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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웃돈에 제비뽑기 '전세대란', 보고만 있을 건가

등록 2020.10.16 15: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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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웃돈에 제비뽑기 '전세대란', 보고만 있을 건가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세입자가 완전 '갑'입니다. 집주인도 어쩔 도리가 없어요. 그렇다보니 제가 중간에서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또 새롭게 세입자가 될 사람들에겐 지금이 지옥이에요.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어요. 부동산에 오는 사람들 열이면 아홉이 한숨을 쉬며 나갑니다. 안타깝죠."

서울 성동구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공인중개사 A씨의 말이다. 그는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이 주어지면서 매도 계획이 어그러진 집주인이 있는가 하면, 집주인의 실거주 통보에 벌써부터 부동산에 출근 도장을 찍는 세입자도 있다고 했다. 매물이 없기 때문이다.

전세시장의 불안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나의 사진이 떠돌았다. 복도식 아파트에 성인 십 수 명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기다리던 것은 전셋집이었다. 세입자가 허락한 시간에 맞춰 9팀이 모였다는 것이다. 이후 이들 중 계약하겠다고 밝힌 5팀을 대상으로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하고, 제비뽑기를 통해 최종 계약자가 선정됐다고 한다. 약 4400세대 규모의 단지에 전세물건이 손에 꼽히면서 일어난 진풍경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이사를 가는 대신 위로금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위로금의 시세도 정해졌는데, 보통 500만~10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세입자들 사이에선 '곱게' 나가는 대신 즉,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집주인이 위로금을 줘야 한다는 논리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개정 임대차법 시행 이후 사람에게 아주 기본적인 공간인 집을 두고 집주인과 세입자, 세입자와 세입자 사이에 불필요한 피로가 쌓이고 있다.

개정 임대차법이 세입자의 권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법이 만들어질 때 시장과의 충분한 교감이 없었다. 집주인들은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반발했고, 많은 전문가들이 시행 후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했지만 정부는 귀를 닫았다.

그 결과 전세가격은 폭등했고, 매물은 자취를 감췄다. 3기 신도시 등 신규공급을 앞두고 무주택자격을 유지해야 하는 수요는 늘어나면서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냐는 말이 나온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부장관도 "신규 전세를 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전세시장이 불안한 것과 관련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말뿐이다. 인정의 말 뒤에 명확하고 구체적인 해결방법이 없다. 다수는 이를 책임감 없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그나마 정부는 홍 부총리가 세입자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자신의 집을 팔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자 관련 법안을 손보기로 했다. 전세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을 매매할 때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표기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같은 사후약방문 식의 정책은 사회적 비용만 낭비할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시장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정부가 시장 참여자들과 싸워서는 어떠한 선한 결과도 얻을 수 없다.

결국 지금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성동구 공인중개사 A씨와 홍 부총리가 말했던 것처럼 새롭게 전셋집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입자를 위한 정책이 결국 전세시장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갔다. 정부가 눈과 귀를 열고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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