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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윤호중 원내대표의 부적절한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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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4-26 17:40:20
윤호중, 현충원 사과…형식도 장소도 오답
'무엇'인지 빠져있어…원론적 사과만 거듭
與 '쇄신', 잘못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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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윤해리 기자 = "선열들이시여! 국민들이시여! 피해자님이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2일 국립현충원 참배 후 방명록에 기재한 내용이다.

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윤 비대위원장이 방명록에 "이번 보궐선거의 발생 이유가 됐던 피해자분들을 언급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윤 비대위원장이 방명록을 통해 성추행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전했으나, 진정성에 대한 의문과 논란은 여전히 남아있다. 장소와 내용, 형식적 측면에서 모두 부적절했다.

순국선열과 전직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기 위해 방문한 현충원이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자리로선 다소 생뚱맞다. 더욱이 내용적인 면에서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가 빠졌다.

피해 사실이 밝혀진 이후 여당 인사들이 가해온 일련의 '2차 가해'를 사과하는 것인지, 무공천 당헌을 개정해 후보를 낸 것을 사과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내용이 불분명하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부적절했다. 민주당 회의체 등 공식 석상이 아닌 현충원 방명록을 통해 모호하게 사과한 후 원내대변인이 부연 설명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는 윤 비대위원장의 사과가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에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 변호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즉각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고 그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여당 내부에서도 "충정은 이해하지만, 순국선열을 모신 자리와 부산과 서울의 피해자들에 대한 부분은 분리해서 하는 것이 맞다"(설훈),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과가 진정성 있고 책임 있는 사과"(이수진·서울 동작을)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민주당 지도부가 박원순·오거돈 성추행 피해자들을 향해 사과를 하고 있으나 헛발질만 거듭한 셈이다.

'친(親)서민', '시민단체 운동가' 등 박 전 시장이 진보 진영에 주는 상징성뿐 아니라 여권 인사들과의 개인적 친소관계, 박원순 지지층 눈치 보기로 민주당 지도부의 사과는 원론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전할 기회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지도부는 '피해 호소인',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 등 호칭을 일상적 단어인 '피해자'로 바로 잡는 데에만 일주일이 걸리는 등 번번이 타이밍을 놓쳤다.

지난해 7월10일 이해찬 전 대표는 박 전 시장 빈소 조문 뒤 '고인의 의혹에 대한 당 차원 대응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쁜 자식'이라는 말과 적의 어린 시선으로 답을 대신했다.

같은 달 14일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피해 여성에게 위로를 전한다며 낸 공동 성명서에서 '피해 호소인' 명칭을 썼고, 다음날인 15일 이 전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밝힌 사과문에선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에 대한 언급 없이 '피해 호소인'이라고 명칭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당 대표 후보 시절 '피해 고소인'이라는 명칭을 쓰면서, 민주당이 피해 사실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논란을 샀다.

결국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발생 8일 만에 '피해자'로 호칭을 통일했으나, 4·7 보궐 기간 동안 "박원순, 롤모델이자 동지"(우상호), "박원순이 그렇게 몹쓸 사람인가"(임종석) 등 여권 인사들의 옹호 발언이 이어지며 또다시 2차 가해 논란이 제기됐다.

이때도 민주당 지도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난달 17일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도부에 당헌 개정에 대한 사과와 '피해 호소인' 명칭을 사용한 의원들에 대한 당 차원의 징계를 요구했다.

'피해 호소인 3인방'으로 불린 고민정·남인순·진선미 의원은 박영선 캠프에서 맡고 있던 직을 사퇴했으나, 당 차원의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하루 지나 김태년 전 원내대표가 정책조정회의에서 밝힌 원론적 수준의 사과와 "성 비위에 무관용 원칙으로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발언뿐이었다.

결국 민주당은 4·7 보궐선거에서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박영선 후보가 오세훈 후보에게 모두 뒤지고, 18.32% 압도적 표차로 지는 참패를 기록했다.

이후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보궐에서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성론이 제기됐으나, 강성 지지층의 단체 문자폭탄에 쇄신 논의가 움츠러드는 등 구체적인 실행 논의까진 이어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bright@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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