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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극작가 진주 "자신의 이야기, 끄집어내면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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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4-03 00:00:00
95대 1 경쟁률 뚫고 'DAC 아티스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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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극작가 진주. 2021.04.01.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어안이 벙벙했어요. 지금도 실감이 안 나요."

9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해 두산아트센터 'DAC 아티스트'로 선정된 극작가 진주는 "워낙 기존에 쟁쟁한 아티스트분들이 함께 했던 프로그램잖아요. 무명에 가까운 저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는지 모르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진주는 이미 연극계에서 크게 주목하는 작가다. 동시대 사회문제를 포착해 사회 이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 가능하다.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 사회의 소수자를 다룬 작품들, 지금 세대의 불안을 다룬 작품들이다.

우선 진 작가는 '배소고지 양민학살사건' 속 여성의 삶을 다룬 연극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 대한제국 시기에 세워진 최초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 연극 '정동구락부: 손탁호텔의 사람들' 등 한국 근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끄집어내어 작업해왔다.

또한 다문화 이주여성의 자살사건을 모티프로 한 연극 '아낙(ANAK)', 성소수자의 일상과 이별을 그린 연극 '이사' 등을 통해서는 동시대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풀어냈다.

'두산아트랩 2020' 연극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에선 2030세대의 결혼과 불안을 사실적으로 다뤄 공감을 안겼다. 같은 해 자신이 속한 창작집단 '글과 무대' 멤버들과 함께 한 연극 '궁극의 맛'에선 현재 우리 사회에 스며든 다양한 삶의 맛을 길어올렸다.

진 작가가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누군가 상처 받지 않으면서, 단순 소비되지 않는 것"이다. '아낙'이라는 작품을 썼을 당시, 찾아온 두려움과 고민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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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극작가 진주. 2021.04.01.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다문화 가정의 폭력을 다뤘는데, 이를 왜곡 없이 전달하고 위로를 하기 위해선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자극적으로 나올 수 있는, '시각적 형태'는 자제해요. 폭력만 남아서 정작 하려고 하는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조심스럽거든요."

어릴 때 교회 성극을 하면서 연극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 진 작가는 20대에 고향인 전주에서 극단 생활을 했다. 하지만 갈증이 있었다. 희곡 창작에 대한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어 서울로 올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갔다. 그런데 서울에 친척·친구가 없었던 터라, 초반에 고립감을 느꼈다.

동기들을 만나 숨통이 트였다. 2017년 동기들과 창작집단 '글과 무대'를 만들었다. 김윤영, 최보영, 황정은 등 현재 주목 받는 극작가들이 다수 속해 있다. 소수자·여성의 목소리를 발견과 표현하는 글을 주로 쓰고 있다. 홀로 작업 또는 공동 창작 등을 통해 '따로 또 같이' 연대를 해나가는 중이다. 

"공동 창작은 새로운 관점들이 만나는 의미있는 과정이에요. '나만의 세계'가 아닌 '함께 세계를 만들어가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죠. 혼자선 아등바등하는데, 같이 하면 양보하면서 많이 배우고 더 좋은 걸 발견하게 됩니다."

가치가 발견되기 전 각종 공모전에서 탈락했던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을 낭독하며 알아봐준 배우 백현주·박희은 그리고 연출 박선희 등도 진 작가의 든든한 우군들이다. 

하지만 연대, 협업만으로 힘겨운 연극판을 헤쳐나가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돌발 변수는 타격이 컸다. 진 작가는 그럼에도 연극에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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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극작가 진주. 2021.04.01.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극장은 위협적인 곳이 아니에요. 안전한 만남이 있죠. 지금 많은 공연이 매진되는 걸 보면, 그간 목마름이 있었던 거 같아요.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이 온라인 상영회를 했는데, 평소라면 연극을 보지 못했을 부산 친구들도 봤어요. 그래도 '방법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DAC 아티스트는 공연예술 분야의 만 40세 이하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진 작가는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2022년 9~10월 중 신작을 선보인다.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프로덕션이라, 오롯이 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죠. 평소엔 티켓을 만들고 팔아야하는 등 연극을 올리는 과정이 바쁘거든요. 신작은 지금 관심사인 '우리사회의 불안'을 다루지 않을까 합니다."

진주는 우선 '두산아트랩 공연 2021'의 하나로, 6월 중에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연극 '클래스'를 선보인다. 어느 예술학교의 극작 수업에서 벌어진 중견 극작가와 학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각자의 신념이 부딪히는 갈등 속에서 과연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실제 진 작가는 전북대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글쓰기 수업이 예술가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감각을 유지시켜준다고 했다. "저는 예술가라기보다, 직장인이라는 마음이 커요. 두 일을 같이 하면 균형감이 들죠."

특히 아이들하고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에 대한 믿음'이 회복된다고 했다. "글쓰기에 대한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놓지 않는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누구나 쓸 수 있죠. 숨겨져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요. 근데 그건 사실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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