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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모니시스트 박종성 "장난감 같은 악기지만, 조수미와 전국 투어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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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10-22 16:54:12  |  수정 2020-11-03 09:13:29
13살때 시작 고1 때 일본 대회서 금상
'하모니카 올림픽' 독일 대회서 수상 쾌거
23일 롯데콘서트홀 '시네콘서트'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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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이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0.22.

 yes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하모니카, 흔히 누구나 불 수 있어 악기 같지 않은 악기로 인식된다. 그런데 20여년간 하모니카를 불어온 전문 연주자가 있다. '하모니시스트'로 불린다.

 세계 하모니카 연주대회를 휩쓸며 하모니카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인물로 유명하다.

23일 오전 11시30분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여는 하모니시트스 박종성(35)을 만나 하모니카와 인연을 들어봤다.
 
 하모니카를 처음 잡은 건 13살 때 백화점 문화센터에서였다. 피아노학원을 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5살 때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접했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 했던 때였다.

"10살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외할머니가 하모니카를 보내주셨어요. 엄청 실망해서 서랍 속에 넣어놓고 신경도 안 썼죠. 그 이후에 6학년 때 집 근처에 백화점이 생겼는데 문화 강좌로 하모니카가 있더라구요. 한 번 들어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그렇게 저의 하모니카 인생이 시작됐죠."

 스승 최광규를 만나 하모니카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조금만 열심히 해 가도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다른 친구들 몰래 간식도 사주시고 악보도 따로 더 챙겨줬죠. 그러다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됐고 다른 친구들보다 진도도 빨리 나가게 됐어요."

스승은 박종성이 하모니카에 흥미를 갖고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뒷받침했다. 또래 친구들을 모아 '하모니키즈'라는 앙상블(팀)을 만들어 이곳저곳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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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이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0.22. yesphoto@newsis.com
하지만 중학교때 전남 광양으로 이사를 가면서 초등학교때 발휘했던 '하모니키즈'는 해체됐고, 스승과 이별에 하모니카에 대한 그의 흥미도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공백기를 가지다 고등학교때 인연이 이어졌다.

"고1 때 2002년 일본에서 아시아-태평양 하모니카 대회가 열렸어요. 선생님이 그때 직접 집으로 찾아와서 참가비와 경비를 모두 지원해줄테니 대회에 나가보라고 하셨어요. 얼떨결에 대회에 나가게 됐죠."

2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청소년 트레몰로(하모니카의 일종)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하모니카 솔로리스트로서 최초의 국제대회 수상자가 됐다. 그가 하모니카를 전공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본 공연 전에 개막식 때 이와사키라는 하모니카 대가가 연주를 선보였어요. 거동이 불편해서 부축을 받을 정도의 고령에 호홉도 버거우셨는데, 그 연주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이었어요.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때 이 좋은 감정을 무대에 서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하모니카 불모지인 한국에서 하모니시스트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하모니카 연주자를 받아주는 대학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우회로를 타야만 했다. 작곡과를 목표로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부터 작곡 공부에 매진한다.

"그렇게 작곡과를 준비했죠. 근데 수능을 보고 우연히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과의 입시 요강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근데 마침 주요 악기 외에도 나머지 '관현악 파트'가 있는 거예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고 이틀 뒤 시험을 쳐도 된다는 소식을 들었죠."

하지만 그해 그는 아쉽게 예비번호 1번을 받고 해당 학과에 탈락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해 최초의 하모니카 전공 학생으로 당당하게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후 총장상을 수상하며 예술대 전체 수석으로 졸업했다.

대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하모니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직접 앙상블을 꾸리고 팀원을 모아야 했죠. 그러면서 부딪치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많은 점들을 배웠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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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이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0.22. yesphoto@newsis.com

2008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하모니카 대회에서 총 3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3관왕(성인독주부문, 2중주, 앙상블)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하모니카의 올림픽’이라 불리며 4년마다 독일에서 개최되는 세계 하모니카대회에서 자작곡으로 한국인 최초 트레몰로 솔로 부문 1위, 재즈 크로매틱 부문에서도 2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대학 졸업 후 지휘로도 영역을 넓혀갔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과정을 밟으며 최희준 교수를 사사했다. 

그는 첫번째 앨범 '딤플'과 트레몰로 하모니카 스페셜 앨범 '런 어게인' 발표 후 2012년 예술의전당 IBK 체임버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가졌다. 폭발적인 반응에 KT&G 상상마당에서 앵콜공연까지 열어야 했다.

성악가 조수미를 만나게 된 건 2015년이다. 

"조수미 선생님 음반에 참여한 하모니시스트가 투어를 해야 하는데 서울 공연 외에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대타로 들어가게 됐는데 선생님이 좋게 봐주셨고 그렇게 투어에 합류하게 됐죠. 선생님께서 의상을 갈아입거나 하는 쉬는 시간에 하모니카 솔로나 듀오 연주를 했어요. 또 하모니카가 없는 곡인데 편곡을 통해 제가 들어갈 수 있게도 배려해 주셨죠."

그는 조수미에 대해 "그 전까지는 영상을 통해 노래하는 것만 봤지 무대 뒤의 모습은 전혀 몰랐다. 실제의 그는 정말 당당하고 자신의 음악성은 감추지 않지만 정말로 겸손했다. 무엇보다도 다른 연주자들을 정말 많이 배려한다. 그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저에게도 꿈과 희망, 용기를 주는 응원을 정말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하모니카 공연은 여전히 편견이 존재한다. 그도 잘 안다. 그래서 이 말을 전했다.

"'장난감 같다', '마이너 악기다', '서민 악기' 등 여러 별칭이 따라 붙죠. 하지만 저는 지금 이렇게 하모니카로 무대 중심에서 주인공이 됐잖아요. 하모니카가 가진 잠재력을 직접 들려드리며 많은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하모니카라는 악기가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시며 꿈을 꾸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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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이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0.22. yesphoto@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nam_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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