흥식 감독대행이 맷 윌리엄스 감독 선임 후 2군 감독으로 복귀한 것과 롯데 자이언츠의 공필성 감독대행이 두산 베어스 2군 코치로 옮긴 것이 가장 가까운 예다.

2001년에는 가슴 아픈 사건으로 불가피하게 감독대행이 생기기도 했다. 롯데를 이끌던 김명성 감독이 7월24일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롯데는 우용득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현역 감독이 시즌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삼미에서는 감독대행이 줄줄이 등장한 적도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진영 감독이 1983년 6월 심판 폭행으로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삼미는 이재환감독대행(1983년6월4일~1983년7월4일)→이선덕 감독대행(1983년7월5일~1983년9월1일)→박현식 감독대행(1983년9월2일~1983년10월25일)을 차례로 내세워 어렵사리 시즌을 마무리했다.

한편 한화 최원호 감독대행은 역대 최다 경기 감독대행을 예약했다. 최원호 감독대행은 7승23패로 부진하던 지난 6월8일 한용덕 전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계획대로 최 감독대행이 시즌 끝까지 팀을 끌어가면 총 114경기를 치르게 된다. 지금까지 한 시즌 110경기 이상 소화한 감독대행은 한 명도 없다.

▲'명장' 히딩크도 소방수로 긴급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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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29일 오후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헌액식에서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헌액패를 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17.11.29. kkssmm99@newsis.com
감독대행 카드를 꺼내드는 것은 축구계도 예외는 아니다.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차범근 감독을 대회 중 경질하고 김평식 감독대행에게 마지막 벨기에전을 맡겼다.

아시아 예선에서 승승장구하며 1승의 염원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됐던 차범근 감독은 대회를 끝내지도 못한 채 쓸쓸히 귀국길에 올랐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웅이자 세계적인 명장인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도 대행이라는 칭호가 따라붙은 적이 있다. 히딩크 감독의 경우 누군가의 빈 자리를 급하게 채웠다긴 보단 '스페셜 리스트'에 가깝다.

2009년 루이스 스콜라리 감독과 작별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는 히딩크 감독을 호출했다. 러시아 출신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히딩크 감독의 두터운 친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역대급 오심에 아쉽게 탈락했지만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우승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감독대행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이는 이탈리아 출신의 로베르토 디 마테오다. 히딩크 감독과 마찬가지로 첼시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디 마테오 감독대행은 2012년 3월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의 경질로 첼시 사령탑에 올랐다. 표류하던 첼시는 디 마테오 감독대행 부임 후 180도 달라졌다.

이미 EPL 우승은 물 건너 간 상태였지만 토너먼트인 챔피언스리그는 달랐다. 첼시는 디 마테오 감독대행의 지도 아래 나폴리, 벤피카,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을 차례로 꺾고 창단 첫 유럽 정벌에 성공했다.

조세 무리뉴 감독도, 히딩크 감독도 하지 못한 일은 큰 기대 없이 출항한 디 마테오 감독대행이 해냈다. '꿈의 무대'로 불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감독대행이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디 마테오 감독대행은 FA컵까지 차지하면서 '더블'로 시즌을 마쳤다. 곧장 정식 감독이라는 선물을 받았지만 감독 디 마테오와 첼시의 동행은 1년도 못 가 성적 부진으로 인한 새드 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공감언론 뉴시스 hjkw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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