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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희준 극작가 "사라진 윤심덕, 어디선가 자유롭게 살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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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3-05 15:24:58
대학로 화제작 연극 '관부역락선' 작가
주요 모티브는 '철갑'... 5월9일까지 자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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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관부연락선'. 2021.03.05. (사진 = 아떼오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926년 8월4일 새벽 4시,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 일본 시모노세키를 출발, 부산으로 향하던 관부연락선에서 양장을 한 여자와 중년의 신사가 갑판에서 서로 껴안고 바다로 몸을 던진다. 두 사람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신극운동을 하던 극작가 김우진으로 밝혀졌다.

연극 '관부연락선'은 이 관부연락선을 배경으로, 윤심덕이 살아있다는 상상에서 시작된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배에 숨어 지내는 '홍석주'가 바다에 뛰어든 '윤심덕'을 구하며 두 여성은 인연을 맺게 된다. 두 여성은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던 서로의 모습에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눈다.

실제 윤심덕과 김우진이 사라진 후 여러 가지 풍문이 떠돌았다. 두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악기상을 운영한다는 설이 퍼지는 등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관부연락선'의 이희준 극작가는 5일 뉴시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딱히 그 '설'을 미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윤심덕이 그곳에서 드디어 참으로 '자유롭게 살았다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조선 최초 소프라노', '악단의 여왕' 같은 화려한 별칭들이 윤심덕에게 과연 다정했을까.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윤심덕의 상황들은 숨이 턱턱 막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이번 연극의 주요한 모티브로 '철갑'을 설정했다. "가장 불안하고 불안정하고 취약해진 상태에서 우리가 절박하게 선택하는 것들 중 하나가, 철갑을 두르는 일인 것 같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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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관부연락선'. 2021.03.05. (사진 = 아떼오드 제공) photo@newsis.com
그 철갑은 상징적이다. "철갑 속으로 나를 단단히 숨겨 보호하거나, 철갑을 두른 상태로 자포자기해 돌진하거나... 둘 다 거대한 고통이죠. 모든 걸 차단해버리면 상처 입는 것은 막아주지만, 동시에 다른 많은 것들도 같이 포기해야 하니까, 각자의 어려운 선택이죠. '관부연락선'은 철갑을 두른 두 사람이 만나, 밤새 철갑이 한 조각씩 계속 툭툭 떨어져 내리는 이야기인 것 같네요. 숨어버리려고 했던 석주와 자포자기하여 돌진하던 심덕"이라고 부연했다.

'관부연락선'은 이 작가와 이기쁨 연출을 비롯 최근 여성서사의 중심이 된 창작진·배우의 합류로 기대를 모았다. 지난 1일부터 오는 7일까지 프리뷰 공연 회차의 티켓이 모두 팔리는 등 대학로 화제작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16년 짧게 선보였고 이번에 대본 빼고 대부분을 바꿨다. 극 속에 가상의 인물 홍석주를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형상화된 인물일까.

이 작가는 "이 끝과 저 끝에 있는 두 사람이 만나서 하룻밤 사이에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다. 이 끝과 저 끝은, 두 사람의 상황이 다른 정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두 사람의 마음이 굉장히 멀리 있다는 걸 상징한다.

"서로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다투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 두 사람이 극이 끝날 무렵 최대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하룻밤이 지나고 두 사람이 서 있는 자리는 눈부셔요. 그 짧은 눈부심 직후엔 당연히, 어쩌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혹독하고 낯선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길에 들어설 수 있는 힘을 불러일으킨 그 만남이, 평생 큰 힘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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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연극 '관부연락선' 출연진(사진=(왼쪽부터) 김려원, 황승언, 혜빈, 제이민, 김히어라, 김주연, 이한익, 최진혁(제공=글림,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엠엘디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더블케이씨어터필름, 에이무브, 본인 제공)2021.01.19 photo@newsis.com
이화여대에서 약학을 전공한 이 작가는 뒤늦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들어갔다. 이후 미국 뉴욕대(NYU)에서 뮤지컬 창작을 공부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며, 공연계를 대표하는 극작가가 됐다.

뮤지컬 '첫사랑' '미아 파밀리아' '마마, 돈 크라이' '해적' '최후진술' '알렉산더' '미인' '신흥무관학교' '귀환'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등을 썼다. '파리의 연인' '미녀는 괴로워' '내 마음의 풍금' 등 무비컬(영화 원작의 뮤지컬) 그리고 최근 대학로 화제작인 연극 '제인'까지 쉬지 않고 작품을 내놓았다. 모두 완성도가 보장돼 '믿고 보는 작가'로 통한다. 대학로에 팬덤도 구축 중이다. 

하지만 이 작가는 "다른 직장인들이 일하는 만큼은 일해야지 하는 거 뿐이에요. 이삼일에 한 번씩 바닥을 치는데, 그때마다, '직장인들 출근했다, 너도 일해라' 그렇게 생각해요. 시간과 노동은 한정된 자원이잖아요"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카톡, 소셜미디어, 게임 다 안 하고, TV도 안 봐요. 억지로 안 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잘 안 맞아요. 잘 맞았으면 당연히 했겠죠. 일상생활과 작업 시간 이외에는 책과 공연이 중요하게 돌아가고, 유튜브에서 인터뷰 같은 거 보는 거 좋아해요. 눈 아프니까 대개는 소리만 들어요. 얘기하다보니 뭔가 학구적이고 부지런한 것처럼 들리는데, 그건 전혀 아니고요."

다만, 이 작가가 지키는 작법 공식은 딱 하나 있다. '교과서적으로, 정석대로 쓰자'다. "그게 그나마 버티는 나름의 방법이에요. 작법 이외의 원칙이라면, 시니컬해지지 않기. 세상에서 제일 힘도 안 들고, 심지어 멋져보이기까지 하는 게 시니컬한 거잖아요. 그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긴장한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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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관부연락선'. 2021.01.12. (사진 = 아떼오드 제공) photo@newsis.com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잊지 않도록 프린터에 써붙여 놨어요. 시니컬해지지 않기. 어떤 철학자의 말인데 '어떤 저자에 대해 글을 쓸 때 내가 지니는 이상은, 그에게 슬픔을 야기할 어떤 것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는 인용 문구를 몇 년 전에 읽었어요. 그 생각도 표현도 너무 아름다워서, 위로도 받고, 내가 어떤 글을 쓰든 마음에 새기는 문구예요. '시니컬해지지 말자'의 또다른 면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지난 2019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젊은연극인상에 노미네이트됐던 이기쁨 연출은 뮤지컬 '난설',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 '줄리엣과 줄리엣', '대한민국 난투극' 등으로 주목 받았다. 이 작가와 이 연출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목 받는 베테랑과 신진의 협업으로 눈길을 끌었다. 젊은 연출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라는 우문에 이 작가의 현답이 돌아왔다. "네? 저도 젊은데요."

한편, 이번 '관부연락선'의 캐스팅도 탄탄하다. 밀항을 하기 위해 배에서 숨어 지내는 홍석주는 김려원, 황승언, 모모랜드 혜빈이 번갈아 연기한다. 경성 최고의 소프라노이자 토월회 배우로 로마의 루치아를 꿈꾸는 '윤심덕'은 제이민, 김히어라, 김주연이 나눠  맡았다. 신예 이한익과 최진혁이 '급사소년'을 맡는다. 오는 5월9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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