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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만에 찾은 6·25아버지②]"참전했던 선배군인 명예, 후배가 찾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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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6-23 06:01:00  |  수정 2021-06-23 09:56:55
예비역소령 전인석 씨, 유족 사연듣고 14년간 매달려
법원·육군본부·병무청·국민신문고 오가며 '장벽' 하나씩 뚫어
친자 확인위해 67년 만에 무덤 파헤쳐 '집념의' DNA 검사
"전사하신 국가유공자 한명이라도 끝까지 찾는게 도리"
육군 35사단, 6·25맞아 전 씨에게 표창장 수여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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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전인석 예비군 대장(왼쪽)과 故 하사 이점수 씨의 유가족이 21일 전북 전주시 낙수정 군경묘지를 찾아 묘비에 인사를 하고 있다. 2021.06.21. pmkeul@newsis.com
[전주=뉴시스] 윤난슬 기자 = "후배가 찾아줘야지 누가 찾아줍니까. '군복의 힘' 아닐까요. 지금도 저는 군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전인석(58) 전북 전주시 완산구 지역대장은 10여년 전 있었던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2005년 7월 4일 육군 본부에 아버지(이점수씨)의 병적 확인을 요청하는 이길순(69·여)씨의 민원이 접수됐다.

소령으로 전역하고 새내기 동네(덕진구) 예비군 중대장이 된 전 대장은 2년 뒤인 2007년 7월 이씨를 처음 만났다. 이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전 대장은 '이씨에게 아버지를 꼭 찾아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2009년 7월 1일 전주시청에 있는 예비군 중대본부에 '6·25 전사자 찾기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육군 본부로부터 받은 화장 보고서에 나온 이름과 호적·제적등본·주민등록상 이름이 다르다는 답변을 받았다.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힌 전 대장은 별도의 방법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당시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데다 접근 방법을 찾지 못하면서 손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약 4년이란 시간이 흐른 2013년 우연히 육군본부의 한 민원담당관을 만나 조력을 받게 된 전 대장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 대장은 조언에 따라 2013년 7월 29일 전주 군경묘지 묘적 담당자를 만나 묘적부를 확인, 이씨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당 묘지의 주인이 이씨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씨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DNA(유전자) 감식을 통해 친생자 관계임을 전주지방법원으로부터 확정받고 국가보훈처에 서류를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제출받은 서류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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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전인석 예비군 대장이 21일 전북 전주시 동서학동 주민센터에서 한국전쟁 종료 한 달을 앞두고 북한의 폭탄에 사망한 故 하사 이점수 씨의 10년에 걸친 진짜 유족 찾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1.06.21. pmkeul@newsis.com
이 때부터 전 대장은 증거 자료 수집에 주력했다. 먼저 6·25 전쟁 참전한 사람의 군번은 '95'로 돼 있어야 하지만, 이미 묘지에 안장돼 있던 사람의 군번은 '13'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로부터 "전쟁 당시 유해를 못찾고 이후에 찾았다는 것을 근거로 심의 신청이 들어왔고, 심의를 거쳐 보훈대상자로 선정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이씨는 국민신문고에 '6·25 전사자 친부 및 보훈대상 확인 요청'이라는 민원을 올렸으나 "국방부 유해 발굴단은 군경묘지에 이미 안장된 유해는 임무 범위에서 미해당한다"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처럼 묘지 주인이 이씨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한 힘겨운 싸움은 지속됐다. 전 대장은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이씨 아버지의 유골 및 명찰 등이 남아 있는지를 지속해서 요청한 끝에 '매화장 보고서'를 받아 볼 수 있었다.

보고서에는 이씨 아버지를 포함한 20명이 연천지구 전투에서 적을 감시하기 위해 나갔다가 82㎜  박격포탄 공격에 사망했고, 사망자를 수습해 화장한 뒤 고향에 보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 대장은 당시 이씨의 아버지가 전쟁에 참전한 사실 및 군경묘지 안장에 참여한 마을 어르신(인우 보증인)의 인우 보증을 비롯해 매화장 보고서 등을 근거로 2019년 5월 전북병무청으로부터 병적증명서를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전 대장은 이씨 대신 연금을 수령받은 동명이인이 거주 불명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전북동부보훈지청에 관련 사실을 통보해 연금 지금을 중단토록 했다.

병적증명서로 문제가 해결되는 듯 했으나 또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이씨 아버지가 묘지 주인이라는 사실은 인정받았지만, 이씨와 아버지의 관계가 인정되지 않았다. 이씨 어머니는 당시 남편과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만둘 수 없었던 전 대장은 지난해 3월 31일 이씨와 아버지의 관계를 입증하고자 법원에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소송에 나섰으나 1·2심 모두 증거 부족으로 패소했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유전자 감식뿐이었고, 법원과 전주시의 도움을 받아 군경묘지에 안장된 아버지의 무덤을 열고 유골을 확인했다. 치아 3개와 잔 뼈 등에서 시료를 채취해 감식을 했으나 시기가 너무 오래지난 탓에 '판명 불가'라는 결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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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전인석 예비군 대장(오른쪽)과 故 하사 이점수 씨의 딸 이길수(왼쪽) 씨가 21일 전북 전주시 낙수정 군경묘지를 찾아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2021.06.21. pmkeul@newsis.com
군복을 입고 마지막 재판에 참여한 전 대장은 "이씨는 60여년 간 아버지 묘지에 찾아가 차례를 지내왔다"면서 "해당 묘지가 주인이라던 사람은 연금 수령 취소 통보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짜 가족들이라면 묘지를 개장하는데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마을 어르신들의 인우 보증, 병적증명서 등을 토대로 이씨를 딸로 인정해달라고 호소했다.

그 결과 지난해 4월 21일 재판부는 이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드디어 부녀관계를 인정받은 것이다.

법원의 결정 후 전 대장은 이씨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비롯해 주민등록을 정정하고 전북동부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등록을 요청하는 공문을 냈다.

전 대장의 헌신적인 노력에 마침내 서류 제출 6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27일 이씨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 아버지가 생을 마감한지 67년 만이다.

전 대장은 "38년 넘게 군 생활을 했는데 고향으로 돌아왔던 당시 관련 내용을 접하고 이거 하나만은 꼭 해결하고 가야겠다라는 마음이었다"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덤볐지만, 막상 해보니까 군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쟁터에 나가서 전사하신 선배님 가족을 군 후배가 찾아줘야지 누가 찾아주겠느냐"라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누구보다도 기쁘다"라고 말했다.

전 대장은 "아직 남은 숙제는 고인이 돌아가셨을 때부터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소급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정말 많이 애쓰셨고 너무 감사하다. 그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전 대장님이) 해냈다. 다른 사람은 절대 못 했을 것"이라고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한편 육군 35사단은 오는 24일 전 대장에 대한 표창을 수여할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ns4656@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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