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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운동 거목' 강신석 목사 5·18민주묘지 안장

등록 2021.02.08 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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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위해 헌신한 시대의 등불, 고인 뜻 잇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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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고(故) 강신석 목사의 유가족이 8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2묘역에서 봉분에 앞서 흙을 유골함 위에 뿌리고 있다. 2021.02.08.hyein0342@newsis.com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목사님의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은 잊히지 않을 등불이 됐습니다. 편히 쉬소서."

지난 5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민족·민주운동의 거목 고(故) 강신석 목사가 마지막 길을 떠났다.

고 강신석 목사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국가보훈처와 함께 8일 광주 북구 운정동 5·18 국립 민주묘지에서 안장식을 거행했다.

강 목사는 제2묘역 1-113번에 안장됐다. 안장식은 안장(고인에 대한 경례·하관·허토·묵념), 조사(弔詞·죽음을 슬퍼하며 표현하는 글이나 말), 하관 예배 순으로 진행됐다.

유가족의 허토 전후 일부 참석자들은 "목사님 고맙고, 죄송합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조사를 통해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큰 산이 우리 곁을 떠났다. 이 땅의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해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뜨거운 희생과 헌신은 온 국민의 가슴에 잊히지 않을 등불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1980년 5월 신군부의 참혹했던 군홧발도 민주주의를 향한 고인의 염원을 꺾지 못했다. 고인은 5·18특별법 제정을 이끌어 신군부 세력을 법정에 세우는 등 민주화운동에 큰 업적을 남겼다. 사회·교육 운동에도 헌신했다. 고인의 큰 뜻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그 걸음을 따라 시대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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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고(故) 강신석 목사의 안장식이 8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2묘역에서 열리고 있다. 2021.02.08.hyein0342@newsis.com

강 목사는 지난 5일 오전 10시께 별세했다. 고인은 민주화운동의 푯대를 세운 목회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 목사는 1976년 광주 양림교회에서 열린 노회에서 유신 반대 성명서 낭독을 주도, 동료 4명과 함께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돼 옥살이를 했다.

또 1980년 5월 17일 예비 검속 수배 명단에 포함됐으나 피신, 5·18 항쟁 초기 시민군들과 수일 간 함께 생활했다.

5·18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선교사들의 도움을 얻어 주한 독일대사 등을 상대로 광주의 진실을 설명했다.

1984년 5월에는 직접 독일을 방문, 5·18항쟁의 진상을 알리기도 했다. 1988년 5·18 청문회, 5·18기념일 지정, 망월동 국립묘지 지정 등 과정에서도 공헌했다.

이후 강 목사는 5·18 진실 규명에 매진,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만 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 특별법을 통해 헌정을 유린한 신군부 핵심 인물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재판정에 섰다.

소외된 약자들을 보듬었으며 통일·교육민주화·인권 운동에도 앞장섰다.

목사는 1980년 12월 30일부터 '고난 당한 자와 함께 드리는 예배'를 진행했다. 수감 중인 양심수와 미전향 장기수들에게 의류를 전하는 등 옥바라지도 했다.

1982년 1월 광주 YMCA 중등교사회를 만들어 교육민주화 운동을 벌였고, 해직 교사 뒷바라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탄생 및 합법화에도 적극 나섰다.

강 목사는 5·18기념재단 이사장, 민주개혁 국민연합 전국본부 대표, 우리민족 서로돕기 광주·전남 상임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yein034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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