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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잘알]'메달이 전부는 아냐'…출전만으로 역사 쓴 올림피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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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6-22 06:00:00  |  수정 2021-07-05 15:39:33
무삼바니, 2000년 시드니 '게헤엄' 완주로 박수갈채
71세 나이로 48년만에 올림픽 재출전한 日 오케치
허버드, 역사상 최초 트랜스젠더 선수…여자 역도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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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AP/뉴시스]시드니올림픽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기니 수영선수 에릭 무삼바니가 시드니 하버 브리지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2000.09.22.
[서울=뉴시스] 권혁진 기자 =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다. 전세계 각지의 내로라하는 최고의 기량을 갖춘 운동 선수들이 4년에 한 번 모여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고, 이를 보는 사람들이 환호하고 즐기는 무대가 바로 올림픽이다. 최근에는 유명 프로 선수들의 참가가 늘어나면서 더욱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물론 모두가 정상급 기량으로 탄성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확실한 스토리가 더 큰 주목을 받기도 한다.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는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함께 호흡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영예이자 훈장이다. 시간이 흘러도 유의미한 도전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에릭 무삼바니(기니)라는 이름을 꺼내면 대다수가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 개헤엄'이라고 부연하면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기억하는 제법 많은 이가 무릎을 칠 수도 있다.

무삼바니는 시드니 대회 남자 자유형 100m에서 출전했다. 예선 1조에 배정된 무삼바니는 2명의 다른 선수들과 함께 레이스를 치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부정 출발로 실격을 당하면서 무삼바니는 거짓말처럼 홀로 남게 됐다.

무삼바니는 출발을 알리는 경쾌한 기계음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무삼바니가 수영을 시작하자 관중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선을 사로 잡을 정도로 실력이 빼어나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의 기량은 일반 동호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무삼바니는 꿋꿋이 역영을 이어갔다. 50m 반환점을 돌았을 때 그의 기록은 40초97. 당시 세계기록인 22초83에 18초14나 뒤졌다.

관심은 무삼바니의 완주에 쏠리기 시작했다. 이미 체력이 바닥난 무삼바니는 힘 빠진 팔다리를 끝까지 휘저었다. 아무 기대 없이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휘파람과 박수가 수영장을 뒤덮었다. 모두 무삼바니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몇 번이나 레인 쪽에 치우쳤던 무삼바니는 1분52초72로 레이스를 마쳤다. 무삼비니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느린 기록과 기니의 신기록을 동시에 달성했다. 세계 언론들은 그에게 '아프리카 뱀장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무삼바니가 시드니 대회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 개발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다양한 국가에 출전권을 부여한다는 취지였는데, 시드니 대회 때는 무삼바니가 혜택을 누렸다. 무삼바니는 기니의 한 호텔 20m 풀에서 9개월 동안 연습한 뒤 올림픽에서 물살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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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AP/뉴시스]만 71세의 나이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승마선수 호케츠 히로시. 2012.08.03.
무삼바니는 지난해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20년 전을 떠올렸다.

"50m를 돈 뒤 너무 피곤해서 그만하려고 했다. 팔다리에 감각이 없었다"면서 "그런데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내 이름을 불러줘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모든 힘을 쏟아낸 무삼바니는 그 길로 선수촌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5시간의 낮잠으로 체력을 보충한 뒤 TV를 켜니 온통 자신의 얼굴뿐이었다.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던 무삼바니는 "선수촌 식당에 가니 많은 이들이 사진과 사인을 요청했다. 그때 내가 아주 유명해졌다는 걸 깨달았다"고 웃었다.

니제르의 하마두 지보 이사카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조정 남자 싱글 스컬에 출전했다. 불과 3개월 만에 속성으로 조정을 익힌 그는 서툴지만 힘찬 동작으로 완주라는 자신의 목표를 이뤘다.

첫 출전 후 48년 만에 또 다시 올림픽에 모습을 드러낸 이도 있다. 일본의 호케츠 히로시다.

호케츠는 1964년 도쿄 대회 때 처음 올림픽에 나섰다. 1988년 서울 대회 때는 한국에 오긴 했지만 말에 문제가 생겨 연기에는 임하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 대회를 거쳐 2012년 런던 대회 마장 마술 경기에 나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71세. 결과를 떠나 끝없이 도전하는 호케치의 모습은 세계인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올 여름 도쿄에서는 로렐 허바드라는 선수가 화제를 불러 모을 전망이다. 허바드는 뉴질랜드의 트랜스 젠더 역도 선수다. 2012년 성전환 수술을 받은 허바드는 도쿄올림픽 여자 슈퍼헤비급 출전권을 획득했다.

코로나19로 예선전 개최 등이 어려워지자 국제유도연맹은 랭킹 등을 기준으로 티켓을 부여했는데, 허바드가 해당자로 분류됐다. 현재 허바드는 뉴질랜드 올림픽위원회의 선발 절차를 밟고 있다. 현재로서는 출전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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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코스트(호주)=AP/뉴시스] 지난 2018년 4월9일 뉴질랜드 성전환 역도선수 로럴 허버드가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열린 영연방경기대회에 출전한 모습. 2021.06.21.
도쿄에 입성해 실제 경기를 소화한다면 허바드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트랜스 젠더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43세인 허버드는 올림픽 최고령 역도 선수이기도 하다.

허버드는 성전환 전 '개빈'이라는 이름으로 남성부 역도선수로 활동하다 8년 전인 2013년 성을 전환했다.

2017년 세계 역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 2019년 사모아에서 열린 태평양게임에선 금메달을 딴 이력이 있다. 2018년 영연방경기대회에도 출전했지만, 부상으로 기권했었다.

허버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규정한 성전환 선수 출전 조건을 모두 충족해 이번 도쿄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게 됐다.

IOC는 2004년 성전환 수술을 받은 선수의 출전을 허용했으며, 2015년에는 수술 여부와 상관없이 출전 12개월 전 테스토스테론 검사에서 10nM(나노몰)/ℓ 이하 수치가 나오면 출전할 수 있게 지침을 변경했다.

최소 4년 간 경기 출전을 목적으로 성 정체성을 바꾸지 않았다는 조건도 걸었다.

일각에선 성전환 선수의 여성부 출전은 불공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남성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기준 수치가 일반 여성의 5배에 달하는 수준이며, 선천적으로 신체적 이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성 소수자를 감싸야 한다는 취지이지만 메달 경쟁자들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허바드를 둘러싼 논쟁은 대회 내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hjkw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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